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로 넘어간 강남 납치·살인 사건... '수사의 재구성'
[파이낸셜뉴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40대 여성 A씨를 납치·살해한 사건의 피의자 7명이 모두 검찰로 송치되면서 숨겨진 전모가 낱낱이 드러날지 주목되고 있다. 검찰이 보완수사 과정에서 추가 공범을 찾아낼지도 관심이 쏠린다.
경찰은 수사 초기 단계에서 이번 사건을 단순 금전을 노린 납치·살인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주요 피의자들이 입을 열고, 사건의 배후와 피해자 간의 원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코인(가상자산) 투자 실패 문제로 깊어진 갈등이 살인까지 이르게 됐다고 보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먼저 붙잡힌 3인조... 경찰 늦장 대응 도마
제일 먼저 붙잡힌 피의자는 '실행책'인 황대한(35)·연지호(30)와 '지시책'인 이경우(35)다. 실행책 두 명은 범행 2~3개월 전부터 중도 이탈한 피의자 20대 이모씨와 함께 A씨를 미행하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밤 11시 46분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납치해 경기 용인으로 향했다. 납치 후 A씨의 코인을 빼앗으려 시도했지만 막상 A씨의 계좌에는 약 700만원의 가상자산만 있었다고 한다.
경찰이 범행에 사용된 차량 번호를 특정한 뒤에도 4시간이 지나서야(30일 오전 4시57분) 전국 수배 차량 시스템에 등록하는 등 공조 수사가 뒤늦게 이뤄진 정황이 발견됐다. 이미 A씨는 살해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이다. 실행책들은 충남 대전에 도착한 뒤 피해자를 오전 6시께 대청댐 인근에 유기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사인은 마취제 중독으로 추정된다.
경찰의 늦장보고도 도마위에 올랐다. 사건 발생지인 수서경찰서의 백남익 서장은 피의자들이 A씨를를 살해한 뒤 대전 대청댐 인근에 암매장하고 대전을 빠져나간 뒤인 지난달 30일 오전 7시에야 첫 보고를 받았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도 같은날 오전 6시55분 문자로 첫 보고를 받았다.
오전 8시께 이들이 버리고 간 차를 발견한 경찰은 차량에서 혈흔이 묻은 목베개, 주사기와 고무망치 등을 발견했다. 그제야 강력 사건으로 전환한 경찰은 형사팀을 급파했다.
황대한 연지호는 지난달 30일 오전 대전에서 청주로 이동해 각자 택시를 타고 성남으로 갔다. 성남 도착 직후 택시를 번갈아 타고 도보를 이용하며 도주했다. 피의자들은 중간에 옷을 갈아입었고 대포폰을 사용했으며 현금만 사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경찰은 지난달 31일이 돼서야 경기도 성남시에서 이들을 체포했다. 지시를 내린 추가 공범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경찰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지시책' 이경우를 긴급 체포했다.
■"윗선 있다"... 재력가 부부까지 모두 체포
경찰은 초기 수사단계에서 '지시책'인 이경우가 살인을 교사하고, 실행책인 황대한·연지호가 벌인 '금전 목적의 범행'에 무게를 뒀다. 이경우는 진술을 거부하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황대한의 입에서 "윗선이 있다고 들었다"라는 말이 나오며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코인 투자로 부를 쌓은 재력가로 알려진 유상원·황은희 부부가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후 언론을 통해 '퓨리에버 코인'의 투자 피해자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피해자 A씨와 부부의 원한관계가 알려지게 된다.
이경우는 퓨리에버 코인 투자 피해자 중 한명으로 A씨를 비롯한 투자자들과 함께 황은희의 시세조종이 퓨리에버 코인 폭락 원인이라고 의심했다고 한다. 이에 이들은 지난 2021년 3월 유상원·황은희 부부가 투숙하고 있던 호텔에 가서 감금·협박하고 총 1억9000만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빼앗는 사건을 벌였다. 해당 사건으로 이경우는 공동공갈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A씨는 불송치 결정이 났다. 이경우는 지난 2021년 9월께 유상원·황은희 부부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는 등 관계를 회복했다. 이들 부부는 이경우에게 3500만원가량을 빌려주고 법률사무소 취직에도 힘을 보태기도 했다. 반면 A씨와 부부간에는 민·형사 소송전을 이어왔다.
결국 경찰은 범행 후 유상원과 이경우가 두 차례 만난 정황을 포착, 지난 5일 용인의 한 백화점에서 유상원을 긴급 체포했다. 침묵을 지키던 이경우가 입을 연 것도 이때 전후로 보인다. 황은희의 혐의점을 포착한 경찰은 지난 8일 그의 신병을 확보했다.
경찰은 부부에 대한 수사를 이어간 뒤 13일 검찰에 송치하면서 "부부에 대해 최초 강도살인교사 혐의를 적용하였으나 범행 가담 경위나 역할을 고려할 때 공동정범으로 판단돼 강도살인 혐의로 죄명을 변경했다"고 말했다. 유상원·황은희 부부가 살인 교사는 물론,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증거를 발견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경찰은 이들이 약 6개월 전 이경우의 범행 제안을 수락해 착수금 7000만원 등의 돈을 준 정황 등을 포착했다.
■추가 피의자 나올까... 검찰 수사 주목
이제 검찰이 복잡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낼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재 배후로 지목된 유상원·황은희 부부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상황이다. 이경우가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해서 줬을뿐, 본인들은 범행과는 전혀 관련 없다는 취지다. 13일 오전 송치 호송차에 오르던 유상원은 취재진에게 "너무 억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의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면서 이경우와 부부 중 누가 주범인지도 불분명하다. 검찰은 복잡하게 얽힌 이들의 범행 동기와 주범이 누구인지 밝혀내는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보완수사 중 추가 공범이 나올지 여부도 주요 관심사다. 현재까지 '강남 납치·살해 사건'의 피의자는 배후로 지목된 유상원·황은희 부부를 비롯해 3인조 이경우·황대한·연지호 외에도 이경우의 아내 B씨, 범행 준비 과정에서 중도 이탈한 20대 이모씨까지 총 7명이다. 이중 아내 B씨만 불구속 송치, 나머지는 모두 구속 송치됐다. 특히 피해자 A씨가 유상원·황은희 부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던 중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퓨리에버 코인 투자 관련 인물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 공범이 더 나올 가능성이 있다. 퓨리에버 코인 투자 피해자들 중심으로 '추가 공범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들이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관련해 검찰은 사건의 발단이 된 퓨리에버 코인의 시세 조종 정황도 포착해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2020년 11월 코인원에 단독 상장된 직후와 이듬해 1월 두차례 시세 조종이 이뤄졌다고 파악했다. 코인원 전 임직원 2명이 가상자산을 상장하는 대가로 수십억을 챙긴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한편 13일 B씨와 이모씨를 제외한 5명의 피의자들이 범행 모의단계에서 피해자 A씨의 남편도 범행 대상으로 점 찍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이들에게 살인 예비 혐의도 적용됐다. 따라서 남편과 피의자들 간의 원한관계도 주요 수사 선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A씨의 남편은 사기죄로 1심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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