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일터가 기후 악당” 노동자·홈리스·엄마들 파업에 나서다
우리 국민의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은 큰 편이다. 구글코리아가 발표한 2022년 올해의 검색어 1위는 ‘기후변화’였고, 한국인 93%가 ‘지구온난화를 인류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한국갤럽·국제시장조사및여론조사네트워크 ‘윈’(WIN) 2021년 6월 발표)도 있다.
그에 비해 정부의 인식은 안일해 보인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는 2023년 4월11일 국무회의에서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확정했는데,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률을 14.5%에서 11.4%로 낮추는 등 목표치를 완화한 내용이 담겼다. 당장 환경단체들은 ‘탄소중립 포기 계획’이라며 반발했다.
시민들은 결국 직장으로 향해야 할 금요일, 일상을 멈추고 거리에 나오기로 했다. 4월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탄녹위 앞에서 ‘기후정의파업’에 나선다. 이들은 왜, 어떤 절박한 심정으로 시위에 나서는 것일까.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4월5일 기자간담회에서 들었다.
일자리 위기, 화력발전소 노동자 동참 이유
“저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측면에서 보면 ‘기후 악당’인 곳에서 일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우리 일자리만 생각하며 (발전소) 폐쇄에 반대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터가 폐쇄된다고 해서 우리 삶까지 무너질 순 없습니다.”(태안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송상표씨)
송씨가 일하는 발전소는 2025년 폐쇄 예정이다. “고용불안으로 매일 절망과 고통을 겪고 있다”는 송씨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발전비정규노조 전체대표자회의는 2023년 1월31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 비중은 현재 44%에서 2030년 19.7%로 대량 축소되며, 석탄화력발전소 28기 폐쇄로 최소 5300명 이상의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가 예상된다”며 정부 대책을 요구했다.
발전소 노동자들의 파업 참가 취지는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와 환경 문제가 대척점에 서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 국제사회에서 ‘탈석탄’은 거부할 수 없는 과제가 됐고, 국가가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집착하는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발전소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시민이 기후위기에 공감하면서도 고용 문제를 우려한다.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뿐만 아니라 탄소집약도가 높은 산업에 종사하는 시민들은 저마다 불안할 수밖에 없다.
송씨는 일단 “정부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 노동자와 지역 주민 등 많은 사람과 만나 대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고용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늦어지면, 기후위기에 대비하는 재산업화도 더뎌질 수밖에 없어서다.
대기업 에너지 요금 대폭 인상 요구
한재각 ‘414 기후정의파업’ 공동집행위원장은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6차 보고서를 보면 우리는 사실 급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발표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으로는 기후위기 해결도 안 되고, 기후정의를 실현하기에도 부족하다”고 파업 취지를 설명했다.
195개국의 과학자 1천여 명이 참여한 IPCC 6차 보고서(3월19일 발표)에는 ‘향후 10년 동안 시행되는 선택과 행동이 수천 년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경고가 담겼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로 제한하려면 전세계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9년과 비교해 43% 줄여야 한다고 제언하는데, 현 정부는 임기가 끝나는 2027년 이후 연간 감축 목표를 급격하게 늘리는 ‘떠넘기기’ 계획을 확정했다.
이에 기후정의파업 참가 시민들은 △에너지 공공성 강화로 전체 에너지 수요 감축 △에너지기업 초과이윤 환수와 공공주도 재생에너지 전환 △공공교통 확충 △광범위한 환경파괴 중단 등을 요구했다. 특히 이들은 “이윤을 위한 상품 생산과 서비스산업이 에너지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에너지 요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전체 에너지 수요 감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4월 중 전기요금 인상을 발표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일각에선 수요를 감축하려면 에너지 요금을 올리는 게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전기·가스 요금을 인상하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주거취약계층이란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번 파업에 참여하는 나경동 홈리스야학 학생은 자신을 “영등포구 고시원에 사는 지적장애인”이라고 소개하면서 “(지금도) 겨울에는 보일러를 안 넣어줘서 수급으로 전기장판을 이용하고, 여름에는 창문도 없어 너무 더워 옷을 다 벗는다”고 말했다.
주거취약계층의 집은 유난히 덥고, 유난히 춥다. 이들에게 보일러와 에어컨을 사용하는 건 ‘두려운 일’이다. 정부가 기후위기 대책을 세울 때 ‘사회적 소수자가 참여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고 파업 참가자들이 외치는 이유다.
14살 딸, 3살 고양이, 73살 어머니… 엄마의 파업
백운희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2022년 여름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세 명이 숨진 사건을 언급하면서 “인간보다 비인간 동물이,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이, 남성보다 여성이, 취약한 존재들에게 차별적으로 닿는다”고 말했다. 14살 딸, 3살 반려 고양이, 73살 어머니를 가족으로 뒀다는 그는 “폭염, 폭우, 식량 부족, 계속되는 기후재난 앞에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담기지 않고 있다. 양육자 입장에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대통령·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지방의회 선거 국면에서 여전히 기후위기는 주요 의제가 되지 못했는데,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와는 결별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난개발 분위기를 우려하는 시민들도 참가한다. 박찬식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정책위원은 “수요예측보다 훨씬 큰 공항 규모를 만들어 불필요하게 많은 환경을 훼손하는 제주 제2공항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참여 취지를 밝혔다. 이이자희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팀장은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조건부 협의한 환경부가 쏘아올린 국립공원 개발 신호탄 파장이 크다”며 “속리산, 소백산, 무등산, 치악산 등 국립공원들이 대규모 훼손이 동반되는 시설물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줄줄이 발표하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은 천연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지정 등 수많은 보호법이 적용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글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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