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주말극이 5년째 비혼주의자들을 결혼시키고 있다 [SE★초점]
비혼남 안재현, 차주영과 결혼 결심···
주말극 결혼 엔딩 해마다 반복돼왔지만
비혼주의자들을 계속 결혼시키는 이유는?
“저, 비혼주의자라고요.” KBS2 새 주말드라마 ‘진짜가 나타났다! (극본 조정주, 연출 한준서)’의 주인공 공태경(안재현)이 1, 2회 방송분에서 거듭 강조했던 대사다. ‘미혼모와 비혼남의 가짜 계약 로맨스’라는 소개 글을 내건 드라마인 만큼, 현재 6회째 방영된 ‘진짜가 나타났다!’는 비혼을 핵심어로 관련 서사를 전개해 가고 있다.
KBS 주말드라마가 ‘비혼’을 키워드로 내세웠던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9년 이래 KBS 주말드라마에는 ‘비혼’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대사량이 부쩍 많아지고 비혼주의 캐릭터도 비중이 늘었다. 근 5년 내내 KBS 주말드라마를 통해 ‘비혼주의’가 다뤄진 셈이다.
그런데 드라마 속 비혼주의자들이 결국 모두 결혼에 이르고 있다. 작년 인기를 끈 KBS2 주말드라마 ‘현재는 아름다워’(극본 하명희, 연출 김성근)는 결혼 생각이 없는 삼 형제가 주인공이다. 결혼하면 아파트를 주겠다는 집안 어른들 성화에 짝을 찾던 중 그들이 진정한 사랑에 닿는다는 것이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었다. 드라마 소개 글에는 ‘연애도, 결혼도 기피하는 시대’라는 전제를 시작으로 ‘혼인성사 프로젝트 드라마’라는 문장이 강조됐다.
재작년에 방영된 KBS2 주말드라마 ‘오케이 광자매’(극본 문영남, 연출 이진서)도 마찬가지다. 막내딸 이광태(고원희)는 극 초반부 비혼을 선언했다가 역시 결혼으로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취집’이라는 단어를 반복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광태는 극 초반부터 “나는 ‘취집’ 아닌 길을 갈 거야”라는 대사를 뱉으며 등장한다. ‘취집’은 취직 대신 시집을 통해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뜻으로, 일부 기혼 여성을 폄하하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다. 이렇듯 비혼주의였던 주인공은 결국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호소하면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취집’하는 게 내 살길이구나 느꼈다”라고 언급한다.
KBS 주말드라마가 근 5년간 연속적으로 다루고 있는 ‘비혼’은 늘 무력하게 묘사돼 왔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2020)의 윤재석(이상이)과 ‘사랑은 원더풀 인생은 뷰티풀’(2019)의 구준휘(김재영) 역시 주변인에게 ‘비혼주의’라고 밝혔다가 사랑에 빠지고서 결국 결혼에 이르는 인물들이다. 윤재석은 극 초반에서 비혼주의자로 등장했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결혼은 이르다는 상대역에 “비혼주의였는데 널 만나서 변했다, 정착하고 싶어졌다”라며 간곡히 프러포즈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KBS는 주말 가족극이라는 포맷 아래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입장이다. 한 KBS 드라마국 관계자는 “실제 사회 흐름에 따라 어느 집에나 ‘결혼 안 한다’라고 하는 젊은 친구들이 있을 법한 현실을 드라마가 반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가족극에서 모두를 아우르는 방식을 표방하다 보니 비혼주의자들의 최종 종착지는 처음 설정과 달리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주말드라마가 중장년층에게서 인기 있는 장르다 보니 자기주장이 강하고 뾰족한 특색을 지닌 인물들이 중화되거나 순화되면서 가족과 어우러지는 결말을 많이들 선택한다”라고 강조했다. 시청자들에게 ‘주요 배역이 결혼을 해야 해피엔딩’이라 여기는 인식이 있는 측면을 신경 쓴다는 말도 뒤따랐다. 그는 “가족극 안에서 주요 배역일수록 결말을 맺어주길 원하고 또 그게 해피엔딩이길 원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교제를 시작하거나 혼인을 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매듭지어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지난달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진짜가 나타났다!’는 최근 시청률 부진을 겪고 있는 KBS 주말극의 뒤를 잇는 작품으로 출발했다. 지난 9일 방송에서는 결혼에 부정적이었던 공태경이 오연두(백진희)를 위해 김준하(정의제) 앞에서 "내가 이 아이 아빠라고!"라는 대사를 외치며 미혼모와 비혼주의자의 로맨스를 본격화했다. 덕분에 극 초반 내내 10%대이던 시청률에서 벗어나 20%대로 반등해 눈길을 끌었다. 10일 공개된 7회 예고편에는 공태경이 오연두에게 “우리 결혼해요, 오연두 씨”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여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KBS 관계자는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의식, 결혼과 출산이라는 문제에 대해 다시 새롭게 접근해 보자는 의도가 담긴 것이기도 하다”라고 드라마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주인공의 ‘비혼 선언’과 함께 시작한 ‘진짜가 나타났다!’ 역시 결혼과 육아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고독사를 꿈꾸는 비혼주의자’라던 주인공이 또다시 결혼에 닿는 결말이 예상되는 가운데, 앞으로 가족극 장르가 더욱 다양한 가구 형태의 사회 구성원들을 존중하는 이야기를 그릴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조은빛 인턴기자 goodlight@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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