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무궁화호를 타고 싶다

이은심 시인 2023. 4. 1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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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궁화호의 팬이다.

게다가 차창 밖을 느리게 흘러가는 들판과 숲과 마을들, 마치 나만을 위해 고용한 안내원이 조곤조곤 속삭여주는 듯 아늑하고 평화롭다.

그런 것에 짜증이 나는 사람은 무한 시속의 고속열차를 타야 한다.

첨부하자면 기찻길은 거의 청정지대를 지나가고 당연히 무한대의 산소를 값싸게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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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심 시인

나는 무궁화호의 팬이다.

서울에 사는 손주를 돌봐주러 일주일에 한 번씩 오르내리며 그걸 알게 됐다.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나는 낯선 나라의 낯선 관광객으로

나를 세팅하기만 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요금은 조금 내고 오래 탈 수 있으니 더 좋다. 말하자면 가성비 짱이다. 놀이공원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올라타자마자 금방 내려야 하는 회전목마에 비하면 거저가 아닌가. 게다가 차창 밖을 느리게 흘러가는 들판과 숲과 마을들, 마치 나만을 위해 고용한 안내원이 조곤조곤 속삭여주는 듯 아늑하고 평화롭다.

고속철을 타고 휘딱 지나치는 주마간산의 풍경이 아니고 명절날 고향에 내려가서 산소에 후딱 절만 올리고 돌아서는 조급함도 아니다. 어떤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보여주고 오랫동안 예쁘게 보여준다. 그러니 본전을 뽑고도 남는 장사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점은 침대칸도 아닌데 숙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전 무전여행이 성행하던 시절엔 방학이 되기 무섭게 짐을 꾸리던 가난한 청춘들의 둘도 없는 동행 아니었던가. 서울에서 목포나 여수까지 서울에서 부산까지 푹 자면서 여비를 아끼던 그 고맙던 열차.

옛날보다 소요시간이 짧아진 게 흠이라면 흠이다. 느린 낭만 여행을 즐기는 사람에겐 특히 그렇다. 규칙적인 흔들림에 스르르 잠에 들었다가도 불현듯 눈이 떠지면 마침 내려야 할 역인 것도 완행열차에서만 맛볼 수 있는 참 요상한 일임에 틀림없다.

투박하기 짝이 없는 사투리의 통화소리조차 빠질 수 없는 양념이다. 일단 무한 데시벨의 소음을 참을 수 있어야 승차의 자격이 생긴다. 그런 것에 짜증이 나는 사람은 무한 시속의 고속열차를 타야 한다. 무궁화열차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러면 그냥 괜찮아진다.

다만 한 가지 불만이라면 무궁화호의 운행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그나마 아주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조만간 지난 시대의 유물로 철도 박물관 같은 데서나 볼 수 있게 될까 걱정이다. 저간의 사정은 있겠으나 당국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꼭 완행열차를 운행해주면 좋겠다.

첨부하자면 기찻길은 거의 청정지대를 지나가고 당연히 무한대의 산소를 값싸게 마실 수 있다. 그 청량한 공기에 몸과 마음을 푹 담그면 서울서 대전 사이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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