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나이 50, 지게차 배우는 주인이 책 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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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은 좋고, 오늘은 지게차 실기 배우는 날이다.
뭔 일이야, 우리 책방을? 딱히 소개할 것도 없고 마침 지게차를 배우는 책방 주인한테 책방 소개라니.
나 책방 주인이었어.
'맞아요. 여기 책방입니다. 주인장이 방금 지게차 배우고 와서 책을 파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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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은 좋고, 오늘은 지게차 실기 배우는 날이다. 나이 50 되어 지게차를 배울 줄이야. 팔레트에 타이어를 올리고, 이쪽저쪽으로 옮겨보고. 생각보다 쉽네. 그리고 잠시 쉬며 담배를 꺼내는 때 울리는 핸드폰. 한겨레? 신문사? ‘쑬딴스북카페’를 소개해달란다. 뭔 일이야, 우리 책방을? 딱히 소개할 것도 없고 마침 지게차를 배우는 책방 주인한테 책방 소개라니.
“여기 책방인가요?” 지나가다 가끔 손님들이 물어보긴 한다. 그렇다고 하면 놀라고, 더러는 반가워하고, 놀란 듯 황급히 나가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책방을 하면서 좋은 건 손님이 알아서 정리된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진상’은 아예 오지 않는다. 물론 개념 떨어진 손님이 가끔 오긴 한다. 마시던 음료를 새 책 위에 아무런 생각 없이 올려둔다든지, 새 책인데 본인 책인 양 뒤적거린다든지. 그렇다고 그러지 말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다.
우리 책방에는 큰 강아지가 한 마리 있다. 헤이리를 산책하면 거의 다 알아본다. “어머, 탄이 아니야!” 자기 이름을 부르는 줄 알고 냉큼 달려가서 배를 깔며 만져달란다. 그러면 사람들은 귀엽다고 난리다. 탄이 너도 참 대단하다. 책방 안에서는 밖에 누군가 지나가면 엄청 짖는다. 들어오라는 소리인지 내가 편히 쉬는 중이니 모른 채 지나가라는 건지? 탄이만 알겠지. 그래도 이제 4살이 지나 텐션 좋고 체력도 좋은 청년 강아지야. 아프지만 말아라. 사람이나 강아지나 아프면 서로 힘들어.
며칠 전에 비티에스(BTS) 지민이 북카페 앞 스튜디오에 다녀간 모양이다. 세상에나. 책방에서 세계 평화를 이뤘다. 테이블 4개에 의자가 10개도 되지 않는 책방 안에 40여 명이 모여 앉았다. 미국, 중국, 홍콩, 대만, 멕시코, 우루과이, 일본, 세계 각국에서 지민을 본다고 와서, 길 건너 우리 책방에 앉아 있었다. 이들에게 주문받고 챙기느라 종일 밥 한 숟갈 들지 못했고, 아내는 급기야 눈 실핏줄이 터져 지금도 고생이다. 여보, 무섭게 노려보지 마세요. 그래도 책방 역사상 역대급 매출을 끊었으니까요. 책방을 하면서 이런 날이 더 올까? 꿈꾸지 말자, 손님 1명만 와도 고마운 일 아닌가.
‘날도 좋은데 책방 뒤에서 고기나 한번 구워 먹자. 목련 지기 전에.’ 증권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래. 돈 버느라 고생 많으니 고기는 네가 사와. 책방 뒤편이야 새와 동네 고양이들 놀이터이니 언제라도 환영이다. 어느 고기인들 문제인가. 막걸리에 목련잎 담가 고기 구워서 한잔하자. 친구야, 요즘 많이 힘들지. 그래도 연봉 1억 넘은 네가 힘들면 책방 주인은 다 죽어야 한단다.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봄볕은 따듯하고, 탄이는 꾸벅꾸벅 졸고, 나도 헤밍웨이를 읽다가 곁에 둔 채 같이 꾸벅꾸벅 존다. 아내는 지민이 또 올지 모른다고 혼자 열심히 무언가를 주문하고 있다. 또 오지 않을 것 같으니 무리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내버려 둔다. 실핏줄 터진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으니. 그래. 책방이지. 맞아. 나 책방 주인이었어. 오늘도 책 팔아야지. 그러다 또 안 팔리면 뭐 어때, 김치 쪼가리에 막걸리나 한잔해야지.
문 열리는 소리. 손님이다! “저기 죄송한데, 여기 원래 있던 식당은 어디로 갔어요?” 그럼 그렇지. “헤이리 안쪽으로 이전했어요.” 다정한 커플이 나가면서 한마디 나눈다. “여기 책방인가 봐.” 멀어지는 손님을 보며 속으로 되뇐다. ‘맞아요. 여기 책방입니다. 주인장이 방금 지게차 배우고 와서 책을 파는 곳입니다.’
파주/글·사진 ‘쑬딴’ 쑬딴스북카페 주인장
쑬딴스북카페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 82-91
instagram.com/sultans_book_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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