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박지현 "저기, 정치하는 아저씨들 지금 뭐하세요"

윤근영 2023. 4.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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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 세대 정치인들 물러나고 젊은이들이 정치해야"
"조국사태·박원순사건 등에 민주당 차원 사과해야"
"이재명 대표한테 밥 한 끼 얻어 먹어본 적이 없다"
"한국정치, 민주주의 아닌 지역주의…청년이 바꾸자"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박지현 [촬영 이건희]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저기, 아저씨 지금 뭐 하세요?"

이 말은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의 박지현(27)이 성폭력 사건 가해자였던 같은 당 박완주 의원한테 한 말이다. 당을 떠나라는 메시지를 줬는데, 오히려 직원 채용공고를 내자 국민의 대표인 '의원님'이라는 호칭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에서 이런 코멘트를 했다고 한다.

이제는 이 코멘트가 여야의 586을 포함한 기성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했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스튜디오 반전'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586을 비롯한 기성 정치인들이 물러나고 상식적이고 개혁적인 젊은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기성 정치인은 민생보다는 다음 총선에서 다시 뽑히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들은 주로 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정규직 등 소외계층은 외면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거대 양당 자체가 국민의 행복보다는 자신들의 권력 추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특권인 불체포 특권은 사라져야 하고, 국회의원 급여는 근로자 평균 임금인 월 350만원도 무방하며, 현재 한국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지역주의라고 그는 밝혔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박지현 [촬영 이건희]

강원도 원주 출신의 박지현은 대학생 시절 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의 2인조 멤버 중 한명이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위험을 감수하면서 디지털 성 착취 현장에 잠입, 1년여 동안 취재했으며 경찰과 공조함으로써 디지털 성범죄자들을 체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관련 제도 개선에도 공이 컸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는 이재명 캠프에서 디지털성범죄근절 특별위원장,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을 맡은 그는 조국 사태와 박원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공식적인 사과, 586 정치인들의 퇴장, 당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단호한 조치 등을 요구해 당내 강성 지지층의 거센 공격을 받았다.

그는 정치 팬덤인 '개딸'의 온갖 협박과 욕설, 문자 테러에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2022년 미국 타임지의 '올해에 떠오르는 인물 100인', 영국 BBC방송의 '올해의 여성 100인'에 각각 선정됐다.

어린 시절 박지현 [본인 제공]

--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 아버지는 사업을 하신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에 회사를 차리셨다. 나는 장난기가 많은 아버지가 사장이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믿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장의 근엄한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부모님 직장 체험 프로그램으로 반 친구들과 함께 아버지 회사에 찾아갔는데, 아버지가 사장실을 보여줬다. 나는 아빠가 딸 친구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사장실을 잠깐 빌린 것으로 생각했다. 아버지는 장난기가 많으면서도 다정다감하신 분이다. 남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셨다.

-- 어머니는 무슨 일을 하시나.

▲ 어머니는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이다. 도덕적으로 엄격한데, 마음이 따뜻한 분이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매주 한 번은 시장에 갔다. 시장 가는 길에 노숙자를 만나면 어머니가 단 한 번도 그냥 지나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항상 지갑을 열어 도움을 줬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렵고 힘든 사람이 있으면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 본인은 금수저 출신이라고 봐야 하는가.

▲ 우리 집이 엄청나게 잘 산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중산층 정도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주는 용돈도 많지 않았다. 4살 위의 언니와 나는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명품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내가 금수저 출신이라는 일부 보도가 있었는데, 강원도 기준으로 은수저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집값이 비싼 서울에서는 그렇게 될 수 없다.

네팔에서 봉사활동 중인 대학시절 박지현 [본인 제공]

-- 초등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 부모님이 맞벌이하다 보니 어린 나이에 집에 있을 수 없어 학원에 가야 했다. 처음에는 피아노 학원에 갔는데, 나와 맞지 않았다. 부모님께 태권도나 합기도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집 근처를 지나다 합기도 학원이 보여서 부모님께 보내달라고 했다. 합기도 학원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5년 정도 다녔기에 유단자가 됐다. 나는 동성 친구들보다 10㎝는 큰 데다 합기도를 배웠기에 싸움에서 남자애들한테 밀리지 않았다. 여자아이를 놀리는 남자아이를 보면 혼내주기도 했다. 한번은 언니가 놀이터에서 어디에 부딪혔는데, 아이들이 놀렸다. 나는 화가 나서 언니와 함께 그 아이들과 싸웠던 기억이 난다.

-- 중고등학교 시절은 어떠했나.

