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라떼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한 반에 학생이 60명이었어", "수업도 오전반, 오후반 나눠서 했었잖아", "겨울에 난로 하나 놓고 수업한 거 기억나?", "푹푹 찌는 여름에 선풍기 하나 틀어 놓고 살았잖아", "온종일 선생님 혼자 수업 다 하고…." "요즘 선생님들 정말 편하지 뭐."
친구들과 커피 마시는 중 옆에서 중년 어른들의 대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인다. 내 친구들도 모두 현직 선생님들이라 조금 전에 '하하, 호호' 즐겁던 수다가 갑자기 멈췄다. 다들 나처럼 옆 테이블의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엿듣는 중이다.
한참 지나 옆자리의 중년 어른들이 자리를 떠나고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옛날은 한 번에 60명이었어도 한 가지 수업이었지만, 지금은 한 반에 20명이어도 20가지 이상의 수업을 해야 하는데…. 아이도 학부모님의 요구도 다양하니까 말이야."
"맞아. 그리고 급식지도도 어려워. 골고루 먹여 달라고 부탁하는 부모님도 있지만, 억지로 먹이면 안 된다는 학부모도 있고…. 알레르기 있는 아이들도 많아서 먹지 못하는 것, 먹을 수 있는 것 다 구분해 줘야 하고."
"그렇지…. 에어컨을 켜면 춥다고 꺼달라는 아이, 덥다고 켜달라는 아이. 수업 끝나고 학부모님들이 선생님 때문에 우리 아이 감기 걸렸다고 민원 전화도 많이 들어오거든….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옛날에 존경받던 시절에 선생님을 하면 더 좋았을까?"
아까 들었던 이야기가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한마디 놓치지 않고 조목조목 반박해 나간다. 기운이 빠지는지 친구들이 얼굴이 금세 어두워진다. 많이 지쳐 보인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학교의 교육만이 해답인 시절, 그 오롯한 책임을 다 짊어지며 아이들의 학습향상과 더불어 가정의 문제까지 해결해 줘야만 했던 그 시절. 가정방문을 다니며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아야만 했던 그때. 한 반이 50-60명이 훌쩍 넘는 그 아이들의 한 명 한 명을 알아가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리라.
작금의 선생님은 또 어떠한가? 학생들의 수준이 다 제각각이다. 예전과 다르게 선행학습의 정도가 다르고 주변에 노출되는 지식 습득 정도도 달라 아이들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부모님들의 요구도 각양각색이고, 교육에 관한 관심 또한 높다. 그에 맞는 교육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한 반의 인원을 20명으로 줄이는 등의 노력을 하지만, 밖에서는 보여지는 환경만을 보며 아이들이 적어서 선생님들 쉽겠다며 모르는 말들을 하니 더 답답하기만 하다. 결론은 그때 그 시절의 선생님들도 힘들었고, 지금의 선생님들도 힘들다.
교사가 한 명의 아이를 한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는 성인으로 기르는 일이 어찌 쉬울 수가 있겠는가? 지식을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사회의 규범과 가치를 알려주고 옳은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루하루 노심초사해야 하는 교사라는 직업은 예나 지금이나 막중한 책임을 지닌 일이며 웬만한 사명감 없이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그때의 선생님이 돼 보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의 선생님이 아니라면 그들이 편하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내가 겪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나만 힘들고 저들이 편하다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내 아이 한두 명 키우는 일도 힘든 일인데 수십 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먹이고 가르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가 소진되는 일이다. 그런 교사들에게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로 편한 일을 하는 것처럼 말하며 그나마 조금 남아있는 에너지마저 고갈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라떼는 말이야, 선생님을 잘 따르고 믿고 신뢰했었어."
현재 교단에 계신 한 분 한 분의 선생님은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신다. 모두 따뜻한 라떼 같은 믿음과 신뢰를 드리면 어떨까? 그 믿음이 에너지가 되어 고스란히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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