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맞추고 연습까지…'궁케팅' 뚫고 만나는 경복궁의 낮과 밤
궁궐 행사 뜨거운 인기에 예매 치열…유료 행사도 '1분 컷' 매진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예약하시느라 정말 힘드셨죠?"
지난 12일 오전 서울 경복궁 경회루. 김나경 해설사가 관람객 25명을 향해 이렇게 묻자 다들 예매 순간이 생각나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곳곳에서 '애들이 해줬어요', '시간별로 알람 맞춰뒀어요' 등 경험담이 쏟아졌다.
한 중년 여성이 "작년부터 여러 차례 신청하려고 했는데 드디어 오늘 왔다. 이번에는 정말 30초 만에 (모든 예매가) 끝났다"고 하자 김 해설사는 "다들 쉽지 않았다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초 컷'이라 불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는 '궁케팅'(궁과 티켓팅을 합친 말)에 성공한 이들이 찾은 곳은 바로 조선 제일의 누각, 국보 경회루였다.
오전 10시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해설사는 관람객들을 계단 아래로 안내했다.
국보인 경회루는 슬리퍼로 갈아신어야 2층 누각에 오를 수 있다. 1867년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함께 지은 경회루는 150년이 넘은 건물인 만큼 출입 인원을 30명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조심스레 나무 계단을 오른 관람객들은 탁 트인 시야에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북서풍을 타고 유입된 황사에 미세먼지가 짙게 낀 날이었지만, 일부 관람객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스크를 벗었다. '밖에서는 여러분을 부러워할 것'이라는 말에 기념 사진을 남기느라 다들 분주한 모습이었다.
연못 위에 우뚝 선 경회루의 매력은 동서남북 각기 다른 풍경에서 더욱 빛났다.
계단을 올라와 저 멀리 보이는 북쪽은 북악산이 마치 액자처럼 담겼다.
동쪽에서는 경복궁 전체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듯했고, 서쪽은 인왕산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이 앉았다는 자리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한복을 입은 관람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부산에서 세 자매가 함께 왔다는 주영임 씨는 "막냇동생이 연습까지 해서 겨우 (예매에) 성공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꼭 한번 와서 볼 만하다"며 "많은 사람이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밤에 경복궁 북측 권역을 거니는 '경복궁 별빛야행'도 인기 관람 행사다.
'창덕궁 달빛기행'과 함께 대표적인 궁궐 활용 프로그램인 별빛야행은 하루 60여 명만 참여할 수 있어 더욱 경쟁이 치열하다. 올해 예정된 행사는 예매 시작 1분 만에 매진됐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행사 시작을 이틀 앞두고 13일 언론에 공개된 사전 리허설은 궁궐의 부엌인 소주방에서의 저녁 식사로 시작됐다.
메뉴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에게 올리던 일상적인 12첩 반상을 현대적으로 만든 '도슭(도시락의 옛말) 수라상'이었다. 너비아니, 호박전, 더덕구이 등 반찬이 정갈하게 담겨 있었고 식사를 하는 동안 국악 공연이 풍취와 입맛을 돋웠다.
식사를 마친 뒤 어둠을 밝힐 등을 들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궁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흥선대원군(1820∼1898)이 고종을 양자로 삼아 왕위에 오르게 한 신정왕후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자 지은 자경전, 된장이나 간장 등 각종 장(醬)을 보관하던 장고 등을 둘러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어 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최근 관람객에게 문을 활짝 연 '고종의 서재' 집옥재는 밤에 더욱 빛나는 모습이었다.
집옥재를 가운데 두고 협길당, 팔우정이 마치 하나처럼 어우러진 이곳에서는 용의 형상을 새겨 임금이 앉던 의자인 용교의(龍交椅)를 놓아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별빛야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하나를 꼽는다면 단연 향원정이었다.
고종이 특히 좋아했다는 이 일대는 낮과는 다른 매력을 자아냈다. 건청궁과 향원정을 잇는 다리인 취향교는 별빛야행 관람객, 하루 60여 명에게만 문을 열기에 특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지영 해설사는 "별빛야행은 항상 '피켓팅'(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켓 예매를 뜻하는 말) 대상"이라며 "평소 잘 알려지지 않은 경복궁의 북측 곳곳을 둘러볼 수 있어 관람객들의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별빛야행은 이달 15일부터 5월 13일까지 매주 수∼일요일에 하루 두 차례씩 유료로 진행된다.
올해 예매에 실패했다는 30대 직장인 조모 씨는 "'궁 투어'(궁과 투어를 합친 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보니 내가 궁궐 스케줄에 맞춰야 할 판"이라며 "다양한 프로그램과 관람 기회가 늘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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