▲ 중학교 3학년 때 반장을 했다. 반장을 하면서 학우들과 회의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3년 내내 반장을 맡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연극부 부장도 했다. 나는 노래나 춤, 연기에 재능이 없기에 시나리오를 썼다. 나는 중학교 시절에도 연극을 좋아했지만, 원주에는 연극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서 혼자 영화관에 자주 갔다. 고등학교 축제 때에는 깃발을 들고 율동하는 기수단도 했다. 나는 행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네팔에서 봉사활동 당시의 대학 시절 박지현 [본인 제공]

-- 대학 시절에는 주로 무엇을 했나.

▲ 대내외 활동을 많이 했다. 1학년 때는 단과대 학생회 총무차장을 했고, 3학년 때는 단과대 학생회장 선거관리위원장도 맡았다. 국토대장정에는 스태프로 참가했고, 네팔에 가서 26일 정도 봉사활동을 했다. 대내외 공모전에도 많이 참여했다.

--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나.

▲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뒤 1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한 다음에 복학했다. 휴학 전에는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학점이 좋지 않았다. 복학 이후에는 학업에 집중해서 학과 톱(1등)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대학교 졸업 후에 무슨 일을 하려면 좋은 학점을 만들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ROTC(학군사관)에 지원했었다고 하던데.

▲ 어머니의 어렸을 때 꿈이 군인이었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의 그런 면모를 닮았는지, 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나는 몸도 튼튼하니 남자들처럼 군대에 가서 나라를 위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탈락했다. 공간 지형 감각이 약하고, 장거리 달리기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박지현 [촬영 이건희]

-- 술·담배는 하나.

▲ 담배는 안 피운다. 술은 종종 마신다. 불편한 사람과 마시면 잘 취하지 않는 것 같다. 긴장하기 때문이다. 많이 마시면 소주 기준으로 2∼3병 정도다. 나는 데킬라 같은 독주를 좋아한다. 술 마시고 멀쩡한 척하는 게 주사라면 주사다.

-- 취미는 무엇인가.

▲ 운동을 좋아한다. 헬스는 비대위원장 시절에는 못했다가 최근에 다시 시작했다. 비대위원장 시절보다 몸무게가 많이 늘어났다. 음식과 술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술은 끊으려고 한다.

-- 책을 좋아하나.

▲ 어렸을 때는 책을 좋아했다. 위인전, 수필 등을 읽었다. 최근에는 '공정 이후의 세계'를 읽고 있다. '감시자본주의 시대'라는 책도 읽고 있는데, 대학원 수업에서 이 책을 발제하기로 했다. 대학원에서는 공공정책을 공부하고 있다. 책은 누군가의 경험을 공유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매체다.

-- 건강은 어떤 편인가.

▲ 나는 위가 좋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염과 위경련으로 고생한다. 요즘에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건강을 챙기려 노력한다. 비타민도 먹기 시작했다.

네팔에서 봉사활동 중인 대학시절 박지현 [본인 제공]

-- 본인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 용기가 있다는 것이 나의 장점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볼 때는 행동파인 점이 장점인 것 같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도 있다. 문제가 보이면 직진하는 스타일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단점은 상처를 잘 받는다는 것이다. 상처를 받으면 위와 머리가 아파서 그다음 단계로 가는데 제약받는다.

-- 상처는 언제 받나.

▲ '추적단 불꽃' 활동과 민주당에서 정치 활동을 하면서 가족들이 공격받을 때 상처를 받았다. 나로 인해 지인들이 공격받는 것도 힘든 일이다. 최근에는 나를 민주당에서 출당시키라는 청원에 8만명이 동의하는 것을 보고 번아웃(탈진)이 왔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저렇게 많다니, 가슴이 아팠다.

--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부모님을 존경한다. 내가 온갖 욕을 먹고, 공격당하는 것을 보시면서 부모님도 힘드셨을 텐데, 별로 내색하지 않고 계속 나를 지지해주셨다. 정치인 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그분이 연설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게 됐다. 그분한테 진심과 인간다운 면모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2021년 8월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디지털 성범죄 전문위원 위촉식'에서 추적단 불꽃 [연합뉴스 자료사진]

-- 좌우명이나 삶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남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내가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데, 비행기를 타고 가다 추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유서를 쓴 적이 있다. 그때 '추적단 불꽃' 활동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제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자 한다.

-- 지금까지의 삶에서 하이라이트는 민주당 비대위원장 할 때인가.

▲ 아니다. 그때는 감정적으로, 신체적으로 아주 힘들었다. '추적단 불꽃' 활동을 하면서 피해자들을 만나고, 가해자가 잡히고, 뭔가 변화하는 게 눈에 보일 때 보람을 느꼈다. 이때가 하이라이트일 수 있다.

-- '추적단 불꽃'에서 본인은 '불'이라는 활동명을 갖고 있었는데. '불'은 무슨 의미인가.

