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달에 갈까요?[뉴스레터 점선면]

김지혜 기자 2023. 4. 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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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아르테미스 1호가 발사돼 우주로 날아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뉴스레터 점선면 4월12일자(https://stib.ee/sWP7)에 게재된 글입니다.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로 접속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독자님께서 마지막으로 본 달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달을 본 지가 오래입니다. 며칠째 달에 관한 기사만 붙잡고 있었는데도 정작 달을 올려다볼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어요. 달은 매일같이 밤하늘을 지키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늘 그 자리에서, 초연하고 아름답길래 무용한 줄만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달은 쓸모투성이였어요. 보물섬이었고, 황금 광산이었어요. 풍부한 광물 자원을 자랑하는 ‘미래 먹거리’이자, 국제질서를 재편하고 강화하는 치열한 정치의 땅이었고요. 십수년 뒤엔 인간이 실제 거주할 터전이기도 해요.

온갖 뉴스가 쏟아지는 편집국 한복판에서 한가롭게 달 얘기를 꺼내는 건 그 때문입니다. 사실은 하나도 한가롭지 않은 이야기라서요. 오늘 점선면은 다시금 달로 향하는 인류의 발걸음을 다룹니다. “달이 자원 기지가 된 건 이미 당연한 현실”이라 말하는 과학담당 이정호 기자와 함께 준비했어요.

달로 이사할 사람?

·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 4월3일(현지시간) 인간을 달에 다시 보내는 ‘아르테미스 계획’의 일환으로 내년 11월 발사되는 아르테미스 2호에 탑승할 우주비행사 4명을 공개했습니다.

· 여성과 유색인종을 포함한 4명의 우주인은 2024년 달 궤도를 비행한 뒤 유턴해 지구로 돌아옵니다. 달에 착륙하진 않아요. 착륙은 2025년 발사될 아르테미스 3호의 몫이죠. 3호에도 여성 우주인이 탑승합니다.

· 아르테미스 계획의 최종 목표는 2020년대 후반까지 인간이 머무는 상주기지를 달에 짓는 것입니다. 달의 광물 자원을 채굴하고, 더 먼 우주로 떠나기 위한 ‘로켓 터미널’을 건설하기 위해서예요.

· 한국은 아르테미스 계획에 참여하는 23개 국가 중 하나입니다. 세계 7번째 달 탐사 국가이기도 하고요. 지난해 8월 발사된 한국의 첫 달 궤도선 다누리는 2시간마다 한 바퀴씩 달을 돌며 관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아르테미스 계획과 별도로 한국은 2032년까지 무인 탐사선을 통해 달의 자원을 채굴하겠다는 계획입니다. 2045년에는 화성에 착륙하고요.

· 1972년 아폴로 17호가 떠난 후 달의 땅을 밟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반세기 가량 뚝 끊겼던 달에 관한 관심이 이렇게 ‘급’ 살아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이제 와 왜 또 달에 갈까요?

한국도 참여한 미국 주도의 아르테미스 계획에 따르면, 인류는 2025년 발사되는 아르테미스 3호를 통해 반세기 만에 다시 달의 땅을 밟게 됩니다.

1. 달이 곧 돈이다

“이제 달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이번엔 머물기 위해서요.”

2019년 아마존과 블루오리진의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는 유인 달 착륙선 ‘블루문’을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류는 이제 발자국을 찍거나 국기를 꽂기 위해 달에 가지 않습니다. 달에 살기 위해 갑니다. 거기 왜 사냐고요? 돈 때문이죠.

달에는 헬륨3, 희토류, 마그네슘, 실리콘, 티타늄 등 다양한 광물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습니다. 인류는 달의 자원을 캐내 지구에 팔 궁리에 한창이에요. 상주기지를 짓겠다는 계획도 지속적인 자원 채굴을 위해서고요. 하지만 탐사부터 기지의 건설과 운영, 자원 채굴에 운반까지 천문학적 비용이 들 텐데 굳이 달까지 갈 이유가 있을까요?

