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돌리며 떠나온 이효리… 작은 백록담이 반겨주네[강동삼의 벅차오름]

강동삼 2023. 4. 1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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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산1-1번지 금오름에 전날 내린 호우로 작은 산정호수로 변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이 백록담을 닮았다 해서 작은 백록담으로 불린다. 제주 강동삼 기자

잠들지 못하는 밤, 서울 빌딩숲이 나온다. 높은 빌딩 숲 사이 어딘가에서 나타난 이효리가 갑자기 푸른 들판으로 화면이 바뀌는 순간 감귤빛 트레이닝복을 벗어던지고 노을진 분화구에서 유연한 춤사위를 펼친다. 그 분화구는 바로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위치한 금오름. 이효리가 5년 전 ‘서울’ 뮤직비디오를 찍은 장소다. 성이시돌목장 서쪽에 위치해 있다. 마치 노래가사처럼 ‘등돌리며 멀리 떠나온’ 서울이 제주 오름과 대비 교차하면서 묘한 여운을 남기는 이 뮤직비디오 하나로 금오름은 순식간에 젊은이들 사이에 뜨는 ‘맛집뷰’가 돼버렸다. 그리고 오름은 조금씩 조금씩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3) 금오름

#이효리의 뮤비 나온 뒤 맛집뷰로 뜬 오름, 금오름

오름 산책하기에는 좀 이르다 싶은 오전 8시쯤 금오름 정상에 도착했다. 거리가 짧고 오르막도 심하지 않아 정상을 쉽게 보여주는 오름이다. 동쪽 성이시돌 목장과 한라산의 풍경을 가슴에 담으며 천천히 걸어도 15여분 만에 다다른다. 표고 427.5m, 둘레 2861m여서 초보자들은 엄지척 할 만하다.

금오름을 안내하는 표지판에는 서부 중산간 지역의 대표적인 오름 중의 하나로 ‘금악담’이라 불리는 화구호 습지를 지닌 오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예전에는 검은오름으로 불리다가 금악오름으로, 이제는 금오름으로 자리 잡았다. 산정부에 대형 원형 분화구와 산정화구호를 갖는 신기의 기생화산체이며 남북으로 2개의 봉우리가 동서의 낮은 안부로 이어지며 원형의 분화구 깊이가 52m 정도된다. ‘검, 감, 곰, 금’ 등은 어원상 신이란 뜻인 곰(고어)과 상통하며, 동일한 뜻을 지닌 곰 계어로서 고조선시대부터 쓰여 온 말이라고 한다. 즉 금오름은 신이란 뜻의 어원을 가진 호칭으로 해석되며 옛날부터 신성시되어온 오름임을 알 수 있다.

실제 정상에 도착하니 놀랍게도 이효리의 뮤비에 나온 호수처럼 아주 얕은 호수가 생겨나 있었다. 분화구에 물이 고인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이날은 운이 좋았다. 어제 내린 집중호우로 인해 비가 와도 금세 말라버리는 분화구에 거짓말처럼 작은 백록담이 생겨났다. 실제로 백록담과 흡사해 작은 한라산이라고 불리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금오름 정상 분화구까지 내려온 관광객들이 주변에 돌들을 하나 둘 쌓아 올려 돌탑을 만들자 최근 환경단체가 맹꽁이 서식처가 훼손된다며 허물었다. 그러나 일주일도 안 지나 다시 돌탑이 쌓이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 정상에서 만나는 분화구, 작은 백록담…그리고 돌탑의 시소게임

이른 시각인데도 분화구에는 여인네 2명이 연신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다. 강아지와 산책나온 한 여자도 머뭇머뭇하다가 분화구로 내려와 걷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날아왔는지 흰뺨검둥오리 두마리도 유유히 이 연못에서 노닐고 있어 비 개인 아침의 운치를 더했다. 비 온 다음날 찾아가야만 운좋게 만날 수 있는 산정호수의 풍경이다.

