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퀴로 달리는 열정…“코트서 후련한 자유 느껴요”
스포츠 관련 일 꿈꾸다 불의의 사고
‘일단 멈춤’ 상태서 농구로 ‘리플레이’
생업과 훈련 병행 열악한 조건에도
“코트서 서로 의지할 수 있어 희열
팔딱팔딱 뛰는 심장 느끼게 해줘”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였다. 이후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다시 걸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희망은 갈수록 옅어졌다. 점점 ‘내가 다시는 걸을 수도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짙어졌다. 그때가 2008년 5월. 미국에서 5년 동안 어렵게 고등학교, 대학교 공부를 이어가며 스포츠 관련 일을 꿈꿨지만 이 또한 산산조각이 났다. 그래도 스포츠만큼은 차마 놓을 수 없었다. 농구공을 다시 잡았다. 코트에서 두 발이 아닌 두 바퀴로 내달리지만 요동치는 심장은 여전했다. 지난 11일 일산에 있는 홀트장애인종합체육관에서 〈한겨레〉와 만난 최요한(36)의 이야기다.
2011년 고양홀트 휠체어농구단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구석에서 말없이 공만 튕겼던 그였다. 최요한은 “병원에서 재활할 때만 해도 괜찮았다. 그런데 세상밖으로 나오니까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면서 “비장애인일 때는 몰랐는데 현실 세상이 장애인에게 얼마나 불편한 곳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더 많이 위축됐다. 농구단에서도 처음에는 낯가림이 너무 심해 말조차 못했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주장을 맡고 있다.
최요한은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휠체어농구 대표팀으로 뽑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스로는 “실력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는데 운 좋게 대표팀 12명 안에 들었다”고 했다. 당시 입었던 대표팀 유니폼을 볼 때마다 한껏 뿌듯해진다. 하지만 대표팀 선수로의 삶은 짧았다. 일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 터라 낮에는 생업을 이어가야만 한다. 그는 홀트일산요양원에서 사회재활교사로 근무하면서 저녁에 짬을 내 1주일에 3차례 공을 튕긴다.
홀트휠체어농구단은 장애인 재활을 목적으로 1987년 2월 창단됐다. 생업과 훈련을 병행하는 선수들은 열악한 훈련 환경과 부족한 지원, 신입 선수 부재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처음 농구단에 들어왔을 때도, 12년이 지난 지금에도 최요한은 막내 선수다. 한때는 선수가 12~13명일 때도 있었는데 실업팀 등으로 빠져서 지금은 딱 경기 출장 인원수인 5명뿐이다. 누군가 다치면 경기 출전은 어렵게 된다.
국내에는 코웨이, 춘천시장애인체육회, 제주삼다수 등 3개의 휠체어농구 실업팀이 있는데 최요한 또한 이적을 고민한 적이 있다. 실업팀으로 갈 경우 대표팀 재승선도 지금보다는 나을 수 있다. 지금은 합숙 등의 이유로 대표팀에 뽑히더라도 합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조건상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는 팀을 지키고 싶다. 최요한은 “우리 팀 구성을 보면 50대가 2명, 40대가 2명이다. 50대 형님들도 체력 때문에 은퇴가 고민되지만 오로지 팀을 위해 뛰고 있다”면서 “팀에 민폐가 되는 행동은 절대 하고 싶지가 않다”고 했다.
휠체어농구는 비장애인 농구장 규격과 같은 곳에서 치러진다. 림의 높이도 같다. 휠체어를 다루면서 공까지 튕겨야 하니 어깨, 손목, 허리 등이 성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코트는 최대한 열정을 쏟아내고 싶은 곳이다. 최요한은 “경증과 중증 장애인이 함께 어울려서 팀플레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기술을 습득하면서 스스로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면 진짜 뿌듯해진다”면서 “코트 내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어서 어릴 적부터 팀 스포츠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많은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그와 함께 ‘원 팀’을 구성 중인 황정희(55)는 “고교 때 사고 이후 한동안 집에만 있었다. 휠체어농구는 지금 내 일상의 버팀목이 됐다”고 했다. 소아마비를 앓고 어릴 적부터 목발을 짚고 다녔던 강재준(49)은 “휠체어를 타면 마치 뛰고 있는 것 같다. 휠체어농구는 내 힘으로 뛰면서 느낄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이라고 했다. 20대 때 항암치료와 세 번의 큰 수술을 겪고 30대 중반에서야 장애를 받아들였다는 김시현(45)에게는 휠체어농구가 “전환점”이 됐다. 오기석(54)은 “휠체어농구를 하고 적극적인 성격이 됐다”고 말했다.
최요한의 삶은 불의의 사고로 한동안 ‘일단 멈춤’의 상태였다. 하지만 휠체어농구로 ‘리플레이’ 됐다. 다시금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느끼게 해준 게 휠체어농구다. 최요한은 “장애인들이 제발 젊음을 집에서 낭비하지 말았으면 한다”면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코트장 안에서 후련한 자유를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림을 향한 그의 열정이 오늘도 힘차게 타오르고 있다.
한편, 고양홀트 휠체어농구단은 18일부터 20일까지 홀트장애인종합체육관에서 열리는 고양특례시장컵 홀트전국휠체어농구대회(홀트아동복지회, 고양시장애인체육회 주최)에 참가한다. 6개 팀(실업팀 3개, 비실업팀 3개)이 참가하는데 지난 대회 1승을 거뒀던 고양홀트 휠체어농구단은 이번 대회에서도 1승을 노린다. 최요한은 “교체 선수가 없어서 다섯 명이 계속 경기를 뛰어야만 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겠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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