[Editor's View] 핫플로 변신한 갈색 빌라, '1유로 프로젝트' 인 서울
이승연 2023. 4. 14. 11:48
‘3년 공간임대 비용이 단 1유로라고?’ 이 믿기지 않을 프로젝트는 실제로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의 북유럽에서 실행된 도시재생 캠페인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떠나며 낙후된 지역, 슬럼화되어 가는 지역의 빈 공간을 리모델링 한 후 사람들에게 빌려주며 활기를 되찾기 위해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가 최근 한국에서 첫선을 보였다.
1유로 프로젝트?
‘1유로 프로젝트’는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도시재생 캠페인이다. 로테르담의 서쪽 지역은 낡고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들이 널린 대표적인 낙후 지역이었다. 2004년, 로테르담시는 이곳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한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빌려, 시에서 주택을 매매한 뒤 입주 희망자들에게 단 1유로에 빌려주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169 클뤼스하위전 발리스블록’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입주자들은 1유로만 내면 공동 주택(발리스블록)에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단, 2년 동안 거주해야 하고 1년 내 집과 공동 공간을 직접 꾸며야 했다(리모델링 비용 역시 입주자들이 냈다). 모집 결과 해당 프로젝트에 40여 가구가 함께 했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낡고 방치된 건물은 점차 개성 넘치는 공간으로 변모했고, 입주자들은 자신의 집을 사랑했으며, 얼마 안 가 동네에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이후에도 ‘1유로 프로젝트’는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도 도시재생 사업으로 진행됐고, 방치된 건물을 1유로에 판매해 낙후 지역을 활성화한 성공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쇠퇴한 도시 역량 강화는 큰 관심사다.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면 중산층 이상의 사람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른다. 그리고 기존의 원주민들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의 홍대, 가로수길, 경리단길 등 다양한 지역들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첫선을 보인 ‘1유로 프로젝트 공간’은 단번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성동구 송정동의 한 골목에 자리한 ‘1유로 프로젝트 in 코끼리 빌라’는 순수 민간 그룹 주도의 도시상생 실험으로 시작된 케이스다. 건축 그룹 ‘오래된미래공간연구소(로칼 퓨쳐스Lokaal Futures)’는 낙후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사례를 찾던 중 한국판 1유로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됐다. 그러던 중 찾은 곳이 서울시 송정동의 다세대 주택 ‘코끼리 빌라’였다. 연면적 165평의 4개층 공간의 빌라는 사람들이 떠나며 2년여간 방치된 건물이었다. 오래된미래공간연구소는 건물주로부터 ‘코끼리 빌라’를 3년간 1유로(당시 시세 1350원)에 빌리는 대신, 추후 이 공간을 (리모델링된) 그대로 돌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를 발굴해 낡은 공간들을 무상으로 빌려줬다. 좋은 취지로 시작된 공간이 서로를 연결하고, 젊은 사업가들의 연대 성장(브랜드 인큐베이팅 정책)을 통한 역동적 시너지로 오래된 도시의 착한 성장을 이끌고자 한 것이다.
※ 에어비앤비×이탈리아 삼부카 ‘1유로 하우스’
에어비앤비는 지난해 1월,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주택에서 1년 동안 무료로 살아보며 에어비앤비 호스팅을 할 수 있는 참가자를 모집해 화제가 되었다. 2019년 이탈리아 지방정부는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1유로 하우스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당시 유명해진 곳이 시칠리아 삼부카(Sambuca)였다. 에어비앤비에 따르면, 최종 선정된 참가자는 2022년 6월30일부터 1년 동안 삼부카에 거주하며 에어비앤비 호스팅과 마을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에어비앤비 호스팅을 통해 얻은 모든 수입도 참가자의 몫이다. 시칠리아 삼부카의 레오나르도 치아치오(Leonardo Ciaccio) 시장은 “이 캠페인의 묘미는 마을 중심부에 있는 버려진 옛 문화 유산과도 같은 집과 이 집으로 이사 오는 사람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다는 데 있다. 디자이너의 손길을 통해 이 집은 호스트를 위한 완벽한 집으로 변모했다. 우리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살며 포도 수확에서부터 올리브 따기까지 지역 사회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 참여할 도전자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도시 정원부터 1인 목욕탕까지…공간 탐험
오래된공간연구소는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소개하고 있다. “좋은 세상은 좋은 도시들로 이루어져 있고, 좋은 도시는 좋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좋은 사람은 좋은 라이프스타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선순환적 세계관에는 궁극적으로 좋은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가 담겨져 있다. 1유로 프로젝트 역시 이를 목표로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찾는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유무형 플랫폼이 되기도 한다. ‘1유로 프로젝트 in 코끼리 빌라’의 17개의 브랜드는 단순히 물건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내가 바라고 원하는 삶의 방식을 함께 찾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송정동 뚝방길을 달리는 러닝 크루들을 위한 공간 ‘런더풀’, 40여 년간 꿀벌과 청춘을 지새워온 부자(父子)가 함께 선보인 ‘꿀건달’, ‘우리는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전 세계를 다닙니다’를 슬로건으로, 커피를 수입·제조하는 커피미업의 공간 ‘브루잉 랩’, 세상의 모든 반려동물들과 그들의 영웅이 되고 싶은 반려인을 위한 브랜드 ‘베이펫’ 등 17개의 브랜드 공간에는 저마다의 스토리가 존재한다.