그만큼 달에 있는 헬륨3와 희토류의 가치가 어마어마합니다. 헬륨3는 차세대 에너지 공급원으로 각광받습니다. 달에는 헬륨3가 100만t 가량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지구 전체에 무려 1만년간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해요.

헬륨3는 현재 원자력 발전의 동력인 핵분열보다 약 4.5배 많은 에너지를 내는 핵융합의 원료거든요. 단 1g만으로도 석탄 40t에 맞먹는 에너지를 뿜습니다. 석유 고갈을 앞두고 불안에 떠는 지구인이 탐내지 않을 수 없는 귀한 자원이죠.

달에는 ‘4차 산업혁명의 쌀’이라 불리는 희토류도 풍부해요. 희토류는 광섬유, 스마트폰, 전기차 등 첨단 전자기기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입니다. 하지만 시장에 나오는 희토류의 90%가 중국에서 생산되는 데다, 그마저도 수십년 안에 고갈된다는 게 문제예요.

과거엔 오직 미국과 소련만이 달에 착륙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요. 중국과 인도, 일본 등 신흥 우주강국들은 달에 갈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어요. 한국 등 후발주자들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요.

달의 필요, 명확하고요. 갈 수 있는 기술도 생겼습니다. 인간이 다시 달로 향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요. 물론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입니다. “20세기 우주경쟁이 미·소 간 순진한 기술력 대결이었다면, 21세기는 ‘우주 확장판 골드러시(금이 발견된 지역에 노동자들이 대거 이주하였던 현상)’”라는 표현대로요.

달 표면에 있는 토양인 ‘레골리스’를 건축 재료로 사용해 3D 프린터로 지은 달 기지의 상상도. 미국 항공우주국(NASA)·유럽 우주국(ESA) 제공

2.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

달이 곧 돈이라면 중요한 질문이 따라옵니다. 달은 누구 땅일까요?

법을 따져보겠습니다. 유엔이 1967년 채택한 ‘우주조약’과 1979년 ‘달 조약’을 보면, 특정 국가가 우주 공간과 천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달의 자원을 마음대로 캐내 팔 수도 없고요.

그런데 2015년 미국 정부가 새 우주법을 만들었어요. ‘상업적 우주발사 경쟁력 법’(CSLCA)은 우주에서 캐거나 뽑아낸 자원은 누구든 가질 수 있도록 했죠. 달을 누가 소유할 순 없지만, 달의 자원은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거예요.

결국 현실적으로는 각국이 달 자원의 소유권과 점유권을 두고 무한경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 경쟁에 규칙은 없어요. 지구에서의 국제정치적 분쟁과 이해관계가 달로 고스란히 옮겨갈 수밖에 없겠죠.

실제로 달은 신냉전에 돌입한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맞붙는 장소가 됐어요. 이정호 기자는 “10여년 전만 해도 학계의 이론 정도로 치부되던 달 자원 채굴이 현실화된 계기 중 하나가 2019 미·중 무역 분쟁”이라고 말합니다.

2019년 5월 미국과 무역 전쟁이 최고조에 달하자 중국은 ‘희토류 무기화’를 공식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 이를 의식한 듯 짐 브리덴스타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 국장이 말하죠. “금세기 안에 달 표면에서 희토류 채굴이 가능할 것이다.”

지구에서의 분쟁이 우주 개발을 부채질한 듯한 모양새가 된 거예요. 미국은 이미 2017년부터 2028년에 달에 유인 우주선을 착륙시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이 목표는 2019년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4년 앞당겨집니다.

달은 곧 돈이고, 바로 그 이유로 국가 간 알력의 장이 되었습니다. 특히 강대국 간 패권 싸움의 공간이 되었죠. 우주는 과거처럼 냉전의 ‘상징’이 아니라 ‘현실’로 변모하고 있어요. 이 냉전이 무력 다툼으로 번져 ‘우주 열전’으로 치닫는 상황을 우려하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아요.

