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고수되기] 짜릿한 손맛愛 빠지다, 선상바다낚시
새벽에 움직이는 출조버스 타고 죽변항 도착
구명조끼 입고 낚싯배 올라 30분 이상 이동
물고기 잘 잡힌다는 ‘포인트’서 낚싯줄 던져
‘툭툭’ 입질에 릴 빠르게 감아 … “월척이다!”
배 위서 회 뜬 참가자미 한입 ‘선상 위 사치’
장장 8시간 사투 … 항구 복귀땐 아쉬움 가득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낚시광인 폴 퀸네트는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을 돌아보는 데 낚시만 한 취미가 없다는 의미다. 지금이 그때일까. 낚시는 유독 광적으로 빠지는 사람이 많은 취미다. 이뿐만 아니라 선조의 글과 그림, 현대 영화나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중요한 메타포(은유)로도 쓰인다. 유튜브 채널 ‘낚시인 양프로’로 이름을 알린 데다 최근 본인 이름을 걸고 ‘심해 갑오징어 낚시대회’까지 주최한 40여년 경력의 낚시 고수 양근배씨와 인생 첫 낚시를 하러 경북 울진으로 떠났다.
수도권 낚시꾼을 실어 나르는 출조버스
“자정이요? 자정에 울진을 어떻게 가요?”
양씨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자정. 경기 부천의 한 공용주차장에서 기다리면 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가보니 늠름한 전세버스 한대가 불을 켜고 어둠 속에 서 있다. 일출 전에 출조해야 하는 수도권 낚시꾼들은 새벽에 움직이는 이 ‘출조버스’를 탄다. 버스 좌석엔 발받침대·목베개·충전기가 있다. 이미 버스에 탄 낚시꾼들은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꿈나라에 간 상태. 양씨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버스 의자에 구겨지듯 잠을 청했다.
“자, 다들 일어나세요. 아침 듭시다!”
버스기사의 호령에 낚시꾼들이 눈을 비비고 일어난다. 오전 4시30분. 울진 죽변항과 가까운 강원 삼척이다. 아직은 하늘이 어둑하다. 버스에서 내리니 찬 공기가 얼굴을 때리는 듯하다. 좀비처럼 걷는 낚시꾼들 뒤를 쫄랑쫄랑 따라가니 오래된 백반집이 나온다. 된장국에 달걀부침 등 반찬 서너가지. 이 정도면 제법 만찬이다. 신나서 밥을 크게 한수저 뜨려는데 양씨가 그런다.
“근데 배에 화장실이 없어요.”
울진 죽변항까진 버스로 다시 30분 정도 걸린다. 죽변항에서 내리자 하늘은 어스름하니 벽자색(碧紫色)이다. 4.58t 규모의 선박, 소위 말하는 ‘통통배’들이 죽변항에 죽 늘어서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생선 경매 소리가 들린다. 쓱 둘러보니 참가자미 경매다. 가자미류 가운데 가장 맛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물고기다. 오늘 낚을 물고기도 한창 물오른 참가자미다.
통통배 타고 고패질로 ‘손맛’
“초보자랑 낚시를 가면 이게 힘들어요. 내가 짐을 다 챙겨야 하거든. 하하!”
양씨 말대로 낚시는 모든 게 일이다. ‘덕성호’에 양씨가 아이스박스며 낚싯대며 짐을 한가득 싣는다. 그사이 덕성호 선장인 설덕수씨가 명부를 들고 다니며 낚시꾼을 분주히 헤아린다. 구명조끼를 입고 낚싯배에 올라탔다. 털털거리는 소리와 함께 죽변항을 출발한다. 출항과 동시에 바다와 하늘이 닿은 것 같은 물마루를 비집고 붉은 해가 올라온다. 두둥실 떠오른 해를 보며 속으로 만선을 빌어본다.
죽변항에서 30분∼1시간쯤 갔을까. 털털거리던 배가 멈춘다. 물고기가 잘 잡히는 ‘포인트’에 도착한 것이다. 보통 잘나가는 낚싯배 선장들은 자기만의 포인트가 있다. 모두 오는 길에 조립한 낚싯대를 꺼낸다. 낚싯대는 낚싯줄을 감은 릴, 낚싯대, 줄, 낚싯바늘, 추로 이뤄져 있다.