▲ 그냥 활동명일 뿐이다. 파트너가 먼저 '단'을 하겠다고 해서, '추적단 불꽃' 글자 중에서 뽑을 만한 게 '불'밖에 없었다. 추, 적, 꽃 등은 활동명으로 쓰기에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불'이 됐다.

2022년 9월 성착취물 범죄 양형기준 강화 촉구 시위하는 진보당 당원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 n번방 취재는 어떻게 시작됐나.

▲ 연합뉴스와 뉴스통신진흥회가 공동 주최한 이슈탐사 공모전에 참여하기 위해 활동명 '단'과 디지털 성 착취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2019년 7월 말에 출품했고, 심사 결과는 9월에 나왔다. 1등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기성 언론사들의 취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이 취재를 하면서 힘든 것은 무엇이었나.

▲ 2019년 2월에 n번방이 만들어졌는데, 우리가 잠입한 것은 7월이었다. 5개월 동안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아동을 대상으로 말도 안 되는 성 착취가 온라인상에서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 많은 사람이 즐기고 방관했던 것이다. 한국 사회에 대한 실망으로 이민을 가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네팔에 자원봉사를 같이 갔던 남자 선배가 n번방에 들어와 있는 것이 확인된 일이었다. 그 충격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했나.

▲ 그렇다. 공모전에 출품하기 전에 이미 경찰에 신고했고, 1년여 동안 경찰과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해서 했다.

2020년 3월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박사방' 조주빈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 취재로 보람을 느낀 것은.

▲ 가해자가 잡히고 관련 제도가 정비된 데 대해서는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무력감이 더 컸다. 누가 잡혔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에 대해서는 전혀 제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디지털 성범죄는 여전한가.

▲ 온라인상에서는 아직도 빈번하게 이런 범죄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 한 기사를 보니 청소년 10명 중 4명이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된다고 한다. 아동 청소년들이 이런 범죄에 많이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희망을 갖자면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사회적 범죄라는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 피해자의 30%는 남자라는 이야기는 뭔가.

▲ 가해자가 피해자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남자 청소년이 가해를 한 사실을 누군가 알게 되면 이로 인해 협박받기 때문에 피해자로 전환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례를 종종 목격했다.

박지현이 최근 내놓은 책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 표지 [본인 제공]

-- 정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디지털 성 착취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정치권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민주당에서 연락이 왔고, 이재명 대선캠프에 들어가게 됐다.

--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어떻게 하게 됐나.

▲ 대선 패배 직후에 민주당 주요 인사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윤호중 의원은 차별금지법을 같이 추진하자고 했고.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이 이렇게 망하게 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대표는 하루에 다섯번이나 전화했다.

-- 비대위원장을 하면서 느낀 것은.

▲ 82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정치 경험을 깊이 했다. 거대 양당이 싸우는 것이 국민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변화하겠다, 혁신하겠다, 개혁하겠다는 말은 계속하는데, 항상 말로만 끝났다. 그래서 더 많은 청년이 나서서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최근에 내놓은 책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도 그런 취지로 쓴 것이다.

-- 비대위원장을 하면서 무시당했나.

▲ 고위전략회의를 할 때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이 발언하면 참석자들이 집중했다. 내가 발언을 시작하면 중진들이 갑자기 휴대전화를 보거나 옆자리 다른 의원들과 속닥였다. 윤 비대위원장한테는 보고하면서 나에게는 보고하지 않는 일도 발생했다. 회의 석상에서 나를 패싱하지 말라고 했더니 1주일간만 지켜졌다. 그들은 내가 잠깐 있다 가는 사람 정도로 생각한 듯하다. 그런 내가 의외로 자기 목소리를 내니 위협을 느낀 것 같다.

2022년 7월 민주당 대표 예비 경선 후보자 등록을 시도하는 박지현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재명 대표는 어떤 사람인가.

▲ 영리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에게 인정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정치인은 희생하는 사람인데, 이 대표는 본인을 희생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대선캠프에서 일하고 비대위원장을 했는데 이 대표와 밥 한 끼를 먹은 적이 없다. 그분은 우리는 식구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밥 한 끼 정도는 사줘야 하는 것 아닌가.

-- 이재명 대표 팬덤인 '개딸'은 어떤 사람들인가.

▲ 처음에는 2030 여성으로 시작됐으나 이제는 민주당의 강성 지지층이라고 보면 된다. 정치인에게도 지지자는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한다고 해서 문자폭탄을 보내거나 욕설을 해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는 하루에 1만건의 문자폭탄을 받은 적이 있고, 지금까지 받은 것은 적어도 10만건은 될 것이다. 문자폭탄 내용에는 이루 표현하기도 곤란한 성적인 욕설도 많이 들어있다. 팬덤을 이용해서 본인의 인지도를 높이고 후원금을 더 많이 받으려는 정치인들은 더욱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 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했는데, 그 이유는.

