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원석 감독 "비주류요?…제겐 B급이 주류죠"
기사내용 요약
코미디 영화 '킬링 로맨스'로 9년만에 복귀
한국영화에 없는 진한 B급 감성 담아 독특
"뭘 하든 코믹한 게 먼저 보이는 감성 담겨"
"모든 게 도전·모험…제작진·배우 헌신 덕분"
"내 감성 B급이라고 해도 그게 내겐 주류"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뭘 만들든지 코미디는 계속 될 거예요."
이원석(49) 감독에게 코미디 영화 감독으로 각인 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며서 이렇게 덧붙였다.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전 이상하게도 뭘 보든 웃긴 걸 먼저 봐요. 그런 게 먼저 보이고요. 제가 그런 사람인 거죠. 만약에 정극을 연출한다고 해도 제 작품에는 코미디가 빠질 수 없을 겁니다."
이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킬링 로맨스'는 작정을 한 코미디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웃기다'라는 말로는 표현이 다 안 된다. '미친 것 같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최근 한국영화계에 이 정도로 진하게 B급 정서를 담아낸 작품은 없었다. 애초에 이 감독은 데뷔작 '남자사용설명서'(2013)로 독특한 코미디 감각을 인정받았다. 이후 꽤나 진지했던 '상의원'(2014)을 거쳐 9년만에 다시 한 번 코미디로 돌아왔다.
이번 영화 '킬링 로맨스'는 '남자사용설명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B급 감성에 푹 절여져 있다. 데뷔 이후 가장 파격적인 변신을 한 배우 이선균만 봐도 '킬링 로맨스'가 어떤 작품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감독은 "이런 영화를 만들어 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었다"면서도 "너무 무리수인 것 같아 편집한 장면 중에 제가 볼 땐 정말 더 웃긴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감독을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그는 그가 만드는 영화처럼 시종일관 유머러스했다. 진지한 답변을 이어가다가도 여지 없이 개그가 튀어나왔다. 이런 사람이니까 '킬링 로맨스'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았다. 이번 작품 주연을 맡은 이선균은 앞서 한 인터뷰에서 지인 중에 가장 웃긴 사람 두 명 중 한 명이 이 감독이라고 했다(다른 한 명은 장항준 감독). 그의 일상에 코미디가 함께하는 듯했다.
"흔히 말하는 B급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어요. 이런 영화엔 투자가 잘 안 되니까요. 그런데 '킬링 로맨스'에 이상한 기운이 모이더라고요. 이 프로젝트를 꼭 성사시키고 싶어 한 수많은 제작진이 있었고, 동참해준 스태프와 배우들이 있었어요. 다들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그렇게 하나씩 이 영화가 완성돼 간 겁니다. 그분들에게 정말 고마워요."
그는 주연 배우인 이선균과 이하늬에게 찔러 보듯 시나리오를 건넸다. 두 배우 모두 이 감독이 평소 팬을 자처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두 사람 모두 안 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두 사람 모두 한다고 했다. "이선균씨가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에 참석하기 직전에 만났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들로 설득했죠. 그런데 아카데미 가서 상을 받더라고요. 우리 영화를 절대 안 할 것 같았어요.(웃음) 그런데 이선균씨가 미국에서 이하늬씨를 우연히 만나서 '킬링 로맨스' 얘기를 했고 거기서 두 분 모두 출연하기로 결정한 거예요. 참 신기한 우연이죠."
'킬링 로맨스'는 톱스타 배우 황여래(이하늬)와 정체불명의 사업가 조나단 나(이선균)의 이야기를 그린다. 연예계 생활에 염증을 느낀 황여래가 꽐라섬이라는 곳으로 도망치듯 떠나고 그곳에서 조나단 나를 운명처럼 만나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7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여래는 자신을 이용해 사업을 확장하려는 조나단 나를 보면서 지금껏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건 모두 가스라이팅이라는 결론을 내린 뒤 조나단 나를 죽이기로 한다.
이 감독은 '킬링 로맨스'의 모든 게 도전이고 모험이었다고 했다. B급 코미디라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고, 남편을 죽인다는 무시무시한 설정을 거부감 없이, 그것도 코믹하게 풀어내는 것도 과제 중 하나였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 탓에 예정했던 촬영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면서 에피소드 하나 하나를 만들어 갈 때마다 온갖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그런데도 '될 건 된다'고 되더라고요. 참 신기해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저랑 선균씨가 영화에 쓰이는 음악을 뭘로 할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어요. 당시에 함께 냉면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서 어떤 노래가 좋을지 한창 이야기하고 있는데 옆에 장우혁씨가 식사를 하고 계신 거예요. (웃음) 저희가 후보로 올려놓은 노래 중에 H.O.T의 '행복'이 있었거든요. 그때 결정했죠. '행복'을 이 영화의 메인 테마곡으로 쓰기로요."
'킬링 로맨스'는 H.O.T의 '행복'과 비의 '레이니즘'이 흐르고, 찜질방 불가마와 청국장이 있으며, 뮤지컬과 태권도가 있고, 타조가 있다. 가스라이팅과 나르시시즘이 있고, 자기 자신에게 취한 남성과 살인을 계획한 여자, 순진하고 마음 약한 사수생도 있다. 이렇게 키워드만 뽑아 봐서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영화다.
그의 연출 방식에는 1960~70년대 할리우드 B급 영화들이 큰 영향을 줬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영화 공부를 하던 시절, 하루에 영화 4편씩을 보며 영화사를 훑어가던 그를 멈춰세웠던 게 그 영화들이었다. 그 영화들은 또 이 감독이 원래 갖고 있던 감성과 딱 맞아떨어졌다. "그 영화들이 대단한 작품들이 아니에요. 진짜 막 만든 영화들인데, 정말 끝내줘요. 진짜 재밌다니까요. 아마 그 영화들을 좋아했던 게 제 영화에 영향을 줬을 거예요."
많은 이들이 이 감독 영화를 두고 B급 혹은 비주류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불러도 상관 없겠지만, 그 비주류라고 말하는 것들이 저한테는 주류인 거죠."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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