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 종료" 짙어진 기대…한은 물가 잡기 흔들까
한은, 상반기 물가 둔화 확신…하반기는 근원물가 '열쇠'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기준금리 인상 종료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며 시장이 한발 먼저 금리 인하를 반영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금리를 낮추라는 당국의 압박이 이어진다.
여러 이유로 낮아지는 시장·시중금리에 물가 안정을 위해 한국은행이 1년 반 동안 공들인 통화긴축 정책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은은 이런 우려를 물리치려는 모습이나 정작 끈적한 근원물가에 하반기 물가 상황은 불확실하다고 밝히고 있다.
14일 한은에 따르면 이창용 총재는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2연속 동결한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가 과도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표면적으로 이 총재의 발언은 채권 시장에서 주로 단기금리가 기준금리 인하 기대를 미리 반영해 과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문제 인식에 기초했다.
실제로 양도성예금증서(CD) 91일물 금리는 전날 3.430%에 거래를 마쳐 현 기준금리인 연 3.50%를 밑돌았다. 통화안정증권(통안채) 91일물도 0.01%포인트(p) 내린 3.229%에 마감하며 기준금리를 하회했다.
단기 자금시장에서 금리가 내려가는 현상은 시중 단기 유동성이 풍부해지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시장금리가 기준금리마저 밑도는 상황은 한은의 긴축 효과가 떨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꿋꿋한 긴축에 더 꿋꿋한 금리 내리기 한은은 기준금리 인하 논의가 시기상조라고 엄격히 선을 그어 왔다.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도 여전하다.
하지만 시장은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측하면서 금리 인하를 선반영하기 시작했다.
물가와 경기의 동반 둔화도 연내 금리 인하 기대를 자극했다.
게다가 금융 당국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은행권에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금리 인상 효과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국은 은행권의 역대급 영업이익을 질타하면서 대출금리 인하를 지속 요구했고,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내리는 대신 수익성 방어를 위해 예금금리를 크게 낮춰 조달비용을 줄이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한은은 긴축 기조를 이어가며 연내 금리 인하에 꾸준히 선을 긋고 있지만 시장(채권)과 시중(예금·대출) 금리 또한 꿋꿋이 내려가는 상황이다.
◇시장 인하 기대엔 "적당히"…엇박자 지적엔 "오해"
한은은 시장에서 부푼 금리 인하 기대의 경우 초단기 금리 하락을 콕 집어 '과도하다' 지적하면서 일찍 딴 샴페인의 뚜껑을 닫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당국의 인하 압박의 경우 통화정책-금융정책 간 폴리시믹스(Policy mix·정책조합)가 어그러진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조심스레 대응하는 모습이다.
지난 12일 한은은 이창용 총재가 경제·금융수장 정례회동에서 금융 당국을 향해 '금리를 너무 미시적으로 조정하려 하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를 두고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금융 당국도 한은과 엇박자가 나지 않았단 취지에서 "(해당 보도는) 오해"라고 했다.
당국의 앞선 금리 인하 압박은 한은이 금리 인상으로 물가 안정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가계부채 등의 구조조정이 과도해져 금융시장이 불안에 빠질 가능성을 미연에 관리하는, 엄밀히 말하면 한은 통화정책에 배치되지 않는 적절한 조치였다는 입장이다.
◇결국 시선은 물가로…하반기 근원이 '열쇠'
금리 인하 기대를 늦추려는 한은의 시도와 정부와의 폴리시믹스가 정말 효과적이라고 판명되려면 결국은 금융불안 없이 향후 물가 오름세가 예상 경로를 따라 꺾여야 한다.
한은은 상반기 물가 흐름의 경우 둔화세를 확신하고 있다. 반면 하반기는 비교적 확신이 떨어진다. 이 총재는 지난 11일 통화정책방향 간담회에서 "상반기 물가 경로는 확신이 있는데 하반기 불확실성이 많다"고 언급했다.
하반기 물가를 둘러싼 핵심 문제는 높은 근원물가 상승률이다. 변동성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해 수요 측면의 물가 압력을 잘 보여주는 근원물가지수는 지난달 1년 전보다 4.8% 오르면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4.2%)을 웃돌았다. 이는 2년2개월 만의 근원-헤드라인(전체) 역전이었다.
근원물가 상승률이 잘 떨어지지 않는 현상은 물가의 하방 경직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이 끈적해 물가가 앞으로 크게 둔화되진 못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실제로 한은은 올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 2월 전망치인 3.5% 수준에 부합할 것으로 본 반면, 근원물가는 종전 전망치 3%를 웃돌 것이라고 지난 11일 밝혔다.
시장에서 금리 인상이 종료됐다는 기대감이 터져나옴에도 한은의 고심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갈수록 나빠지는 경기와 지난달 SVB 사태로 확산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시장은 금리 인하를 타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근원물가에 물가 경계심를 접긴 어렵다.
강승연 DS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3월 기대인플레이션은 3.90%로 절대적인 수준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며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 등을 감안했을 때 근원물가의 하락세는 더딜 수 있어 연내 인하 기대는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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