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산림] '사라진 꿀벌' 돌아오게 하려면 헛개나무 심어야
최근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라는 뉴스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러한 소식은 단순히 꿀벌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달콤한 꿀을 더 이상 먹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넘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꿀벌은 꽃샘식물(밀원식물)로부터 먹이자원인 꽃가루와 꽃꿀을 얻고 대신 꽃가루를 다른 식물체로 옮기면서 그 식물의 번식을 돕는다. 꿀벌은 식물의 화분매개자이고, 식물은 꿀벌의 먹이 공급원으로 서로 없어서는 안 될 공생관계다.
이처럼 꿀벌은 꿀과 같은 양봉 산물뿐만 아니라 식량의 안정적 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FAO(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100대 농산물 중 71종이 꿀벌의 화분매개에 의존하며, IPBES(생물다양성과학기구)는 꿀벌이 세계 식량 생산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가 최대 690조 원에 달한다. 꿀벌의 화분매개를 받지 못한 딸기는 과실의 기형률이 58%나 증가하고 가격은 무려 92%가 감소한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는 꿀벌과 꽃샘식물의 공생적 관계를 어긋나게 하고 있다. 10월 무렵 월동에 들어가는 꿀벌은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2~3월에 다시금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때 새로운 일벌을 생산해 봉군(벌통)의 세력을 키운다. 따라서 봄철의 낮은 기온은 식물의 개화를 늦추고 꿀벌의 활동을 제약한다.
올해처럼 때 이른 개화도 꿀벌들은 달갑지 않은데 회양목, 벚나무 등이 꿀벌이 활동하기 전에 개화해 버리니 꿀벌 입장에서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꿀벌-식물의 생태시계 불일치 현상은 아까시꽃이 피는 5월에도 지속되어 양봉산업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여기에 산림이 울창해지면서 숲의 하층부에서 자라는 밀원자원인 싸리, 산야초 등이 감소해 전체 밀원수 면적이 감소하고 있다.
꿀벌이 감소하는 요인으로 기후변화, 무분별한 농약사용 등이 지목되고 있지만 유수의 연구들은 꿀벌의 서식지 감소에 따른 먹이자원 부족을 가장 큰 요인으로 보고 있다. 서식지 감소의 원인으로는 단일작물 경작지 확대에 따른 밀원의 다양성 감소, 꿀벌 밀도 증가에 따른 먹이경쟁 심화 등이 있는데 이 두 가지 요인 모두 현재 국내에서 진행 중이다.
국내 양봉산업의 규모는 매년 가파르게 증가해 봉군 밀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아까시나무에 매우 의존적인 양봉구조로 인해 양봉산업계는 다양한 시기에 개화하는 꽃샘식물의 식재에 소극적이었다.
이와 같은 국내외 양봉산업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꿀벌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2020년 '양봉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시행해 양봉산업과 꿀벌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각 지자체는 특화밀원숲 조성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산림청은 국유림을 대상으로 매년 150ha 이상의 밀원숲을 만들어 나가고 있으며 탄소흡수원, 목재생산림 등에도 밀원수를 적극적으로 식재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밀원수 확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밀원 생산성이 우수한 수종을 발굴하고 밀원단지의 생산성 증진을 위한 조성·관리 체계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밀원 수종의 꿀 잠재생산량(kg/ha)을 조사해본 결과 쉬나무의 꿀 잠재생산량이 아까시나무보다 1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의 우수한 수종으로는 전국에 식재가 가능한 쉬나무 외 헛개나무가 있으며 이나무, 꽝꽝나무, 광나무, 아왜나무 등은 남부권역에 식재가 가능한 우수 밀원수였다.
한편 국내 양봉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밀원자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전체 산림면적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사유림은 밀원수 식재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마누카꿀로 유명한 뉴질랜드는 마누카꿀의 생산량 확보와 품질에 대한 신뢰도 제고를 위해 정부와 지역공동체, 그리고 양봉산업계가 힘을 합쳤다. 정부와 지역공동체는 한계농지, 수변림 등에 대규모의 마누카숲을 조성하고 순도 높은 마누카꿀을 생산하면서 최적의 꿀벌 사육 매뉴얼을 구축했다.
양봉산업계는 마누카꿀의 다양한 상품개발과 함께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는 기능성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이로써 뉴질랜드 마누카꿀 산업은 야생 수확 중심에서 과학 기반의 마누카농장 조성·수확으로 전환되었고, 생산량 또한 크게 증가해 수익성이 개선되었다. 또한 황폐지, 유휴지에 마누카숲을 조성해 토양을 피복하고 생태계도 복원한 점은 경작한계지를 훼손 없이 경제성 있는 토지로 전환한 좋은 산림비즈니스 모델이다.
현재 처해있는 양봉산업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꿀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수종의 밀원단지를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 밀원자원의 부족은 양봉 생산성의 감소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꿀벌의 개체수 감소에도 영향을 미쳐 생물다양성 유지 측면에서도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개화시기가 다른 다양한 식물을 이용해 밀원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채밀기간을 늘려 꿀 생산량을 늘리고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꿀벌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다양한 식물의 화밀을 공급받은 꿀벌은 한가지 식물의 화밀만 공급받은 꿀벌보다 수명과 활동성이 증가한다는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산림을 이용한 밀원단지 조성은 꿀벌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먹이자원을 제공하는 역할뿐 아니라 탄소흡수원 확충, 토사재해 방지 등 산림의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함께 도모할 수 있다.
또한 산불피해지 복구, 내화수림대 조성 등에도 밀원수를 심어 경제성 있는 피해지 복구도 노려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백합나무, 피나무 등은 목재를 생산하는 밀원숲으로, 밤나무, 헛개나무 등은 식·약용 과실을 생산하는 밀원숲을 조성할 수 있다.
동백나무, 모감주나무, 칠자화 등은 경관자원으로 활용가능한 우수한 밀원수이며 내화수림대 조성에 많이 사용하는 먼나무, 황벽나무도 밀원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처럼 밀원수의 다양한 기능을 잘 활용한다면, 밀원자원의 확충과 함께 산림의 가치도 높일 수 있다.
임업과 양봉산업은 화분매개와 먹이 공급 차원에서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갖지만, 현재까지 양봉과 임업은 서로 별개의 산업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를 풀 첫 단추는 밀원 기반 다목적 수종을 발굴하여 임업인과 양봉농가가 서로 상생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며, 더 나아가 생산-가공·판매-관광·체험 산업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밀원단지를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밀원숲은 산림의 고유 기능을 발휘하면서 훼손 없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훌륭한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모델이다. 밀원자원의 다기능성을 바탕으로 산림의 가치를 더욱 확대하면서 밀원숲을 활용한 다양한 산업이 더욱 활성화되길 기대해본다.
[나성준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특용자원연구과 연구사 ]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