3. 달의 신냉전

달에 흐르는 새로운 냉전의 기류를 조금 더 들여다 볼게요.

미국이 주도하는 아르테미스 계획에는 현재까지 한국을 포함해 일본, 영국 등 23개국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정호 기자는 이를 두고 “미국이 주도하는 우방국 간 국제연대가 우주로 확장된 성격”이라 말했죠. 회원국이 다른 경쟁국이나 기업에 방해받지 않고 활동할 ‘안전지대’를 설치하겠다는 것이 바로 아르테미스 계획의 핵심이거든요.

중국과 러시아처럼 미국의 대척점에 선 국가는 아르테미스의 ‘안전지대’에 들어갈 수 없도록 근거를 만들겠다는 거예요. 마치 ‘국경선’처럼요. 중국과 러시아는 아르테미스 계획에서 자국의 패권을 달에서 구현하려는 미국의 의중을 봅니다.

신흥 우주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은 미국이 달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어 보여요. 기술력도 충분히 갖췄고요. 2013년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3번째 달 착륙에 성공한 중국은 2019년 무인 탐사선인 창어4호를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시켰고, 2027년에는 달에 연구기지를 세우겠다는 계획입니다.

2021년 중국과 러시아는 달 궤도의 우주정거장을 공동으로 건설해 운영하겠다며 손을 잡았어요. 아르테미스 계획이 만들고 있는 ‘루나 게이트웨이’와 별도 노선을 걷겠다는 거죠. 머지않은 미래, 달 상공에는 신냉전의 양 진영을 대표하는 두 개의 우주정거장이 나란히 떠 있게 되는 셈입니다.

이건 러시아의 국제우주정거장(ISS) 철수와도 관련이 있는 얘깁니다. 지구 상공을 도는 국제우주정거장 프로젝트는 냉전 시대 치열한 우주 경쟁을 벌이던 미국과 러시아가 주축이 된 국제 협력 개발 사업이었습니다. 그 자체로 ‘탈냉전’의 상징이었죠.

그런데 지난해 돌연 러시아가 ISS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한 거예요. 깊어진 진영 갈등 때문이죠. 드미트리 로고스 전 로스코스모스(러시아 연방 우주국) 사장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 등 서방의 제재가 ISS 운영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ISS에서 철수하겠다고 말했죠.

중국은 애초부터 미국의 견제 때문에 ISS에 참여하지 못했어요. 대신 ‘톈궁 우주정거장’을 독자 개발하는 데 성공했죠. 박용필 기자는 달에서 본격적으로 손을 맞잡은 중국과 러시아를 두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전통의 우주강국과 ‘왕따’ 신세를 벗어나려는 신흥 우주강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아폴로11호 승무원 에드윈 올드린이 1969년 7월 20일 달에 착륙해 표면 위를 걷고 있다. NASA 제공

4. 한국은 어디에

너도나도 달로 향하는 시대, 한국도 달에 갑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며 2032년에는 달에 무인 우주선을 착륙시키고, 광복 100주년을 맞는 2045년에는 “화성에 태극기를 꽂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착륙은 아직이지만 달 궤도를 도는 탐사선은 이미 있어요. 지난해 8월 발사된 다누리호는 2시간에 한 번씩 달을 돌고 있습니다. 다누리 이후, 우리 정부의 목표는 ‘무인 달 착륙선’과 이를 쏘아올릴 ‘차세대 발사체’를 우리 힘으로 만드는 거예요. 다누리는 미국 기업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으로 발사됐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죠.

한국은 경쟁의 후발주자지만 우주 개발의 기술력 제고에 힘쓰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단순히 ‘달에 가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 아니에요. 달 자원이 가진 경제적 가치, 이를 둘러싼 분쟁이 첨예해지고 있는 국제정치 환경을 고려한 결정이죠.

