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라경이 뿌린 씨앗, 국가대표 8명으로 피어났다 [여자야구 현주소⑭]

황혜정 2023. 4. 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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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1주년을 맞은 한국 프로야구는 여전히 스폿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러나 여자 야구는 프로야구가 성장한 41년 동안, 제자리 걸음이다. 이에 스포츠서울은 한국 여자야구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편집자주>

2021년 창단된 JDB 야구팀. 제공 | 김라경.


[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리틀야구단에서 뛰고 있는 전국의 모든 여학생들에게 직접 연락을 돌렸다.”

그렇게 지난 2021년 가을, 2000년 이후 출생 ‘야구 소녀’로만 구성된 JDB(‘JUST DO BASEBALL’의 약자) 야구팀이 탄생했다.

JDB를 만든 사람은 여자야구 ‘대들보’ 김라경(23·서울대). 그는 여자야구 활성화와 더불어 ‘야구 소녀’들의 궁극적 실력 향상을 위해 외인구단을 만들었다. 이 팀은 전원 여학생들로 구성돼 있지만, 대결 상대는 남자 사회인야구 3부리그 선수들이다.

“한국리틀야구연맹에 양해를 구해 전국에 25명 안팎의 여학생들에게 모두 연락을 취했다. ‘여자야구 활성화 프로젝트’를 같이 의향이 있냐고 물어봤다. 한국여자야구연맹에도 연락해 여자 사회인 야구팀에 협조문을 보내 각 팀에 속한 학생 선수들이 팀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활성화 프로젝트를 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김라경이 JDB 선수들을 모은 과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전국 각지에서 야구를 사랑하는 15명의 소녀들이 모였다. 이들은 다수결로 정한 JDB란 이름을 달고 남자 사회인야구팀과 맞붙었다. 지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계속 도전했다. 결국 8경기 만에 거둔 1승. 이날 김라경은 벅차오르는 마음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전국에서 리틀야구를 출신 여학생들을 최대한 모았지만, 연습을 할 수 있는 구장도 없어서 사비를 들여 구장을 대여했다. 안 그래도 힘든 환경 속에서 야구를 해온 친구들인데 그들의 돈까지 쓰게 하는 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이 친구들에게 부담 주지 말자는 마음으로 스폰서(후원)도 따왔다.” 김라경은 JDB 선수이자, 코치, 그리고 경영자였다. 개인 훈련과 학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장비 구매비와 구장 대여비를 벌기 위해 발로 뛰어 다니며 후원을 받아왔다.

기획부터 선수 모집, 팀 운영, 선수로 활동까지 전 과정을 직접 했다. 오직 여자야구 활성화와 실력 향상을 위한 마음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실이 하나씩 맺어지고 있다.

2023년도 여자야구 국가대표 막내 3인방. (왼쪽부터)곽민정, 최드레, 양서진. 곽민정과 최드레는 JDB에서 활동했으며, 양서진도 리틀야구 출신이다. 화성 | 황혜정기자. et16@sportsseoul.com


2023년도 발탁된 여자야구 국가대표 20명 중 JDB 출신은 8명, 비율로 40%다. 곽민정, 김현아, 박민성, 박주아, 이지숙, 이유진, 오노 사유리, 최드레 이상 8명은 2000년 이후 출생자로 초등학교~중학교 때부터 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체계적으로 배워온 선수들이자 JDB에서 김라경과 함께 활동했다.

JDB 출신들의 선전에 김라경도 미소지었다. 그는 “많이 뿌듯하다. JDB를 만든 목적 중 하나는 야구를 어릴 때부터 전문적으로 배운 학생 선수들이 향후 국가대표가 될 수 있게 국가대표 육성팀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이 팀에서 실력을 발전시켜 궁극적으로 여자야구 전체의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라경과 함께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짓지 않고 남자 선수들과 맞붙으며 계속 나아간 이들이 여자야구 국가대표로 선발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숫자지만, 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하는 여학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른바 ‘김라경 특별법’(리틀야구 나이 제한을 여자 선수에 한해 중학교 1학년에서 3학년으로 연장)으로 불리는 제도로 인해 리틀야구에서 뛸 수 있는 연한이 늘어서다. 쉽게 말해 여학생들이 야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것이다.

이 법은 리틀야구 졸업 이후 중학교 야구단에 입단할 수 없는 여학생에 한해 리틀 야구단 소속 기간을 중학교 3학년까지 연장 할 수 있는 제도다. 여자야구 최초의 기록을 쓰고 있는 김라경이 중학교 2학년이 되자 여학생이 전문적으로 야구를 할 수 있는 팀이 마땅히 없어 만들어지게 됐다. 그 덕분에 김라경은 엘리트 야구를 2년 더 배울 수 있었고 여자야구 대들보로 성장했다.

야구 국가대표 김라경. 지난 2019년 12월 서울대학교 합격증을 받은 뒤 스포츠서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라경이 들고 있는 유니폼은 계룡시 리틀야구단에서 뛰던 시절 자신의 유니폼이다. 남양주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김라경은 “(여학생이 리틀야구에서 더 오래 뛸 수 있도록)특별법을 만들어 주시고 도와주신 관계자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준 것, 그 하나가 정말 큰 실력 향상을 이뤄낼 수 있다. ‘기회의 창’이 열리자 국가대표 8명이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왔다”고 했다.

김라경은 여학생이 전문적으로 야구를 배울 수 있는 팀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했다. 그런 팀이 많아질수록 실력 있는 여자 선수들이 양성되기 때문이다. 여자야구 대표팀 양상문 감독도 리틀야구 출신 선수들에 대해 “기본기가 정말 좋다. 이런 선수들은 가르치면 금방 실력이 는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JDB를 하며 전달하고 싶었던 바는, 여자 선수들도 전문적으로 야구를 배우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야구는 힘이 전부가 아니다. 힘이 조금은 부족해도 기술적으로 발전하면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 또 재밌게 즐기면서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JDB는 이걸 보여드릴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김라경이 지난 1년 간 JDB를 이끌며 느낀 것이다.

그러나 김라경이 애써 마련한 토대가 위기에 처했다. 국가대표를 배출하고, 여자야구 활성화에 기여한 JDB 프로젝트는 현재 잠정 중단된 상태다.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다.

“선수들이 JDB 또 언제 하냐고 묻는다. JDB를 1기까지밖에 못했다. 2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건상 보류하고 있다. 구장 대여 문제, 운영비 부족 등이 이유다.” 김라경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가득했다.

김라경이 황무지에 심은 씨앗이 이제 막 꽃 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꾸준히 물을 주지 않으면 그 꽃은 곧 시들고 만다. 힘겹게 꽃이 피어났다. 이 꽃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물이 필요한 시점이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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