▲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민주당에서 당 대표는 2030 세대가 차마 도전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인식을 깨고 싶었다. 두 번째는 민주당을 직접 개혁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세 번째는 비대위원장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것을 지키기 위해서 당 대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 당 대표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나.

▲ 나한테는 당 대표가 되냐 안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민주당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이야기할 필요성이 있었다. 민주당 내 기득권을 낱낱이 세상에 보여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2019년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조국수호·검찰개혁·공수처 설치' 집회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성폭행 사건의 박완주 당시 민주당 의원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했나.

▲ 성폭행 사건이 터져서 가해자인 박완주 의원에게 1주일 시간을 줄 테니 거취를 결정하라고 했다. 비대위원장으로서는 당에서 나가라는 뜻이다. 그런데 박 의원이 3∼4일 후에 직원 채용공고를 냈다. 이는 나가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거취를 결정할 때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마저도 깬 것이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이 그에게 전화를 건 뒤에 나에게 바꿔줬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변하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한테 의원님이라고 불러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근데 아저씨, 지금 뭐 하세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586 정치인을 포함한 기득권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 조국 사태에 대해 민주당이 사과한 적이 있나.

▲ 민주당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자녀 특혜 문제 등을 지적하려면 우리가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된다는 인식이 많았다. 사과하고 반성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마이너스라는 계산인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조국 전 장관이 엄격한 잣대로 난도질당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도 잘못한 부분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 박원순 시장의 경우, 죽음으로 자기 잘못을 사과한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 박원순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당 차원에서 사과한 일이 없다.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은 피해자 입장에서 볼 때 최종적인 가해 행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본인의 죄를 밝히고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무책임하고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이다.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싶었다면 그 내용을 유서에 담았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피해자는 꽃뱀으로 몰리고, 서울시는 시장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민주당은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무리하게 후보를 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다.

2017년 7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를 제안하는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 [연합뉴스 자료사진]

-- 국회의원 연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국회의원은 봉사직이어야 한다.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의 급여(연봉 1억4천만원)에 대해 너무 많다면서 불만을 갖고 있다. 의원들이 일을 제대로 못 하니 이런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의원 수를 좀 더 늘리는 대신에 의원 연봉을 줄이고, 보좌진도 감축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국회의원 급여를 근로자 평균 임금인 월 350만원 정도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이재명 대표도 불체포 특권을 없애야 한다고 공표했었는데, 스스로 지키지 않았다. 물론, 검찰이 탄압하는 상황에서 불체포 특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대표 본인에게 정말 죄가 없다면 잡혀가더라도 국민들이 다시 꺼내줄 것이다. 본인은 항상 국민을 믿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실제로 국민을 믿고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이 대표가 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 국회의원들이 약자에 대한 관심은 갖고 있나.

▲ 현재는 돈이 있는 사람들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구조다. 정치인 중에는 돈 많은 사람이 많다. 지역구 의원 중에서는 지방에 살면서도 서울에 집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기업인들과 밥 먹고 대화하고 그들로부터 이익을 보게 된다. 그러니 비정규직을 비롯한 소외계층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이다. 국회의원 중에서는 저런 사람이 왜 의원인지, 저런 사람은 다음에 꼭 탈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2020년 총선에서 지역구도 [권도윤 일러스트]

-- 본인이 생각하는 진보는 무엇인가.

▲ 반차별주의와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수자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을 대변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아주 모호하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 진영대결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유물이다.

-- 한국의 지역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한국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지역주의다. 기존 정치인들은 지역주의를 이용하려 하지, 이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대거 정치권에 진입하면 이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 본인이 원하는 바람직한 한국은 어떤 모습인가.

▲ 타인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고 본다. 남의 아픔이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인식이 통용되는 사회, 남의 아픔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내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박지현 [촬영 이건희]

-- 창당하자는 제안이 들어오나.

▲ 새로운 정당을 만들자는 제안이 꽤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수십 년의 역사가 있는데, 이런 정당을 어떻게든 바꿔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추구했던 가치와 이념을 믿고, 이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 586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그들은 물러나야 한다. 그 자리에 청년들이 들어와야 한다. 지금 '솔루션 2045'라는 정책 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5월이나 6월에 출범할 예정이다. 차별과 격차, 불평등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을 전개할 것이다. 나는 사회를 바꿔나갈 의지가 있는 사람들, 한국의 지역주의를 깰 수 있는 청년들을 세력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 정치에 환멸과 혐오를 느끼는 국민의 마음이 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정치를 바꾸고 싶은 사람이다. 이를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해볼 테니 정치를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취재지원: 이건희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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