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증여론’에 가려진 마르셀 모스의 ‘사회학’
몸 테크닉
마르셀 모스 선집 1
마르셀 모스 지음, 박정호 옮김 l 파이돈 l 1만8000원
마르셀 모스(1872~1950)는 인류학의 기념비적인 저서 <증여론>(1925)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저서가 뿜는 빛은 모스의 다른 학문적 성취를 가리는 그림자가 되기도 했다. <증여론>이 모스 학문과 동일시된 탓에 사회학자로서 모스의 활동이 합당한 조명을 받지 못한 것이다. 국내 모스 연구자들이 모스의 지적 유산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마르셀 모스 선집’(전 6권)을 기획하고 그 첫 번째 책으로 <몸 테크닉>을 번역해 내놓았다. 이 책은 모스가 1921~1934년 사이에 프랑스심리학회에서 발표한 네 편의 강연문을 묶은 것이다. 모스 사회학의 근본 구도를 확인할 기회를 주는 글 모음이다.
모스의 학문 이력에 출발점이 된 사람은 프랑스 현대 사회학의 창시자 에밀 뒤르켐이다. 모스의 외삼촌이 바로 뒤르켐이었다. 모스는 뒤르켐이 가르치던 보르도대학에 입학해 뒤르켐의 지도를 받으며 사회학‧심리학‧철학을 공부했다. 뒤르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모스의 관심사는 넓어서 인류학‧종교학‧언어학을 두루 아울렀다. 모스는 젊은 시절부터 사회주의자로서 정치 활동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는데, 장 조레스가 창간한 사회당 기관지 <뤼마니테>의 편집을 맡기도 했다. 이런 실천적 관심은 모스의 학문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미개사회’의 선물 순환 체계를 살핀 <증여론>에서 그런 관심의 발현을 볼 수 있다. 호혜성에 바탕을 둔 선물 경제에 대한 분석은 자본주의적 착취가 없는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이 투영된 작업이기도 했다. <증여론>은 미국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가 조사한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포틀래치’와 영국 인류학자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가 목격한 멜라네시아 원주민의 ‘쿨라’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 선집의 첫 권 <몸 테크닉>도 <증여론>과 유사하게 수많은 인류학적 사실들을 자료로 활용한다.
뒤르켐이 사회학을 이웃 학문들과 구별되는 독자적 학문으로 세우는 데 힘을 썼다면, 모스는 사회학과 이웃 학문의 협동에 더 주목했다. 그런 태도가 잘 드러난 것이 ‘총체적 인간’이라는 모스의 개념이다. 뒤르켐이 인간의 사회적 차원에 시선을 모았던 것과 달리, 모스는 사회적 차원만 보아서는 인간의 구체적 삶의 양상을 포착할 수 없고 신체적‧생리적 차원과 심리적‧정신적 차원을 함께 보아야 그 총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책에 묶인 첫 번째 강연문 ‘감정 표현의 의무’(1921)에서 모스의 ‘총체성’ 관점을 명확히 볼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장례 절차를 사례로 삼은 이 글은 뒤르켐의 주장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뒤르켐은 <종교생활의 기본 형태>에서 “애도는 집단이 부과한 의무여서 대개 개인의 감정상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뒤르켐이 애도의 의무적 차원에 시선을 한정한 것과 달리 모스는 장례 절차라는 사회적 차원과 함께,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이라는 심리적 차원, 비명과 울음이라는 신체적‧생리적 차원을 동시에 보려 한다. 망자를 두고 사람들은 집단적인 리듬과 운율에 맞춰 정해진 시간 동안 비명을 지르고 울음을 터뜨린다. 확실히 애도는 사회적 절차를 따른다. 그러나 그 절차가 눈물의 자발성과 슬픔의 진정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눈물의 생리와 슬픔의 심리는 사회적 절차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면 왜 절차를 따라 애도하는가? 정해진 규칙 속에 애도 행위를 할 때 그 애도의 자발성과 진정성이 집단 안에서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사회적-심리적-생리적 차원이 한 덩어리를 이룬다는 데 있다. 모스는 이렇게 세 차원을 하나로 묶어서 보아야만 인간을 구체적 총체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총체성을 보여주는 다른 사례를 두 번째 글 ‘집단이 암시하는 죽음 관념이 개인에게 미치는 신체적 효과’(1924)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스는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원주민들에게서 발견되는 ‘기이한 죽음’을 거론한다. 누군가 사회적 금기를 어기는 죄를 저질렀다고 해보자. 집단 구성원들이 그 사람을 향해 ‘너는 죽을 것이다’라는 암시를 보낸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아주 튼튼했는데도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만다. 관건이 되는 사실은 집단 암시가 자기 암시로 바뀐다는 데 있다. 집단이 죽음의 암시를 보냈을 때, 그 암시가 곧바로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그 암시를 받은 사람이 스스로 ‘나는 죽을 것이다’라는 자기 암시를 걸어야만 죽음에 이른다. 암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해주던 성스러운 힘과 연결된 끈이 끊겼다고 생각하고 이제 죽을 수밖에 없다고 믿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의 신체가 급속히 활력을 잃고 이내 죽게 되는 것이다. 이 기이한 죽음에서도 집단 암시라는 사회적 차원과 자기 암시라는 심리적 차원, 그리고 신체가 스스로 무너지는 생리적 차원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이 확인된다.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세 번째 글 ‘몸 테크닉’(1934)도 인간을 같은 관점으로 바라본다. 모스가 말하는 ‘몸 테크닉’이란 걷고 뛰고 팔을 흔드는 일상의 몸짓을 포함해 인간 신체에 부착된 의식적‧무의식적 습관‧예법‧기능을 모두 포괄한다. 이 글에서 모스는 뉴욕의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겪은 일을 이야기한다. 그곳 간호사들의 걸음걸이가 낯설면서도 친숙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것이었다. 프랑스에 돌아온 모스는 파리에서도 그런 걸음걸이를 목격했다. “프랑스 사람인데도 젊은 여성들이 그렇게 걸었다.” 미국 여성들의 걷는 방식을 프랑스 여성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모방한 것이다. 여기서 걸음걸이라는 ‘신체’의 기능이 개인의 모방 ‘심리’와 결합해 ‘사회적으로’ 전파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모스는 이런 ‘몸의 테크닉’을 ‘하비투스’(habitus)라는 라틴어 낱말로 표현한다. 하비투스는 태도‧외관‧복장‧습관을 뜻하는 말인데, 모스는 하비투스가 교육‧관습‧유행‧신분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이 하비투스 개념이 훗날 이론적 정교화를 거쳐 피에르 부르디외의 통찰로 이어졌다. 여기서 엿보이듯 모스가 내놓은 개념들은 풍요로운 사회학적 상상력을 품은, 하지만 미처 만개하지 못한 봉오리라고 할 수 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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