그러나 한국이 달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무척 복잡합니다. 기술력만 갈고 닦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서요. 이정호 기자는 “달에서 자원이나 활동 구역을 두고 분쟁이 정말 벌어진다면 한국은 미국 등 전통적인 우방의 편에 전적으로 설지, 아니면 북한 문제와 경제협력에서 밀접한 연관성을 띠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을 고려해야할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달의 광물 자원이 지닌 경제적 가치가 각광을 받으면서, 달은 지구상의 국가들이 앞다투어 탐사하고 개발해야 할 ‘신대륙’으로 부상했습니다.

이와 함께 신냉전의 구도를 형성한 미국/중국·러시아의 진영 갈등이 달에서 반복되고 심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죠. 한국 역시 달을 향한 여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복잡한 국제정치 환경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번 점선면을 준비하면서 독자님들께 미리 우리 정부의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에 대한 생각을 여쭤봤습니다.

대다수의 독자님께서는 “달 자원이 경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외교·안보적으로 필요한 정책이라서” 등 현실적인 이유로 정부의 우주 정책에 동의한다고 답변해 주셨어요. 단 한 분의 독자님만이 “지구 자원을 다 쓰고도 개발을 멈추지 않겠다는 ‘성장 중독’ 같아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 전해주셨고요.

다시 달로 향하는 인류, 이와 관련해 생각해 볼 만한 몇 가지 관점을 정리했어요. 이 주제에 대한 독자님만의 관점을 벼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태극기보다 중요한 것

광복 100주년이 되는 해에 왜 화성에 굳이 태극기를 꽂아야 할까? 누가 먼저 국기를 꽂는가라는 국가별 경주는 20세기 중반 미·소 냉전 시대의 산물이다. 게다가 화성엔 이미 구소련의 국기와 성조기, 오성홍기가 나부끼고 있다.”

물리학자인 이종필 건국대 교수는 칼럼에서 윤석열 정부의 ‘우주경제 로드맵’을 이렇게 비판합니다. “우주란 우리에게 무엇인지, 왜 우리는 우주로 나아가려고 하는지 전략적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성과를 후대에 남기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요.

우주 자원의 가치와 이를 둘러싸고 재편되는 국제질서를 고려할 때, 달을 향한 여정에 동참하겠다는 한국의 결정은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목표와 방향이에요.

이정호 기자 역시 “지금 한국의 우주정책은 국가적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전략으로 보이는 측면이 많다”고 말합니다.

우주경제 로드맵에 따르면 우리 기술로 만든 무인 우주선은 2032년에야 달에 착륙합니다. 그땐 이미 미국과 중국 등이 지은 상주기지에 인간이 머물며 탐사를 벌이고 있을 가능성이 커요. 국가적 자긍심은 물론 높아지겠지만, 이미 시작된 유인 탐사와 자원 채굴에서 우리 몫을 찾지 못할 수도 있겠죠.

순진한 국가주의적 접근으로는 정작 우주개발의 실익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이정호 기자가 “달 개척과 기술개발은 필연이지만, 이왕 참여한 아르테미스 계획 안에서 역할을 찾아 한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이유예요.

아직 아르테미스 계획에서 한국이 맡게 될 역할이 무엇인지 공개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세계 과학계에서는 한국의 통신 기술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국제 협력에서 빛을 발할 우리만의 ‘주특기’를 찾아낼 때가 온 거죠.

다누리가 달 상공 344km에서 촬영한 지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2. 어쩌면 제국주의의 부활

“이제 우리는 다음 개척지, 우주에서 미국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2020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 아르테미스 계획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하며 한 말입니다.

주목해야 할 건 ‘명백한 운명’이란 표현이에요. 북아메리카 대륙 전체로 영토를 확장하고 개발하는 것이 ‘미국의 운명’이라는 주장이 담긴 표현으로, 19세기 미국의 백인들에게 서부 개척의 명분을 주는 정복의 언어였습니다.