“미끼 끼울 수 있겠어요?”
양씨가 미끼 더미를 내민다. 종이상자엔 살아 꿈틀거리는 청개비(청갯지렁이)가 한가득이다. 지네처럼 커다란 청개비는 비위가 좋은 편인 기자도 영 익숙지 않다. 미끼까지 꿰었으면 이젠 낚싯줄을 던지기만 하면 된다. 원거리에서 투척하듯 낚시하는 ‘원투낚시’와 달리 선상낚시는 추의 무게를 활용해 낚싯줄을 조심스럽게 던진다. 추가 바닥에 닿으면 바닥을 긁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여기서 조금 위로 떨어뜨려야 고기가 문단다.
선상낚시는 종류가 다양하지만 대부분 ‘고패질’ 낚시다. 고패질이란 낚싯줄을 던져 놓고 미끼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유인해 고기를 낚는 방법이다. 낚싯바늘과 함께 걸린 추가 바닥 모래를 일으켜 고기의 시야를 가리는 원리다.
양씨에 따르면 낚싯대를 잡고 있으면 미세하게 물고기가 미끼를 문 느낌이 온다고 한다. 궁중 여인의 임신 여부를 손목에 실을 감아 알아냈던 의관처럼 미세한 입질을 느껴야 한다. 도통 바람인지 입질인지 모르던 그때 낚싯대 끝에 ‘툭툭’ 하고 전과 다른 느낌이 온다.
“지금!”
양씨의 목소리에 릴을 빠르게 감아냈다. 줄이 10m쯤 올라왔을까. 추의 무게와 사뭇 다르다. 검푸른 물을 헤치고 커다란 고기가 뛰어오른다.
“와! 월척이다!”
펄떡펄떡 뛰어오른 물고기는 봄의 신사, 도다리다. 눈이 한쪽에 몰려 있어 광어와 생김새가 비슷한데 눈 위치로 구분하면 된다. 낚시꾼들은 ‘좌광우도’라고 한다. 눈이 왼쪽으로 쏠리면 광어, 오른쪽에 쏠리면 도다리라는 뜻이다. 낚싯줄에 매달려 펄떡이는 물고기의 힘이 손끝부터 어깨까지 전해왔다. ‘이게 손맛이구나!’ 도다리 ‘첫 개시’에 이어 양씨도 참가자미를 순식간에 낚았다. 참가자미는 배의 연노랑 무늬가 특징이다.
이제부턴 시간 싸움이다. 낚시꾼들은 몇시간 동안 미끼를 끼우고, 낚아 올리는 걸 반복한다. 워낙 낚싯바늘이 많아 서로 옷을 꿰는 것도 부지기수. 선장이 옷을 꿰이자 “고기 안 잡힌다고 나 잡아갈라고 그라네”라며 사투리로 농을 던진다. 한낮의 바다는 짙푸른 양탄자를 깐 것처럼 너울너울 움직인다.
“오늘은 낚시하기 딱 좋네요. 파도도 없고.”
자정부터 달려와 정오 넘어서까지 낚싯대만 노려보는 낚시꾼들의 집중력에 감탄이 나온다.
“거이, 고기 잘 봐바. 지느러미에 시계 안 붙었나.”
선장의 말처럼 오후 2시께가 되자 입질이 줄고 배 위는 적막하다. 양씨는 잡은 참가자미를 준비한 회칼과 도마를 꺼내 금세 회로 떠준다. 초장에 푹 찍어 흰 생선살을 한입에 꿀꺽한다. 막 잡은 쫀득쫀득한 참가자미 맛은 그야말로 선상 위의 사치다. 장장 8시간 동안 ‘어획량’은 도다리 1마리, 참가자미 6마리. 첫 낚시치고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8시간을 낚싯대만 잡았는데도 낚시꾼들은 바다가 아쉽다. 돌아가는 뱃길, 꾀죄죄한 몰골이지만 잡은 물고기로 어떤 요리를 만들지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운다. 죽변항 방파제에 출발할 땐 보지 못했던 ‘동해안 최고의 어업전진기지, 죽변항 입항을 환영합니다’ 플래카드가 나부낀다. 고기를 배에 가득 채워 환영받는 기분. 아버지들은 이런 기분으로 낚시에 빠졌을까. 문득 낚시꾼의 마음 한조각을 훔쳐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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