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북 된 이승기, 그의 ‘잘못’은 무엇일까?

안진용 기자 2023. 4. 1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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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배우 이승기

가수 겸 배우 이승기는 지난해 18년 간 함께 일했던 전 소속사로부터 입은 피해를 토로했다. 그를 향한 동정 여론과 함께 응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게다가 그는 전 소속사로부터 받은 미정산금 50억 원을 전액 기부했다. 세상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는 최근 배우 이다인과 결혼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축복을 받아야 할 순간이다. 하지만 이승기는 지금 일부 언론, 그리고 여론과 싸우고 있다. 왜일까?

여기서 아주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이승기는 무슨 잘못을 했나?”

좌고우면해도 답을 찾기 쉽지 않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승기가 저지른 잘못은 딱히 없기 때문이다.

굳이 그가 범했다(고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잘못을 끄집어 내보자. 이승기가 이다인과 결혼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왜 잘못일까? 이다인의 계부가 과거 경제 사범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주가조작 사건과는 관계없지만, 2011년 사건으로는 처벌받았다)

정리해보자면, ‘국민 남동생’으로 시작해 선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20년간 쌓아올린 이승기가,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던 계부를 둔 이다인과 결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거듭 주장하는 팬들의 마음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어느 스타의 팬들이건, 그들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팬심(心)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가족이 가족을 바라보는 마음과 진배없다. 내 자식이 잘못을 저질러도 부모는 “내 탓이요”하며 감싼다. 법적으로는 타당하지 않지만, 윤리적으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 간에는 범인은닉죄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승기가 입장문을 통해 이야기한다. “저를 아껴주시던 팬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먼저, 죄송합니다. 처가 이슈로 인해 터져 나오는 기사의 홍수 속에서 상처를 많이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팬 분은 그래서 제 결혼을 말리셨다고 하셨죠.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죄송합니다. 제 가까운 지인들조차 ‘너의 이미지를 생각하라’며 이별을 권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제 아내가 부모님을 선택한 건 아닌데… 그런데 어떻게 부모님 이슈로 헤어지자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승기의 심경은 수긍이 간다. 거꾸로 묻자. 이승기가 “저는 이다인을 사랑하지만, 처가 이슈로 여러분이 걱정하시니 저는 이다인과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헤어지자고 말했습니다”라고 말하면, 이승기는 박수를 받을까? 이런 판단을 내리는 이승기라면 과연 20년 가까이 구설 하나 없이 사랑받는 연예인으로 살아올 수 있었을까?

이런 팬들의 우려와 언론의 태도는 완전히 별개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 언론은 이승기의 팬이 아니다. 이승기의 팬이어서도 안 된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이번 사안을 바라보고 이승기를 재단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몇몇 기사를 보면 지극히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혔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또한 이승기를 ‘조회수 나오는 논란거리’ 삼아서도 안 된다. 언론이 쥔 펜은 공기(公器)다. 불특정 다수가 그들의 글을 읽고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이 ‘기레기’ 소리를 듣는 이유는, 이런 공기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 탓이다. 일기장에 쓴 한 줄은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멋대로 휘갈겨도 상관없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틀 안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그게 상식이고 예의다. 그렇다면 이승기를 둘러싼 논란에서 언론은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이승기를 향한 감정 섞인 기사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가 SNS를 통해 언급한 <위기관리 안되는 이승기, 신혼 단꿈에 젖어있을 때가 아닌데> <뭐가 아쉬워서…이승기 결혼 PPL 논란> <260억원 꿀꺽, 이승기 사기꾼 사위되나?>라는 기사에는 이미 제목에서 논조가 읽힌다. 그리고 이는 매우 훈계조이고 또 단정적이다. 언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중립’을 찾아볼 순 없다. 차라리 논지를 분명히 하고 싶었다면 기명 칼럼이나 사설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기사들은 중립성을 가장한 기사로 작성됐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이승기는 “이다인의 부모님이 해당 뉴스를 보도한 매체 5군데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습니다. 기자님들은 어떤 것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언중위는 해당 매체에 정정 보도를 요청했고요. 해당 매체들은 일제히 ”사실을 바로잡겠다“며 정정보도를 냈습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 매체들은 정정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대중은 이슈가 불거질 때의 관심은 높지만 이를 바로잡을 때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이승기는 또 다른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한 언론사 관계자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승기씨. 기자들이 전화를 안 하는 이유를 알아요? 만약 논란이 사실이 아니면 기사를 쓸 수 없거든. 근데 논란 기사를 써야 조회수가 잘 나오잖아. 그러니 기사를 쓰려고 전화를 안 하는 거예요.’”

낯부끄러운 지적이다. 논란을 위한 논란을 만드는 기사, 조회수를 위한 기사, 취재 없는 기사 등. 그 무엇 하나 언론으로서 기본이 안 된 기사다. 그런데 이런 기사가 ‘먹히는’ 시대다. 포털 중심 언론 시스템이 낳은 괴물들이 판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누구 하나 이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이 시스템 안에서 순응하며 또 ‘먹히는’ 논란을 생산하고 또 생산한다. 그 사이에서 또 다른 괴물이 탄생한다.

물론 이는 ‘몇몇’ 언론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모든’ 언론은 아니다. 하지만 조회수가 폭발하는 이슈가 나오면, 표현 수위에 차이만 있을 뿐 대동소이한 내용에 자극적인 제목으로 갈아 끼워 송고하는 행태는 유사하다. 포털 사이트는 동조자다. AI(인공지능)가 기사를 배치할 뿐이라는 포털 사이트 연예면은 유독 인격모독을 넘어 인격말살에 가까운 제목을 단 기사들을 전면에 배치한다. 대중이 그런 기사를 선호해 많이 찾아 읽으니 메인 화면에 올라오는 것일까? 아니면 포털 사이트가 그런 기사를 전면에 배치하니 많이 읽히는 것일까?

홍상수 감독은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등장 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람 되기는 어려워도 괴물은 되지 말자.” 나는 과연 사람에 가까울까? 괴물에 가까울까? 자문해봐야 할 시점이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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