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길 덮은 잔디밭…순천서 느끼는 ‘친환경 일탈’ [ESC]

김규남 2023. 4. 1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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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여행
순천만습지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습지와 순천만 전경. 만조여서 생태체험선이 운항하고 있었다.

전남 순천 시내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는 하천인 동천에 몸을 맡기자 이내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장소에 도착했다.

지난 7일 순천 기차역을 출발해 10분 간 걸어서 동천테라스 선착장에 도착한 뒤, 12인승 보트를 탄 지 20분 만이었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시기였지만 이날 기온은 영상 14도 내외로 바람이 다소 차가웠다. 이틀 전에 쏟아진 비로 동천변에 줄지어 만개했던 벚꽃잎들이 떨어진 것도 못내 아쉬운 점이었다.

하지만 땅이 아닌 물길로 박람회장 호수정원에 미끄러지듯 들어가면서 색다른 재미가 느껴졌다. 보트를 타고 가는 중에 이번 박람회의 주요 지점들인 ‘오천그린광장’, ‘그린아일랜드’, 개막식 주무대로 사용됐던 ‘물 위의 정원’ 등을 눈요기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순천시는 물길을 트기 위해 동천의 수심을 1.5~2m로 깊게 준설했다. 12인승 4척과 20인승 1척이 편도 2.5㎞ 거리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방문객(요금은 성인 기준 편도 8천원)을 싣고 부지런히 오갔다.

박람회장 내 호수정원에 도착하자 반짝이는 윤슬이 박수치며 맞아주는 듯했다.

순천 도심 4차선 도로를 천연 잔디밭으로 조성한 그린아일랜드.

4차선 도로의 변신 ‘그린아일랜드’

10년 만에 두번째로 열리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순항 중이다. 지난 1일 시작해 개막 1주일 동안 52만7856명의 관람객이 찾아 10년 전 같은 기간에 견줘 갑절을 넘겼다. 박람회장에는 튤립, 수선화, 무스카리, 아네모네 등 총 660종, 1천만본의 식물이 식재돼있다.

순천만정원은 1차 박람회 이후인 2015년 9월, 국가가 조성·운영하는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1차 때 2개 권역(국가정원, 순천만습지) 총 110만㎡였던 규모가 이번에는 동천과 저류지인 오천그린광장, 그린아일랜드 등 ‘도심정원’이 더해져 3개 권역 총 193만㎡로 확장됐다. 축구장 약 300개를 합쳐놓은 크기다. 국가정원과 순천만습지는 유료이고, 도심정원은 무료다. 성인 기준 1만5천원짜리 1일 입장권을 끊으면 5㎞ 떨어진 국가정원과 순천만습지를 이용할 수 있다. 순천시 관계자는 “이번 2차 박람회에서는 10년 전에 견줘 ‘채우기’보다 ‘비우기’에 초점을 맞췄다”며 “이번 박람회는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중립 실현, 도시공간 구조의 변화를 가져오는 정원, 사람의 정신과 육체 건강에 기여하는 정원 등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이번 박람회장에서 가장 눈에 띈 부분은 무료 권역 도심정원의 ‘그린아일랜드’였다. 도심(오천회전교차로)에서 국가정원(남문회전교차로)에 이르는 1㎞ 구간, 왕복 4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잔디로 덮어 걷는 길로 만들었다. 지난해 10월 초까지만 해도 차가 달리던 곳이었음을 알 수 있는 시속 50㎞ 속도제한 표지판과 신호등, 가로등과 도로안내표지판 등이 잔디밭길에 미장센처럼 서 있었다.

도로 한복판을 걷는다는 생각에 묘한 일탈감이 느껴졌다. ‘차도의 변신’에 부정적인 여론도 존재한다. 순천 택시기사 강아무개씨는 “우회로가 생기긴 했지만, 기존 출퇴근 시간에 안 막히던 도로가 막히면서 불편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린아일랜드를 찾은 많은 시민들은 밝은 표정으로 걷고 앉고 누우며 이곳을 즐겼다. 순천시는 오는 10월 박람회가 끝나면 여론을 수렴해 존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지난 7일 저녁 오천그린광장에서 200여명의 관람객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카이로스: 습지의 어벤저스’ 공연.