달을 둘러싼 각국의 치열한 쟁탈전이 예고된 지금, 떠오르는 건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제국주의 시대입니다. 식민지와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겠다는 열강들의 싸움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번졌죠.

실제로 달 탐사는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개척에 자주 비유됩니다. 지난 3월 영국 가디언은 우주 탐사를 자원 개발과 동일시하는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어요.

달에는 사람이 살지 않으니 괜찮은 걸까요? 과학자들은 “우주에 누가, 무엇이 있든 간에 탐사와 개발을 동일시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식민주의 역사를 미화하고 합리화하기 때문이죠. 지구에서 군사적 팽창주의가 다시금 득세하고 강화하는 데 우주 개척이 기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아직 탐사 단계인데 너무 이른 걱정일까요? 글쎄요. 세계 각국 우주전 준비는 이미 현실이 됐어요. 2019년 트럼프 정부가 만든 미국 우주군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요. 인도와 프랑스 역시 같은 해에 우주군을 창설했고, 일본과 스페인 등도 우주 전담 기구나 부대를 만들었어요. 꿈의 공간인 줄 알았던 우주가 끔찍한 과거로 회귀하는 전쟁터가 될지도 모르죠.

3. 지구를 망친 것처럼 우주를 망칠까봐

“돈을 자라게 하는 성장의 경제는 무한히 팽창하는 공간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자연에선 가능하지 않은 그런 공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자본주의 시장이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의 칼럼에서 빌려온 문장이에요. 그는 “지상의 모든 곳을 시장으로 집어삼키고, 지하와 우주까지 개발 경쟁에 나섰다”며 ‘성장의 끝’에 선 인간 사회의 풍경을 그려냅니다.

인간이 다시 달로 향한 이유, 돈 때문입니다. 돈이 되는 헬륨3와 희토류가 있어서요. 헬륨3와 희토류가 돈이 된 까닭은 지구상의 자원이 동날 때까지 싹싹 긁어다 팔아치운 시장의 ‘성장’ 때문이고요.

지구를 기후위기로 몰아넣고도 ‘성장’은 멈출 줄 모릅니다. 지구가 이 모양이라면 달로, 화성으로 가면 되니까요. 일론 머스크는 일찍감치 화성에 100만명의 인류를 이전시키겠다는 구상도 밝힌 바 있죠.

“우리가 경제에 대해 ‘성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팽창’이다. ‘선진국’들의 경제성장은 식민지의 팽창, 군사적 팽창 없이 불가능했다.”

채효정 위원장의 칼럼을 다시 읽어봅니다. 달로 가열차게 돌아가려는 인류의 여정 역시 ‘팽창’으로 부를 수 있겠죠. 약하고 만만한 것을 망가뜨리고 황폐화하며 우주 너머로 나아가려는 이 성장의 끝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요?

달까지 가자! 명랑하게 외치고 싶지만, 주저가 됩니다. 인간이, 자본주의가 지구를 망친 것처럼 우주를 망칠까봐 두려운 마음 때문일 겁니다.

한국 정부가 우주 탐사를 과거 냉전 시대처럼 국가주의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한다면 자칫 우주 개발의 실익을 놓칠 수도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한편으론 자원 채굴과 확보에 집중하는 지금의 우주 탐사는 과거의 제국주의·식민주의 과오를 합리화하는 측면이 있으며, 자본주의 특유의 파괴적 성장으로 보여 우려스럽다는 관점도 있습니다.

세 줄 점선면

▶ 미국이 주도하는 아르테미스 계획 등을 통해 인간은 반세기 가량 발길을 끊었던 달로 다시 향하고 있습니다.

▶ 달 자원의 경제적 가치가 주목받으면서 이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 달로 향하는 인간의 여정은 낭만적인 이야기로 비치기 쉽지만, 실상은 경제적인 실익을 얻기 위한 쟁취전이며 이 과정에서 제국주의·식민주의와 같은 인류의 과오가 반복되거나 자본주의의 결함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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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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