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붉은 벽돌 건물의 '기억·공간'...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오늘 개막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 병풍처럼 서 있는 붉은 벽돌 건물. 견고하고 위엄 있어 때론 위협적이게 느껴지는 이 네모난 건물은 바로 옆 아르코극장과 함께 오늘날 대학로의 대표적 상징물이 됐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경성제국대에 이어 서울대 문리대가 자리했으며, 1960년 4.19혁명이 시작된 곳. 아르코미술관은 서울대가 관악으로 이전한 후 조성된 마로니에 공원 안,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김수근 건축가(1931-1986)의 설계로 1979년 완공됐다.
한국 최초로 동시대 미술을 위한 공공 전시장으로 신축된 미술회관(아르코미술관의 전신)은 1960~80년대 민주화 운동과 1990년대 이후 청년문화와 소비문화가 주도한 사회 변화 등을 목도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 예술위 50주년 앞두고 주제기획전 주인공이 된 아르코미술관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이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미술관이 주제기획전 ‘기억·공간’을 오는 14일부터 7월 23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의 공간·장소성을 동시대 작가들의 경험·사회적 기억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고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조명한다.
이번 전시 참여 작가들은 다양한 시간의 층을 가로지르며, 미술관과 직접 관계 맺어온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보고 미술관이 오랜 시간을 거치며 목격했을 법한 역사적 순간을 상상해 본다. 개인의 경험과 역사적 기록 속에 저장되었던 기억은 전시라는 형태로 미술관이라는 공공의 공간에 새로이 소환된다.
이날 박민하 작가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반, 이곳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그때의 기억이 아주 강하게 남아있다”고 돌이켰다. 문승현 작가와 협업한 김경민 작가는 지난 2015년 서울대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도보로 아르코미술관에 와 전시를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퍼포먼스, 영상, 사운드설치 등 국내외 작가 9명(팀)의 신작 23점으로 구성됐다. 비단 전시장뿐만 아니라 아카이브라운지, 프로젝트스페이스, 야외 로비, 계단, 통로, 화장실 등 미술관 곳곳에 작품이 전시·설치됐다.
야외 로비에 설치된 이현종 작가의 ‘아마데우스 의자’는 공원을 향해 앉아 소리로 미술관의 과거와 현재를 경험하게 한다.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환대받지 못한 다양한 소리들, 일테면 외국어, 추상적 소리, 정치적 메시지, 동물의 언어 등을 채집·샘플링하고 믹싱한 그는 전자음악, 힙합, 테크노가 어우러진 사운드로 미술관 안팎과 시간의 경계를 넘나든다.
임근혜 과장은 이날 “지난 3년간 아르코미술관은 환경, 생태, 지역, 경계, 이동 등 첨예한 삶의 주제를 전시 주제로 발굴하고 많은 호응을 받았다”며 “올해는 예술위 설립 50주년을 앞두고 미술관이 사회와 맺는 새로운 관계들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술관 파사드에서 반짝이는 눈을 봤냐”고 물었고 “건물의 네모난 창에 박민하 작가의 페인팅 그림(작품명 눈)이 붙어있다. (그 눈이) 소음으로 가득한 마로니에 공원을 향하고 있다. (미술관이) 그동안 이 자리에서 사회 변화를 목도하고, 시대와 함께 호흡했다. 앞으로도 함께 변화해나가겠다는 상징이자, 선언적 전시”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전지영 큐레이터는 "작가들은 지난 한 세기에 걸쳐 변화한 미술관 주변에 대한 기억을 파노라마로 연결하고(김보경),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온 문화적 에너지를 1990년대 사이버 문화의 이미지로 표현하고(박민하), 미술관에 대한 개인의 기억과 장소의 서사를 텍스트에 기반한 이미지로 재구성(윤향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관의 시간을 기록한다"고 설명했다.
또 제도기관의 장소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루기도 하는데, 마로니에 공원을 정치적 시위와 거리 문화의 열기가 교차하는 ‘광장’으로 바라보고(안경수), 유기적인 이미지를 중첩시켜 모더니즘 건축물의 견고함에 균열을 내고(황원해), 미술관 내부로 침투하는 사운드를 통해 예술과 일상의 에너지를 교차시키는(이현종)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다.
또한,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한 페이크 다큐멘터리(양승빈), 건물의 물리적 한계를 신체를 통해 감각하고 매개하는 퍼포먼스 영상(문승현), 의자에 앉는다는 행위를 통해 신체와 장소성을 탐색하는 설치작품(다이아거날써츠) 등 예술가와 사회를 잇는 미술관의 매개 역할에 대한 성찰을 다룬다.
■ 관객 참여형 사운드워킹 프로그램, DJ 오프닝 퍼포먼스, 건축가 워크숍 등 연계 행사 열려
한편 이번 전시는 관람객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마로니에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아카이브라운지 창가에 설치한 회화, 소리와 함께 미술관의 로비와 테라스를 감각하는 사운드 설치, 필로티 건축 양식을 활용한 전시장 통로의 월페이퍼 작업 등은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제작 설치된 작품이다.
또한, 일반적인 관람 동선 외에도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관람 동선 및 사운드워킹을 위한 동선을 별도 마련하여 안내책자에 담는다. 이는 다양한 관람 동선의 예시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 미술관의 다양한 공간이 이용자 각자의 방식으로 다르게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게 함이다.
관람객 참여형 행사도 마련하는데, 게스트 큐레이터(손세희)와 SEOM:이 협업한 전시 연계 사운드워킹 프로그램에서 관람객은 특별히 제작된 소리와 지도를 따라 미술관을 산책할 수 있다. 이 외에도 DJ 사운드 퍼포먼스, 공간 연구 워크숍 등 다채로운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전시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소재한 아르코미술관에서 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 및 참여할 수 있고, 입장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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