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447) 소금장수와 방물장수
차돌은 옆에서 뒹굴대더니…
바우와 차돌은 아삼륙이다. 두 녀석이 함께 걸어가는 걸 보면 큰 바윗덩어리가 굴러가고 그 옆에 차돌 하나가 붙어서 가는 꼴이다.
이상한 것은 여름에 강에서 멱을 감을 땐 그 모습이 역전된다. 바우는 자라목 모양의 남근이 부끄러워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감싸지만 차돌은 보란 듯이 거근(巨根)을 흔들며 멱을 감는다.
저잣거리 소금 도매상에 두 녀석이 엿을 팔러 들어갔다. 주인 황 영감이 반갑게 맞아 엿을 사주고 소금장수가 되길 권했다. 둘 다 열여섯살이지만 덩치 차이로 바우는 지게에 소금 한자루를 지고 성큼성큼 걸었지만 차돌은 반자루를 지고도 간신히 일어났다. 고개 넘고 물 건너 나흘 동안 다섯골을 돌아 소금을 다 팔았지만 주막에 방값·밥값을 내고 나자 그래도 바우는 몇푼 호주머니에 남았지만 차돌은 엿값도 남지 않았다.
차돌은 코피가 터졌다. 개울에 내려가 코피를 씻고 나니 누군가 얼굴을 닦아주는데 코끝에 이상한 냄새가 풍겨 쳐다봤더니 얼굴이 화사한 마님이 옆에 앉아 속치마로 차돌 얼굴을 닦아주는 것이다. 속치마에 묻힌 얼굴이 새빨간 홍당무가 됐다.
마님을 따라나섰다. 어디선가 봤던 얼굴이다. 맞다. 여름에 멱 감을 때 차돌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 마님이다.
마님은 노리개 끈으로 허리를 졸라매 엉덩이를 발걸음 따라 출렁거리며 저잣거리 소금 도매상에서 멀지 않은 방물가게로 들어갔다. 난생 처음 박가분 냄새가 가득 찬 방물가게로 들어가자 방물가게 주인마님은 생긋이 웃으며 차돌 볼을 꼬집었다. 생전 처음 고추가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님이 말했다. “아직 뼈가 굳지 않았는데 그 무거운 소금 자루를 지고 산 넘고 내를 건너면 마흔도 안돼 도가니가 닳아 안방 앉은뱅이가 돼.”
며칠 후 바우는 소금 지게를 지고 차돌은 방물 고리짝을 메고 고갯마루에 올라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우는 가쁜 숨을 가다듬었지만 차돌은 가벼운 방물 고리짝 하나를 메고 와 숨이 가쁠 리가 없었다.
“이 미련퉁이야, 소금장수는 마흔이 되기 전에 무릎이 나가 안방에 쪼그리고 앉아 마실도 못 가는 앉은뱅이가 된다더라.”
먼저 포문을 연 사람은 차돌이다.
“너는 인마, 남자 새끼가 방물장수가 뭐꼬. 그건 여자가 하는 장사 아이가.”
소금장수와 방물장수는 고개를 내려가 백석골에 다다랐다. 둘은 쪼개졌다. 차돌은 주인마님이 알려준 대로 우선 부자 과붓집을 찾았다. 홍 진사네 서른여섯살 과부가 “호호호 총각 방물장수네, 얼른 들어와봐” 했다. 차돌이 고리짝을 열자 노리개·박가분·동백기름·실타래·뜨개바늘·골무가 가득했다.
“이건 뭐야?” 과부는 눈이 밝아졌다. 살짝 드러나 있는 목신을 끄집어냈다. 차돌은 얼른 빼앗아 고리짝 속에 집어넣으며 “이건 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했다. 과부가 꼬치꼬치 캐묻자 “명륜골 유 대감댁 안방마님께서 일년반 전에 부탁하신 걸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못 구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정선에서 재료를 구해 전각 명인이 실물을 본떠서 한달이나 걸려 만들어 들기름에 일곱번 튀겨낸 명품 중의 명품입니다요”라고 했다.
홍 진사가 요절하고 칠년을 독수공방 지켜온 과부는 명품을 잡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 목신은 불거진 핏줄도 그대로 양각된 명품이다.
“뭐 하나 물어보세. 전각사(剪刻士)가 실물을 보고 조각을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가?”
과부가 모깃소리만 하게 묻자 주인마님이 시킨 대로 거짓말을 했다.
“부끄러운 얘기입니다만 소인이 하루에 삼십냥씩 받고 전각사 어른 앞에 바지를 벗고 서 있었지요.”
바우가 팔다 남은 소금 지게를 주막 마당에 세워놓고 밤새도록 기다려도 차돌은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야 차돌이 휘청거리며 주막에 왔다.
바우는 소금 자루를 지고 다른 골짜기로 가고 차돌은 제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 명품 목신을 판 거금을 방물가게 주인마님께 바쳤다. 주인마님이 닭백숙을 고아 줬다. 차돌은 집에도 가지 않고 주인마님에게 붙잡혀 밤을 새웠다. 낮 동안 주인마님은 방구석에서 예리한 전각 칼로 새로 목신을 다듬고 차돌은 닭백숙을 먹고 그 옆에서 뒹굴뒹굴 굴렀다.
세월이 흘렀다. 소금장수 바우는 착실하고 정직하게 장사해 황 영감의 무남독녀와 혼례를 올리고 소금 도매상을 물려받았다. 차돌은 색(色)에 곯아 서른도 되기 전에 앉은뱅이가 돼 방물가게에서도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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