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새 치료전략에 눈길...효소·유전자 연구도 거든다
퇴행성 뇌질환 치매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은 환자는 물론 가족과 사회 전체에도 부담을 주는 질환이다. 국제알츠하이머협회에 따르면 전세계 2400만명이 알츠하이머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다양한 발병 원인을 겨냥한 치료제 개발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아직 완벽한 치료제는 없다.
1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전략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발병을 유발하는 단백질을 동시에 겨냥하거나 효소나 유전자를 활용한 치료법이다. 암과 함께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질병인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전환점을 가져올지 관심이 모인다.
● 알츠하이머병 유발 타우 단백질·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 동시 겨냥
과학자들은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뇌에 특이적으로 쌓이는 타우 단백질과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을 지목해왔다. 각 단백질을 겨냥한 치료 전략이 연구됐지만 최근에는 두 종류의 단백질을 동시에 겨냥하는 치료 연구가 활발하다.
우선 타우 단백질의 엉킴 현상에 주목해 타우 단백질의 엉킴 현상과 아밀로이드베타(Aβ) 단백질 제거를 동시에 노린 치료제가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이 두 단백질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악화된다는 가설이 힘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중추신경계 신경세포에 존재하는 타우 단백질은 신경전달물질의 수송 통로인 미세소관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정상적인 상태일 때는 뇌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이 단백질이 잘못 접히면 독성 물질이 분비되면서 뇌 기능을 저하시킨다.
특히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의 축적은 타우 단백질의 잘못된 접힘 현상을 일으키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뇌 피질에 주로 존재하는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의 경우 이 단백질을 제거하는 치료제 '아두카누맙'의 효과가 미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최근 환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각 단백질을 개별적으로 겨냥한 치료제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가운데 두 단백질을 동시에 타깃으로 삼는 치료제는 효과를 보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홍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타우 단백질의 접힘과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의 축적은 공통적으로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서 관찰된다"며 "어느 한 쪽만이 아닌 양쪽 모두를 타깃으로 한 치료방식이 더 유망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타우 단백질의 엉킴과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 축적을 동시에 해결하는 전략을 채택한 치료제의 임상시험은 최근 시작됐다. 미국 세인트워싱턴대 연구팀이 지난해 임상시험에 착수한 치료제 '타우 넥스젠(Tau NexGEN)'이 대표적이다. 치매 증상이 있거나 향후 10년 이내에 치매 증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 중이다. 이르면 2027년 이후 첫 임상시험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 효소·유전자를 활용한 치료제 실험도 활발
효소나 유전자를 활용한 치료 전략도 주목받고 있다.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 분비에 관여하는 '베타 분비효소(β-secretase)'와 이 단백질을 절단하는 기능을 가진 효소인 '감마 분비효소(γ-secretase)'에 주목한 치료제다.
2021년 미국 알츠하이머협회는 이들 효소를 겨냥했다가 실패한 치료제의 임상시험 결과지를 입수한 뒤 학계에 공유했다. 임상시험을 분석한 학계에서는 최근 당시 임상시험이 실패한 원인으로 참가자들의 병이 지나치게 진행된 상태였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이들 효소에 주목한 치료제 개발 전략이 재조명되고 있다. 두 효소를 제거하는 대신 효소의 작용을 수정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신생 제약사인 '액타'가 현재 미국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아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단서를 유전자에서 찾는 연구도 한창이다. 독일 막시밀리안대 연구팀은 뇌의 면역체계에서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의 축적을 조절하는 유전자 'TREM2'의 기능을 촉진하는 치료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미국 제약사 렉세오테라퓨틱스는 알츠하이머병과 밀접하게 연관된 지방대사에 관여하는 단백질에 초점을 맞춘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자 'APOE4'의 작용을 억누르고, 발병 위험을 감소시키는 유전자 'APOE2'를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유전자 이식'을 하는 것이다. 15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임상시험은 2028년 첫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 명예연구원은 “알츠하이머병은 교세포의 이상활동, 혈액불순환, 염증반응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규명되고 있다”며 “향후 등장할 치료제는 다양한 발병 기전을 고려해 개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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