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명 숨진 철도 사고, 이 재난은 어떻게 사회화 됐나 [책&생각]
저널리스트가 유가족의 시선으로 기록
‘조직과 구조’ 파헤쳐 사건 진실에 접근
궤도 이탈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와 어느 유가족의 분투
마쓰모토 하지무 지음, 김현욱 옮김 l 글항아리 l 2만1000원
“<궤도 이탈>을 읽으면서 참사의 원인은 제각기 다르지만 참사가 발생하고 유가족이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은 놀랍게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5년 4월25일 일본에서 여객 철도가 탈선하면서 107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참사를 다룬 <궤도 이탈>. 이 책의 맨 앞에는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누나를 잃은 유가족 박진성씨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2003년에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 2014년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박씨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재난 참사의 사회화”를 강조한다. 우리 사회의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이 깊이 공감하는 ‘재난 참사의 사회화’란 무엇일까. 또 그것은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자 답이다.
<궤도 이탈>은 전 <고베신문> 기자이고 현재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 중인 마쓰모토 하지무가 쓴 논픽션 작품이다. 마쓰모토는 사건이 발생한 순간부터 사건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난 시점까지 유가족 모임의 주축인 아사노 야사카즈를 밀착 취재하며 끈질기게 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책은 아사노라는 유가족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2005년 4월25일, 아사노의 아내 요코는 아사노의 작은어머니 병문안을 위해 집을 떠난다. 아사노의 여동생과 둘째 딸도 함께했다. 셋은 서일본 철도회사 제이알(JR)이 운행하는 도시샤마에행 쾌속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 기관사는 정차해야 할 이타미역에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지나치더니 다시 후진했다. 그리고 몇 분 뒤 메이신 고속도로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이는 곡선 구간을 시속 116㎞의 속도로 달리더니 탈선했다. 해당 구간의 제한 속도는 시속 70㎞였다. 이 사고로 107명이 사망하고, 562명이 다쳤다. 아사노의 아내와 여동생도 사망자에 포함됐다.
책에 따르면 사고 직후 일본 언론은 건널목 사고라는 오보를 냈다. 아사노는 사고 이후 10시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지옥에서 헤매는 기분”이었다. 아내와 여동생의 생사 확인을 위해 40곳 이상의 병원을 찾아야 했다. 장례식장을 찾은 제이알 회장은 “이번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틀에 박힌 사과를 한 뒤, “앞으로 또 보상 문제도 있으니까요”라는 믿기지 않는 말을 뱉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제이알은 유가족을 개별적으로 대응하면서 ‘정보의 진공 상태’에 있는 유가족을 더 고립시켰다. 아사노는 당시 상황에 대해 “화산 분화구에 남겨진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아사노가 사고 직후 겪은 일에 대해 저자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그린다. 아사노의 감정선을 따라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의 진행 과정을 목격한 국내 독자는 유가족의 입장이 저절로 된다. 책을 읽으며 ‘참사의 사회화’가 되는 셈이다.
고단샤(강담사) 논픽션상을 받은 이 책은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진수를 보여준다. 한 인물을 통해 독자가 유가족의 입장이 되도록 만들 뿐 아니라, 방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 그리고 복잡하게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사실’과 ‘사실’을 연결하고 재구조화해 보여준다. 제이알이 사고 뒤 보여주는 행태나 밝혀진 사실들을 보면, 이 사고는 ‘인재’임이 분명하다. 제이알 안전추진부장은 사고로부터 6시간이 지나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사건 은폐로 보이는 발표를 한다. 사고 난 열차에 제이알 운전사 두 명이 타고 있었지만 구조 활동에 협조하지 않고 업무를 하러 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사고 한 달 뒤 제이알은 사고 당시 있었던 경영진의 책임을 물어 인사 혁신안을 내놓지만, 1년도 안 돼 사고 책임자들이 자회사의 사장 자리에 앉는다. 아사노는 이런 행태를 보며 그저 사고를 운전사 개인의 실수로 돌려버리고, 조직 꼭대기부터 말단까지 승객의 안전을 자신들이 지켜야 한다는 자각이 없는 ‘조직 그 자체’를 문제의 핵심으로 본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도시 컨설턴트로 활동해온 아사노는 사고 원인의 과학적 규명과 재발 방지에 대한 시스템적 개선을 위해 기술자로서의 면모를 십분 발휘한다. 그는 사고 원인 4가지를 주요하게 지적한다. ‘징벌적인 일근교육’ ‘여유가 없는 기차 시간표 편성’ ‘자동열차정지장치의 새 버전(ATS-P) 미설치’ ‘회사 전체의 안전 관리 체계 미비’가 그것이다. 그는 이 핵심 4가지 항목을 제이알 쪽에 끊임없이 전달하고 확인하고 요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근본 원인이 있다. 그것을 파헤쳐야만 사고를 사회화할 수 있다. 사고의 사회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유가족으로서의 내 책임은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고로부터 9년이 지난 날, 제이알 대표가 참석한 ‘4·25네트워크’ 모임에서 아사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사고 후 4년이 지날 즈음, 유가족 대표와 제이알 관계자 그리고 중립적인 연구자로 구성된 ‘공동검증위원회’ 설치를 제이알에 요구했다. 제이알은 이를 받아들였다. 대형 사고 역사에서 전례가 없던 이 시도를 통해 ‘공동검증위원회’는 총 148페이지에 이르는 두 편의 보고서를 완성한다. 그 보고서에는 현장의 실수만이 원인이 아니라 회사의 경영 이념, 경영진의 안전 의식, 지휘 계통과 관리 방식, 직원 교육과 개개인의 책임감 등 복합적인 사고 요인을 언급하고 안전 확보 방안까지 담는다.
책에 등장하는 아사노의 문제의식, 조사 활동, 조사 보고서 등을 보며 ‘재난 참사의 사회화’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과 발품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다. 저자가 깊고 넓게 취재해 길어 올린 ‘사실과 진실’, 그리고 아사노라는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이 되어 잘 직조된 이야기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재난 참사의 사회화’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방법론으로까지 확장하고, 사회적 참사를 여러 번 겪고도 ‘재난 참사의 사회화’엔 무관심한 국내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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