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매운맛 라면과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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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어느 날, 훗날 삼양식품 회장이 된 고 전중윤 씨가 서울 태평로 중앙정보부장실로 고 김종필 씨를 찾았다.
그는 일본에서 시판 중인 인스턴트 라면을 꺼내 보이며 "라면은 값싼 영양식입니다. 라면을 들여오면 식량 부족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고 말한 뒤, 라면 제조 설비 수입 자금 5만 달러의 조달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김종필은 당시 10원에 출시된 삼양라면이 불티나게 팔렸고 농림부에서 빌린 5만 달러도 금세 갚았다고 회고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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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어느 날, 훗날 삼양식품 회장이 된 고 전중윤 씨가 서울 태평로 중앙정보부장실로 고 김종필 씨를 찾았다. 그는 일본에서 시판 중인 인스턴트 라면을 꺼내 보이며 “라면은 값싼 영양식입니다. 라면을 들여오면 식량 부족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고 말한 뒤, 라면 제조 설비 수입 자금 5만 달러의 조달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당시 큰돈인 5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일본에 생선을 수출해 달러를 벌어들인 농림부뿐이었다. 김종필이 지원을 요청했지만, 농림부 장관은 오히려 전 회장을 불러 “왜 이런 시원찮은 일로 정보부장을 괴롭혔냐”며 기합을 줬다고 한다. 한참 설득 끝에 겨우 돈을 빌린 전 회장은 일본 묘조(明星)식품에서 기계와 기술을 도입해 1963년 9월 5일 한국 최초의 라면을 출시했다. ‘김종필 증언록’에 수록된 라면 탄생의 뒷이야기다.
김종필은 당시 10원에 출시된 삼양라면이 불티나게 팔렸고 농림부에서 빌린 5만 달러도 금세 갚았다고 회고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최초의 삼양라면은 일본식 치킨 라면이라 약간 느끼한 맛이 나 별로 인기가 없었다. 포기할 수 없었던 전 회장은 우리 입맛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수프 실험실을 만들었고, 종로에서 공개 시식회를 가졌다. 청와대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먹는 행사까지 열었다. 이때 박 대통령이 “한국인은 맵고 짭짤한 맛을 좋아하니 고춧가루가 들어가면 좋겠다”고 언급했는데, 이후 매운맛이 첨가됐다. 더구나 당시 서민들의 생활 수준에서 라면값은 싼 편이 아니었다. 짜장면이 20원, 김치찌개가 30원으로 라면은 고가의 먹거리였다. 콜라처럼 손님이 와야 대접하는 음식이었고 1970년대 말까지도 국수가 훨씬 저렴했다.
그렇게 탄생한 한국 라면을 일본의 최대 라면기업이 모방하는 역전극이 벌어졌다. 삼양식품이 2012년 출시했고, BTS 멤버 지민 등의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불닭볶음면’이 주인공. 닛신푸드는 분홍색의 유사한 포장에 한글로 ‘볶음면’이라고 표기했다. 지난해 국내 4대 라면 제조사의 해외 판매액은 총 2조3215억 원. 이는 만두(1조 원)와 김(9000억 원)의 2배가 넘고 K-푸드 대표로 꼽히는 김치(2000억 원)의 10배가 넘는다. 한국 라면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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