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가족’, 폐지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대안만 막을 뿐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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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폐지하라'는 과격한 주장을 담은 제목 뒤에 이어지는 책의 첫머리에, 사람들이 보일 반응을 먼저 써놓았다.
소피 루이스는 영국 출신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로, 2019년 첫 책 <이제는 완전한 대리모 제도를> 에서 아이를 유전적 관련이 있는 이들의 소유물로 여기는 기존의 가족 개념을 부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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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폐지하라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는 법
소피 루이스 지음, 성원 옮김 l 서해문집 l 1만4800원
‘가족을 폐지하라’는 과격한 주장을 담은 제목 뒤에 이어지는 책의 첫머리에, 사람들이 보일 반응을 먼저 써놓았다. “가족을 폐지하라고? 중력이나 하나님을 폐지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좌파가 이제는 할머니를 빼앗고, 아이들을 몰수하려 하는구나. 이게 진보야? 염병!?”
소피 루이스는 영국 출신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로, 2019년 첫 책 <이제는 완전한 대리모 제도를>에서 아이를 유전적 관련이 있는 이들의 소유물로 여기는 기존의 가족 개념을 부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번 책 <가족을 폐지하라>에서 그는 수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란 제도를 유일한 해결책이라 믿으며 놓지 못하는, 우리의 끈질긴 집착을 떼어놓으려 시도한다. “가족은 대안을 가로막고 있을 뿐”인데, 없어지면 안 되는 이유가 과연 있는가?
가족 제도의 문제점 자체는 새로울 게 없다. 지은이가 지적하듯, 가족은 근본적으로 부르주아 경제와 국가가 재생산을 위해 동원하는 ‘통치 수단’이며, 그것은 돌봄과 복지 등을 사유화의 영역으로 떠넘기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부부, 핏줄, 유전자, 자손의 소유 개념에, 그리고 공동이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의 사유화에 입각한 가족은 대중적인 유기체가 아니라 국가 제도일 뿐이다.” 한 꺼풀 허울을 걷어내고 보면 “가족이란 국가와의 경제적 계약 또는 노동자 교육 프로그램일 뿐”이며, “우리는 인간 ‘본성’에 대한 다른 설명을, 사회적 재생산을 조직하는 다른 방식을 발명할 수 있다.”
‘백인’, ‘이성애자’, ‘부르주아’ 가족이 문제라며, 유색인종, 퀴어, 프롤레타리아 등 피지배층의 버팀목인 가족은 폐지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가족 제도의 개혁, ‘대안’ 또는 ‘확장’ 가족의 가능성 등이 이런 주장과 맞닿는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돌봄을 사적인 영역에 가둔다”는 가족의 가장 근원적인 특징은 그대로라고 지적하며, 낡은 제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집단적으로 이를 놓아버려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플라톤으로부터 샤를 푸리에, 퀴어 운동, 가사노동 해방 운동에 이르기까지 가족 폐지론이 밟아온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감옥 폐지’ 운동을 이끈 루스 윌슨 길모어의 말을 인용해, 폐지는 “무언가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가 존재하는 상태”라는 점을 강조한다. 혈연관계에 입각해 돌봄·나눔·사랑을 배분하는 기존의 가족 제도를 거부해야 그것을 대체할 무언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혈연’(kin)이 아닌 ‘근족’(kith)이라는 개념에 주목하며, 인종·혈통·정체성보다 지식·실천·장소에 근거하는 인간들 사이의 새로운 유대 관계를 만들어 가보자고 제안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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