‘1유로 프로젝트’의 모든 브랜드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는 재미가 있지만, 첫 방문 전 이곳에 발길이 닿도록 돕는 브랜드들도 있다. 2층에 위치한 ‘위크엔더스 바쓰’는, 강릉에서 시작된 리트릿 호스텔 ‘위크엔더스’가 선보인 공간이다. 1유로 프로젝트에선 커뮤니티 요가, 퇴근후웰니스 등의 명상 프로그램과, 명상 목욕탕 공간 프라이빗 바쓰를 운영 중이다. 프라이빗 바쓰는 1인 목욕탕을 체험할 수 있는 대여 공간으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채 피로를 풀거나 원하는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내 몸의 컨디션에 맞는 바쓰 솔트와 비건 어메니티를 구매할 수 있고, 맥주나 와인 등의 음료와 간단한 스낵 반입도 가능해 따뜻한 욕조 안에서 즐기는 휴식,이란 로망이 있다면 이곳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사전예약제).
<누들로드><요리인류> 등의 푸드 다큐멘터리로 잘 알려진 이욱정PD의 푸드 콘텐츠 ‘요리인류’도 ‘1유로 프로젝트 in 코끼리 빌라’에 자리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푸드 경험과 공간을 제안하며 요리를 매개체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요리인류. 이곳 스튜디오에서는 음식과 라이프스타일을 포괄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 공유키친 스튜디오에서 요리의 생생한 현장을 공유하거나, 세계의 다양한 쿡북들을 전시하고 있다.
2층에 위치한 셀프 사진관 ‘박스룸’은 입구에서부터 빨간색 간판이 한눈에 띄는 브랜드다. 박스룸은 사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순간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길 바라는, 기록의 가치를 알리는 공간이. 독립된 공간 안에서 타인의 방해 없이 스스로 촬영하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남길 수 있다. 촬영한 사진은 파일과, 인화된 사진으로 제공 중인데, 1유로 프로젝트 박스룸에서는 한 달에 두 번, 지역 어르신들의 사연을 받아 무료 사진촬영을 도와드릴 계획이라고 한다.
에코 브랜드들도 코끼리 빌라에 자리했다. 2층에 위치한 브랜드 크루 ‘베러얼스’는 사람과 환경에 무해한 지속 가능한 제품을 소개하는 제로웨이스트숍이다. 친환경 욕실, 뷰티, 주방 상품 등을 구매할 수 있으며 세제류 등의 리필스테이션도 이용 가능하다. 로컬 기반의 다양한 환경 캠페인을 선보이고 있다. 1층에 위치한 ‘푸들Foodle’은 일회용품으로 인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디자인을 통해 지속 가능한 F&B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소셜 스타트업 브랜드이다. 푸들은 다회용기를 매개로, 고객에게 감각적이고 지속 가능한 식사 경험을 제안한다. 1유로 프로젝트 공간에서 ‘보마켓’과 함께, 푸들의 제품을 활용한 일회용품 없는 제로웨이스트 다이닝 카페를 운영 중에 있다. 매장에서는 다회용기와 컵으로 식사를 제공하며, 일회용품 없는 테이크아웃을 위해 푸들 용기를 포함해, 고객이 직접 가져온 다회용기에 포장도 가능하다.
4층에 위치한 브랜드 크루 ‘서울가드닝클럽’은 정원이 도시와 모두의 일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믿는 그린 라이프스타일을 전하는 공간이다. 4층과 루프톱에 마련된 야외 공간 곳곳에는 서울가드닝클럽이 제안하는 도시정원을 만나볼 수 있다. 정원 관련 물품 및 서적 판매와 함께, 루프톱에 꾸며진 공유 정원은 아파트나 원룸에 사는 사람들도 나만의 정원 라이프를 누릴 수 있는 ‘그린라이프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 서울가드닝클럽은 분기별로(4개월) 클럽 멤버십을 모집, 반려식물을 키우는 교육을 받으며, 가드닝 라이프스타일을 배워나갈 수 있다.
‘나의 동네’에서 시작되는 좋은 도시
송정동은 바로 옆에 자리한 성수동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동네이다. 또한 한양대, 세종대, 건국대 등 주변에 대학교들이 있어 1인 가구들이나, 오래된 주택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동네 냄새가 짙게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1유로 프로젝트 in 코끼리 빌라’에서는 외부 관광객은 물론 동네 주민들을 끌어 당기는 브랜드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1유로 프로젝트 in 코끼리 빌라’의 17개의 브랜드는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함으로써, 좋은 도시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4층 옥상 정원에 잠시 서 있다 보면, 이곳이 평범한 빌라 숲 한 가운데 둘러싸여 있는 걸 깨닫게 된다. 옥상 정원에서 식물들과 함께 느긋하게 광합성을 한 뒤 1층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다 보면 어느새 이곳은 친숙함이 느껴지는, ‘우리 동네’로 정의되는 나의 바운더리에 포함된다. 그렇게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동네는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제2의, 3의 ‘1유로 프로젝트 in 코끼리 빌라’가 생겨나길 바라며, 좋은 도시를 만들기를 꿈꾸는 그들의 행보를 응원해본다.
사진: 이승연, 에어비앤비
[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5호(23.4.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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