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알뜰폰 품다]下 아직 시큰둥한 은행들
비용 부담·점유율 확보 등 '득보다 실' 판단
앞으로 모든 은행이 알뜰폰 요금제 판매 사업을 할 수 있게될 전망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은행들의 반응은 미지근 한 모습이다.
알뜰폰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면서도 직접 시장에 진출해 얻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점점 커가는 알뜰폰 시장
통신업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알뜰폰 가입자 수는 1263만8794건으로 집계된다. 지난 2018년 798만명 수준이던 것이 약 4년 동안 1.5배 가까이 성장했다.
알뜰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데에는 소비자들이 '현명한 소비'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프리미엄'급 고가 스마트폰을 출시하기 시작하면서 소비자들은 단말기 구입비용과 통신비가 결합된 기존의 이동통신사 요금제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소비자들이 자급제 휴대전화 단말기 구입후 통신비가 저렴한 알뜰폰 요금제를 선택하고 있다. 여기에 알뜰폰이 제공하는 서비스 품질이 이동통신 3사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정부 역시 국민의 통신비 절감을 위해 알뜰폰 시장의 가격 인하를 위한 방침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올초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사는 물론 통신사들을 대상으로 '공공재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언급하며 통신비 절감을 위한 정부 차원의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통신비 절감이라는 공감대 형성 이후 기존 통신비용이 저렴한 알뜰폰 시장 활성화 방안이 논의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통신 '시너지' 보여준 KB국민은행·토스
일찌감치 알뜰폰 시장에 진출한 KB국민은행과 올해부터 시장에 진출한 토스는 금융과 통신사업을 함께 영위하면서 낼 수 있는 시너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KB국민은행은 알뜰폰 서비스 'Liiv M'을 4년간 운영하면서 고객 40만명을 끌어모았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가입자에게 제공되는 유심내에 KB국민은행의 핵심 모바일 서비스 KB스타뱅킹, KB모바일인증서 탑재해 통신고객이 KB국민은행의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고객을 묶어두는 '락 인' 효과로 이어졌다.
KB국민은행은 가입자를 확보하면서 쌓이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금융서비스의 질을 점점 높여나간다는 방침이다. 기존 KB국민은행이 보유한 금융데이터와 통신요금 이용 내역 등을 결합해 새로운 신용평가모형 등을 개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활용하는 신용점수(구 신용등급) 산정시에도 통신요금 납부내역이 활용될 정도"라며 "통신 데이터와 금융 데이터의 결합은 가장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영역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부터 알뜰폰 서비스 '토스모바일'를 개시한 토스 역시 빠르게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출시 이후 나흘간 17만명의 고객을 확보했을 정도다.
토스가 알뜰폰 시장 진출 초기 흥행 신호를 보일 수 있었던 데에는 금융과 통신의 결합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토스모바일 가입자는 미사용 잔여 데이터를 캐시백 받거나 토스페이 가맹점에서 10% 캐시백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토스를 자주 사용하는 가입자의 경우 통신비 절감이 피부에 곧장 와닿는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토스의 알뜰폰 요금제는 비싼 편이지만 서비스를 오픈하면서 프로모션을 진행해 현재는 비용이 저렴한 편"이라면서도 "다만 토스를 자주 이용하는 고객은 토스의 알뜰폰을 이용하면 다양한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KB국민은행과 토스 흥행에도 시큰둥한 은행들
금융위원회가 지난 12일 KB국민은행 외 다른 시중은행들에게도 알뜰폰 요금제 판매를 허가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당사자인 은행들은 다소 시큰둥한 모습이다. 대부분의 은행 관계자들이 "검토는 하겠지만 아직까지 적극적으로 계획 수립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라고 입을 모을 정도다.
알뜰폰 시장이 점점 성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고, KB국민은행과 토스가 알뜰폰 진출 이후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은행들이 이처럼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알뜰폰 시장에 진출할 경우 '득' 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알뜰폰 시장에 진출한다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요금제의 경쟁력이다. 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통신망을 제공하는 이동통신 3사와의 협업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구조에서는 이동통신 3사에게 비싼 비용으로 통신망을 공급받고 이를 종전 사업자들에 비해 싼 가격에 판매해야 한다. 적지 않은 비용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은행 관계자는 "토스 역시 먼저 시장에 진출한 KB국민은행보다 결과적으로 높은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는 통신3사가 알뜰폰 자회사의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통신망 제공 비용을 높게 잡고 있기 때문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행은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최종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통신비용을 절감하는 일종의 출혈 마케팅을 펼칠 수 있지만 이 경우 중소사업자들이 말하는 금권마케팅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최근 상생이 중요한 사회적 키워드로 자리잡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알뜰폰 판매를 시작하더라도 가입자 확보가 더딜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이유도 은행들이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이유중 하나다.
알뜰폰 판매를 통해 은행이 가장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단연 금융데이터와 통신데이터의 융합이다. 이를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통신데이터 확보다. 즉 많은 가입자를 확보해야 알뜰폰 시장 진출의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KB국민은행과 토스가 알뜰폰 시장에 '신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가 있지만 객관적으로 따져봤을때 가입자 수가 의미있는 데이터를 확보할 정도는 아니라는게 은행권의 시각이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KB국민은행의 40만명, 토스의 17만명 가입자 확보가 대단한 숫자인 것은 맞다"라면서도 "하지만 의미있는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소 100만명의 가입자는 필요하다는 게 관련부서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사업자들과의 경쟁에서 가입자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라며 "마이데이터 등을 통해 통신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판단도 내부에서는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경남 (lk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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