‘순천의 심장’ 순천만습지

그린아일랜드 옆 무료 권역인 ‘오천그린광장’은 원래 집중호우, 홍수로부터 침수를 예방하려고 조성된 저류지다. 25만㎡, 축구장 약 39개 규모의 드넓은 면적이다. 저류지 기능을 유지한 채 사계절 잔디광장으로 조성됐고 이곳 수상 상설무대에서는 매주 금·토요일 저녁 8시에 문화공연이 펼쳐진다. 지난 7일 저녁엔 무언음악극 ‘카이로스:습지의 어벤저스’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순천시의 마스코트인 흑두루미, 짱뚱어를 비롯해 농게, 고둥, 갈대 캐릭터가 등장해 습지 생태계를 매개로 인간의 삶을 은유하는 내용이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200여명의 시민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순천만습지는 순천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순천 시내를 위아래로 관통해 흐르는 오른쪽 하천 동천과 왼쪽 이사천이 알파벳 와이자(Y) 모양으로 만나 함께 흐르는 곳을 따라 내려가면 2800만㎡(축구장 4375개 크기)의 드넓은 갯벌인 순천만습지가 펼쳐진다. 순천만 오른쪽에는 고흥반도가, 왼쪽에는 여수반도가 순천만을 오목하게 품고 있다. 순천만습지는 동천과 이사천에서 한줌 한줌 떠내려온 남도의 흙이 수천년 동안 켜켜이 쌓여 형성된 ‘세월의 걸작’이다. 흑두루미,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등 252종의 철새들과 짱뚱어, 붉은발말똥게, 농게, 맛조개 등 저서동물과 갈대, 칠면초 등 염생식물이 서식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순천만습지가 처음부터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1992년까지만 해도 순천만은 쓰레기가 쌓인 채 방치됐고 순천시는 골재채취사업까지 추진했다. 환경단체와 지역주민의 반대운동이 이어지면서 1998년 9월 동천하구의 골재채취사업 허가가 취소됐다. 이어 ‘순천만 지키기’는 범시민운동으로 확산됐고 2003년 정부는 순천만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했으며 2006년엔 국내 최초의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2021년에는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는 2019년 ‘해양 및 빙권 특별보고서’에 블루카본(연안에 서식하는 식물과 퇴적물을 포함한 해양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을 온실가스 감축수단으로 공식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순천만습지가 과거에는 ‘생물다양성과 환경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면,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지금은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일 방문한 순천만습지에선 갯벌에 뽕뽕 뚫려 있는 구멍에서 먹이활동을 하러 가끔씩 고개를 내미는 농게들과 물 위에 동동 떠 있는 흰뺨검둥오리들이 보였다. 때마침 만조여서 순천만의 상징인 에스(S)자 갯골을 볼 수는 없었지만, 대신 생태체험선이 운항되고 있었다. 대대선착장에서 출발해 별량 화포로 이어지는 왕복 6㎞ 구간을 오가는 생태체험선(성인 기준 7천원)을 타면 약 35분 동안 드넓은 갯벌과 갈대군락, 철새 등 순천만의 생태계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선보인 갖가지 꽃들.

맨발로 지구 걷는 ‘어싱길’

이번 박람회에는 맨발로 지구와 접촉하는 ‘어싱길’도 국가정원 6곳, 저류지 1곳, 순천만습지 1곳 등 모두 8곳에서 총 12㎞ 길이로 조성돼 있다. 지난 7일과 8일 각각 국가정원과 순천만습지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길을 걸었다. 신발로는 알 수 없는 눅진하고, 차진 느낌이 들었다. 잔디를 밟을 때는 푹신했고, 벚꽃잎이 수북이 쌓인 곳에선 융단 위를 걷는 것 같았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지구와 발로 소통하는 것 같았다. 잔디밭을 방석삼아 털썩 주저앉아 쉴 수도 있었다.

순천시는 2013년 무분별한 도시개발이 습지까지 훼손할 것을 우려해 순천만습지에서 약 5㎞ 떨어진 곳에 ‘에코벨트’를 방어선으로 구축하는 차원에서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했다. 10년 전 박람회가 순천만습지 보호를 위한 방어적 행사였다면, 이번 박람회는 순천만습지의 생태계를 도심으로 확산해 생태도시·정원도시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담았다.

순천시 관계자는 “순천만습지에 있던 노랑부리저어새들이 지난겨울 도심공원인 오천그린광장 안에 있는 (인공적으로 조성 중인) 복원 습지까지 들어와서 먹이활동을 하는 것이 목격됐다”며 “준비 과정까지 포함한 이번 박람회가 순천만습지 생물의 활동 영역을 도심 쪽까지 확대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이번 박람회에 대해 “정원이 우리 일상과 삶을 어떻게 바꾸고 행복하게 만드는지, 또 새로운 도시는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박람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국가정원 옆 ‘순천의 맛’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은 드넓다. 쉼을 위해 가는 곳이지만 아름다운 꽃과 풍경, 공연 등을 보러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금세 시장기가 돈다. 국가정원 안에는 곳곳에 식당 9곳, 카페 8곳, 편의점 6곳 등 식사나 요기를 할 수 있는 곳들이 있다. 국가정원 바깥 에도 순천 고유의 맛집이 즐비하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왔어도 한 차례 밖으로 나갔다가 재입장할 수 있다. 정원 구경을 하다 식사 시간에 맞춰 인근 식당에 다녀와도 좋다. 순천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인근 맛집을 간략히 소개한다.

◆맛있는 채움(061-741-6120. 오천2길 18-8)

꼬막비빔밥 정식이 대표 메뉴다. 2인분을 시켰더니 콩나물, 모듬새싹, 양파, 상추, 김가루가 담긴 대접과 밥을 비벼먹을 수 있는 양념꼬막장이 나왔다. 고등어·적어·가자미 생선구이 3종에 꼬막김치전, 동그랑땡, 두부김치 등 10여가지 반찬도 푸짐하다. 이 식당의 이윤화(44) 대표는 “여수, 고흥, 녹동에서 직접 생선을 구매한다.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1인분 1만7천원. 생선구이 정식(1만1천원)과 김치찌개 백반(8천원)도 있다.

◆그외 인근 맛집들

-화돌농장(061-745-3337. 오천3길 35). 꼬막삼겹살 세트 1인분 2만1천원.

-만복정(061-721-5427. 오천2길 18-2). 꼬막정식 1인분 2만2천원.

-대나무집 오천점(061-746-1430. 오천3길 8). 닭구이 무한리필 1인분 1만8900원.

순천/글·사진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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