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기억의 4월'…세월호 참사 9주기 앞둔 진도항·목포 신항만 '노란 바람'

광주CBS 박성은 기자 2023. 4. 1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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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수습한 진도항·세월호 선체 보전된 목포 신항만
16일 참사 9주기 앞두고 추모 발길 이어져
'잊지 않을게' 추모객들 "다시는 이런 일 일어나지 말아야"
13일 전남 진도군 진도항에 리본이 새겨진 빨간 등대. 박성은 기자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앞두고 전남 진도 진도항(팽목항)과 목포 신항만을 찾는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등 추모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참사 당일인 오는 16일까지 기억주간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당일에는 기억식 등 각종 추모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기억, 책임, 약속'…추모객들 진도항 찾아 '조용한 추모'

 
13일 전남 진도군 진도항에 '세월호 기억의 벽'을 유심히 읽고 있는 한 노인의 모습. 박성은 기자

지난 13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

2014년 4월 16일. 통곡이 가득했던 진도항에도 9번째 봄이 왔다. 오는 16일 참사 9주기를 앞두고 파도는 잔잔했고, 바람도 약하게 불어왔다.

하지만 배를 타려는 승객들이 줄지어 있는 팽목선착장에서 보이는 팽목방파제는 사뭇 엄중했다.

방파제를 따라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리본이 크게 새겨진 빨간 등대까지 이어진 길에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현수막이 빼곡하게 걸려있었다.

방파제를 따라 현수막 반대편에는 참사 1주기를 기념해 만들었던 '세월호 기억의 벽'이 마련돼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겠다는 메시지와 그림이 그려진 4천 여 개의 타일 위 난간에는 빛바랜 노란 리본이 묶인 채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이번 9주기를 기념해 내건 현수막들 외에 노란 리본과 파도 모양의 조형물 등은 바닷바람에 녹이 슬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진도항을 찾은 추모객들은 현수막과 '세월호 기억의 벽'에 새겨진 메시지를 천천히 읽으며 그날의 아픔을 되새겼다. 한 가족은 세월호 참사위치를 안내하는 표지판 앞에 서서 한참 먼바다를 응시하기도 했다.

미국 텍사스에서 사는 60대 A씨는 "2014년 당시 미국에서 뉴스를 통해 접했고, 이렇게 직접 현장에 오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다"면서 "자식을 잃은 슬픔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마음이 더 아프다"고 말했다.

13일 전남 진도군 진도항 부근에 마련돼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분향소. 박성은 기자


진도항 옆에 마련된 팽목항기억관에는 광주시민상주모임, 팽목바람길, 진도416연대 등 시민단체가 기억주간(4월 10~16일)을 기념해 '기억영상'을 상영하고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평일이었지만 기억관을 찾는 추모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기억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관을 찾은 한 추모객은 한참 추모관을 둘러본 뒤 끝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제주에 사는 황인겸(50)씨는 제주로 가기 전에 진도항과 기억관을 둘러보기 위해 일부러 진도에서 1박을 지내는 일정을 잡았다.

황씨는 "9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평생 살아있는 동안 계속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 수밖에 없다"면서 "당시 단원고 학생들과 비슷한 연배인 자녀가 있다 보니 더 가슴이 아프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해남 현산중학교 2학년 박아현(16)양은 "학교에서 4월 16일이 되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배운다"며 "이번이 진도 3번째 방문인데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녹슨 '세월호'…그 앞에 수놓아진 '노란 리본'

 
13일 전남 목포시 목포 신항만에 보전된 세월호 선체. 박성은 기자

'다시 봄이 왔습니다. 그날의 슬픔을 기억합니다'
 
세월호 9주기를 앞두고 세월호 선체가 있는 목포 신항만에도 전국 각지에서 온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세월호가 있는 항만에 들어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목포신항 북문출입구에는 미수습자 5명의 사진과 노란 리본 수 백개가 걸려있었다. 가만히 미수습자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관광객들은 고개를 숙여 묵념을 하기도 했다.

선체 앞에 세워진 초록색 펜스에는 수북히 매달린 노란색 리본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펜스 뒤로 보이는 세월호는 9년의 세월을 증명하듯 선체 대부분이 녹이 슨 모습이었다. 배의 측면에 쓰인 'SEWOL(세월)'이라는 글자도 쉽게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색이 바래있었다.

추모객들은 노란 리본이 묶인 펜스 너머로 보이는 세월호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전남도 한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40대 이모씨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는데 못 구했다는 생각에 항상 죄책감이 크다"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끝내 눈물을 보였다.

팽목바람길 안병호 공동운영위원장은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잊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제는 기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기억'의 의미는 단순히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목포 신항만에 보전된 세월호 선체를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오는 2029년까지 고하도 목포 해상케이블카 정류장 인근으로 옮기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세월호 선체 보전과 참사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는 장소가 차질 없이 마련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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