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했던 감독을 더 존경하게 되었다 [비장의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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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과 하늘뿐이었다.
둘이 만나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만들고 그 까마득한 선 너머에서 어쩌다 기차가 달려오는 게 전부인 시골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타야 하는지도 알 길 없는 그 점 하나를 올려다보며 막연한 바깥세상을 상상하는 게 아이의 일과였다.
평소에도 그렇게 쉼없이 묻는 꼬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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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판 나린
출연:바빈 라바리, 바베시 쉬리말리
들판과 하늘뿐이었다. 둘이 만나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만들고 그 까마득한 선 너머에서 어쩌다 기차가 달려오는 게 전부인 시골이었다. 고개 들면 이따금씩 작은 점으로 흘러가는 비행기가 보였다. 어디서 어떻게 타야 하는지도 알 길 없는 그 점 하나를 올려다보며 막연한 바깥세상을 상상하는 게 아이의 일과였다.
여덟 살 때 처음 도시의 영화관에 갔다. 여섯 살 꼬마 스티븐 스필버그가 〈지상 최대의 쇼〉(1952)를 처음 보고 밤잠을 설친 것처럼, 엄마 아빠 손잡고 난생처음 가본 극장에 아이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스크린에 쏟아지는 빛줄기를 따라 고개를 돌렸더니 뒤쪽 벽에 나 있는 구멍 하나. 눈앞의 모든 빛이 등 뒤의 그 작은 어둠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빛은 어디서 오는 거야?” “빛은 누가 만들어?” “밤이 되면 빛들은 다 어디에 숨는 거야?” 원래도 빛이 궁금한 아이였다. 평소에도 그렇게 쉼없이 묻는 꼬마였다. 그러니 영화관에 매혹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작은 구멍에서 새어나온 한줄기 빛이 모험으로, 사랑으로, 죽음으로, 온갖 신기한 이야기로 바뀌어 커다란 스크린에 도달하는 곳. 아이가 찾던 천국이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학교 대신 극장에 갔다. 영사기사 아저씨에게 매일 도시락을 제공하는 대가로 영사실 출입을 허락받았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프린트 조각을 이어 붙여 혼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며 놀았다. 친구들을 꼬드겨 창고에 보관된 영화 프린트를 훔치다 걸려 소년원에도 다녀왔다. 그래도 계속 빛이 궁금했고, 그 빛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싶었고, 빛을 붓 삼아 스크린 위에 그려내고 싶은 이미지가 있었고, 그렇게 만든 이야기로 사람들을 웃기고 또 울리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감독이 되었다. ‘이따금씩 작은 점으로 흘러가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 영화제에 다니는, 제법 성공한 감독으로 나이 들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인도를 대표해 출품된 영화 〈라스트 필름 쇼〉는 감독 판 나린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앞서 얘기한 그의 실제 성장과정이 영화의 뼈대가 되었고, “필름 시대 영사기사였다가 디지털 영사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오랜 친구 이야기가 영화의 핏줄이 되었다.
‘영화가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일개 상품으로 전락하기 이전 시대’를 그리워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영화의 탄생, 성장, 죽음 그리고 그 재생을 축하하는 이야기’로 쭉쭉 뻗어나가는, 아주 비범한 스토리텔링의 작품. ‘인도판 〈시네마 천국〉’으로 입소문이 났지만 ‘인도판 〈파벨만스〉’라 불러도 좋을 이야기까지 품고 있는 영화.
〈파벨만스〉를 본 나는, 지금까지 존경했던 감독을 더 존경하게 되었다. 〈라스트 필름 쇼〉 덕분에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사랑했던 수많은 영화를 더 사랑하고 싶어졌다. 많이 웃었고 적잖이 뭉클했고 마무리까지 완벽했다. 특히 이 영화의 엔딩은 정말 정말 정말 근사하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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