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구자범 “‘합창’ ‘환희의 송가’는 ‘자유의 송가’로 해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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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시립예술단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공연이 종교 편향을 이유로 무산되자 클래식 음악계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 조례에 따라 설치돼 운영되고 있는 종교화합자문위원회는 최근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에 신을 찬양하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이유 등으로 이 곡 공연에 제동을 걸었다.
대구시 산하 대구시립예술단 소속인 대구시향과 합창단이 함께 공연할 예정이었다.
앞서 대구시립합창단 40주년 공연에 찬송가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불교계가 항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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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들 ‘황당하다’ 반응
대구 시립예술단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공연이 종교 편향을 이유로 무산되자 클래식 음악계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곡을 종교 차원에서 거부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태생부터 종교와 긴밀히 교감하며 발전해온 예술에 편협한 잣대를 들이대는 행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작곡가 류재준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많은 예술가가 자신들의 종교와 이상을 위해 곡을 쓰고 연주했으며 이는 개인적 이념을 예술로 승화했다는 전제 아래 수용됐다”며 “현대의 작곡가가 미사곡을 쓰더라도 예술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랜 시간을 들여 작곡한 <장엄미사>를 오는 8월 국립합창단과 초연한다. 음악평론가 진회숙은 “세계적 조롱거리가 될 만한 사건”이라고 했다.
대구시 조례에 따라 설치돼 운영되고 있는 종교화합자문위원회는 최근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에 신을 찬양하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이유 등으로 이 곡 공연에 제동을 걸었다. 전 세계에서 수없이 연주하고 있고, 유럽연합(EU)이 공식 ‘국가’로 채택한 곡에 ‘공연금지’ 딱지를 붙인 것이다.
문제가 된 공연은 다음달 1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재개관을 맞아 추진됐다. 대구시 산하 대구시립예술단 소속인 대구시향과 합창단이 함께 공연할 예정이었다. 대구시 조례에 따라 시립예술단 공연은 종교화합자문위 심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자문위원 9명 가운데 1명이 이 공연에 대해 ‘신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만장일치’ 로 공연 여부를 결정하는 조례 규정에 따라 단 1명만 반대해도 공연은 성사되지 못한다. 이 공연은 끝내 무산됐고, 티켓 판매도 중단됐다.
대구에서 종교 편향을 이유로 논란에 오른 공연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대구예술제에서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이 공연되자 개신교 쪽이 반발했다. 앞서 대구시립합창단 40주년 공연에 찬송가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불교계가 항의하기도 했다. 이전에도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공연이 무산된 적이 있다. 대구시의회는 관련 조례의 ‘만장일치’ 조항의 개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합창’ 교향곡 4악장은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가 프랑스 대혁명을 4년 앞두고 쓴 시에 베토벤이 곡을 붙인 곡이다. 가사 중에 ‘천사 케루빔은 신 앞에 선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이여, 낙원의 딸이여’ 등의 내용이 나온다.
지휘자 구자범은 흔히 ‘환희의 송가’로 번역되는 이 곡의 제목 자체를 ‘자유의 송가’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신을 찬양했다기보다 인간의 자유를 노래한 곡이라는 의견이다. 오는 5월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국내 최초로 우리말로 번역한 ‘합창’을 공연하는 그는 “시인 실러가 피 끓는 26살에 자유를 염두에 두고 쓴 시였기 때문에 환희나 기쁨이란 단어를 자유로 치환하는 게 적절하다”고 했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도 독일 통일 당시 베를린에서 ‘자유의 송가’란 제목을 걸고 이 곡을 연주한 적이 있다. 구자범은 “처음엔 번스타인이 행사 취지에 맞게 자의적으로 단어를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한참 뒤에야 그가 함부로 원곡을 훼손한 게 아니라 오히려 원뜻을 살려 제대로 연주한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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