그러나 그 순간 놀라운 걸 발견한다. 현재 오름 훼손으로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분화구의 돌들 때문이다. 물가 주변으로 돌탑들이 무너져 내린 것과 동시에 하나 둘씩 다시 돌탑이 쌓여있는 광경과 마주했다.

한 환경단체에 따르면 이곳에서 맹꽁이 330여개체와 10만여개의 맹꽁이알이 확인됐다. 우마를 방목했던 곳이어서 그런지 유기물이 풍부해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종인 맹꽁이의 산란처이자 서식처이며, 제주도롱뇽, 큰산개구리 등 다양한 양서류가 서식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분화구형 습지 주변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삼백초가 분포하고 있고, 희귀식물인 수생 양치식물 가는물부추가 자라고 있기도 하다.

우연히 만난 한 산불감시원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분화구에 있던 돌들을 하나둘씩 집어 돌탑을 쌓기 시작한 지 오래됐다”며 “그런데 일주일전 한 환경단체가 와서 그들이 쌓아올린 돌탑들을 발로 걷어차 허물어버렸다”고 되뇌었다.

금오름 분화구 내부에는 그늘이라 할 수 있는 식생이 없어 화산송이가 양서류의 유일한 그늘막인데 탐방객들이 습지 주변에 널려있는 돌들을 주워 무심코 쌓은 돌탑이 맹꽁이 등의 서식지를 훼손하고 있다며 환경단체가 분노했다는 것이다.

환경단체의 주장에 일리가 있는 것 같다는 그는 그래도 돌탑을 걷어차는 모습이 개운치 만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일주일이 지난 지금 다시 관광객들이 언제 그랬냐듯 돌탑을 다시 하나 둘씩 쌓고 있다”면서 “마치 관광객과 환경단체가 신경전을 벌이듯, 쌓으면 허물고, 쌓으면 또 허물고를 되풀이해 마치 시소게임을 벌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금오름이 분화구까지 내려가 산책할 수 있는 유일한 오름이 된 배경에는 이곳이 마을목장으로 쓰였던 사유지여서 가능하다. 왜냐하면 행정기관인 제주도에서 오름관리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이유가 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마을 주민들이 장사에 눈 멀어 환경보전보다 돈벌이에 급급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흘러나오고 있다.

금오름 입구에 있는 생이못, 간이카페, 분화구에서 자라고 있는 수생식물들, 한치빵(시계방향). 제주 강동삼 기자

# 차귀도 비양도까지 내다보이는 저녁노을은 백미… 출입금지 팻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런 속사정을 알 길 없는 관광객들은 이효리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이효리가 아이유와 함께 올랐던 오름으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퍼지면서 금오름은 매일 400~500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더욱이 관광객들은 금오름의 백미는 만장일치로 분화구 정상 능선에 물드는 노을을 꼽는다. 금오름 동쪽 정상에서 바라보는 차귀도와 협재 비양도의 바다와 하늘에 물든 오렌지·연분홍 빛 노을에 마음이 어느새 빼앗겨 스며든다. 그 눈을 뗄 수 없는 황홀한 모습에 신혼부부들의 촬영 성지가 됐다.

산불감시원은 “굳이 분화구 안으로 내려가지 않아도 그 풍광을 맘껏 즐길 수 있는데 사람 심리가 참 묘하다”며 “환경보전을 위해서 분화구 입구엔 출입금지 안내판이라도 내걸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갈지자로 길이 생기고 분화구가 파헤져지는 게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다. 제주도는 마을에 안식년을 갖는 건 어떠냐는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불감시원의 말마따나 분화구 아래로 내려가지 않아도 아름다운 제주는 정상 위에서 한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특히 서쪽오름으로는 유일하게 제주를 다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동쪽으로는 한라산이, 남쪽에는 가파도 마라도가, 서쪽으로는 수월봉, 비양도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보기드문 요새다. 정상에 통신탑이 우뚝 서 있는 연유를 알 것 같다.

정상을 내려오면 오름 초입에 ‘생이못’이 기다린다. 자주 마르는 못이어서 생이(새 제주어)나 먹을 정도의 물 또는 새들이 많이 모여들어 먹던 물이라는 뜻이다. 금오름의 남쪽 초입에 있고 바로 옆에는 가축용 물도 있어서 오름을 오르거나 지나는 사람들이 요긴하게 이용하던 식수용 물로 4·3당시엔 오름에 피신한 사람들의 생명수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주말엔 차 댈 곳도 없어 도로를 점령하는 곳이라 평일 비교적 한산한 오전 시간에 들르면 호젓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주차장 입구 간이 카페들이 하나둘 문 열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꼭 먹어봐야 할 간식인 한치빵(3000원)은 진정 별미다. 제주산 메밀 반죽에 한치를 갈아 제주산 모짜렐라 치즈를 넣어 더욱 맛있다. 제주축협 삼다한라치즈만을 사용해서인지 마치 한치를 씹는 듯하며 달콤한 치즈크림이 입 안을 살살 녹인다.

한치빵 간식으로 허기가 달래지지 않는다면 금오름에서 5분 거리인 금악리마을에 들어선 유명한 백종원 골목식당을 찾을만 하다. 매일 직접 뽑는 생면으로 요리하는 파스타집 ‘아니따 파스타’에서 감태페스토 파스타를 주문하면 후회없는 한끼로 기억에 남을만 하다. 처음엔 그 독특하면서도 쫄깃한 두꺼운 면발에 놀라고 크림파스타 답지 않게 느끼하지 않은 매콤한 맛에 또 한번 놀랄테니까 말이다.

저지리문화예술인마을에 지난해말 개장한 유동룡미술관. 제주 강동삼 기자

◆ 잠깐, 여기 쉬었다 갈래… 유동룡 미술관

# 문소리, 정우성의 소리로 경험하는 미술관… 2만원의 기분좋은 사치

‘만일 건축에서 완벽함 만을 추구한다면 의심할 여지도 없이 기능으로 다듬어진, 차갑고 무미건조한 공간이 되고 말 것이다.’

금오름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지난해말 거장 건축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유동룡(이타미준)미술관으로 저지리 마을 북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바람의 건축가 유동룡의 딸 유이화 이사장 직접 설계 2년만에 완성한 낮고 아담한 건물이다.

마치 ‘사람의 온기와 생명을 밑바탕에 두고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건축물에 담을까’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유동룡미술관 1층의 모습(왼쪽 위 아래)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에 유동룡(이타미 준)의 작업모습과 1층 카페에서 입장객에게 무료로 주는 티 머그컵. 이 컵은 세척해서 계속 사용이 가능하다. 제주 강동삼 기자

‘자연의 나무나 돌이 건네는 말을 듣고 싶은 듯, 바람의 소리, 땅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듯한 원형 미술관은 짙은 블랙과 회색빛 노출콘크리트가 적절히 배합돼 들어서는 순간 마음의 고요해지 듯 차분해진다. 1층 입구에는 유동룡 건축가와 관련한 서적이 둥근 원통을 열어 젖힌 곳에 서가가 숨어있었던 듯 둥글게 책꽂이 반달처럼 달라붙어 있다. 장엄하기 보다 숙연해지는 묘한 울림이 전해진다.

매표소 입구에서 건네주는 이어폰으로 귀에 꽂고 2층 미술관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전을 둘러본다. 배우 문소리와 정우성이 번갈아 가며 들려주는 건축가의 생애와 작품 이미지들을 보다 보면 그의 어머니의 집(1971), 먹의 집(1975), 트렁크(1975) 등 건축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소리로 경험하는 미술관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한바퀴 돌다가 만나는 의자에 앉아 본다. ‘건축의 기초는 의자다’라는 표현이 실감되는 순간이다.

제주도민으로 20% 할인을 받아도 입장료(3만 2000원)는 다소 비싸 보이지만, 1층 안쪽 카페에서는 그에게 영감받아 만든 블렌딩 티와 제주도의 다양한 차를 입장료를 구매한 사람에 한해 무료로 경험할 수 있다. 카페에 앉아 모처럼 호사스런 시간과 마주하는게 낯설지만, 기분좋은 사치임엔 분명하다.

글 사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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