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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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없고 염려 없는 인생은 없다.
어니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 을 보면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이며, 22%는 사소한 일,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일이고, 오직 4%가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일이란다. 느리게>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걱정하면서 그 일을 대비하는 것은 지혜로운 유비무환의 삶이라고 배워온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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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없고 염려 없는 인생은 없다. 어니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보면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이며, 22%는 사소한 일,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일이고, 오직 4%가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일이란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어떤 일이 걱정할 만한 일이고, 어떤 일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걱정하면서 그 일을 대비하는 것은 지혜로운 유비무환의 삶이라고 배워온 것도 사실이다.
김미월 작가의 단편소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지구 종말 이야기다. 취업 준비생인 주인공은 어젯밤 술집에서 뉴스 속보를 봤다. 30시간 후에 소행성이 지구를 산산조각 낼 것이라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발표였다. 인터넷에는 온통 지구 멸망 관련 기사뿐이다. 시골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에 올라오시겠단다. 가족이 함께 종말을 맞이하고 싶으신 모양이다. 그래도 엄마는 고추를 따러 가셨단다. 아래층 피아노 교습소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나는 세수하고 선크림을 바른다. 순간 문자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지인들의 송별 문자다.
문득 배고픈 생각에 냉장고를 열어봐도 딱히 먹을 것이 없다. 황도 통조림을 먹기로 하지만 깡통 따개를 찾을 수 없다. 대학 신입생 때 지구 종말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글을 쓴 기억이 났다. 터무니없는 글짓기 내용이 자세히도 떠올랐다. 상상과 현실은 확실히 다르다. 깡통 따개를 빌리러 아래층 피아노 교습소에 갔다가 엉뚱한 대화만 나누고 빈손으로 올라왔다. 지구 멸망 전날, 아직 살아 있는데도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 그것이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뉴스를 보니 거리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형 할인매장은 문을 닫았고, 작은 가게들은 필요한 것들은 가져가라고 문을 열었지만, 폭동 같은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앵커와 기자는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일을 하나 보다. 어제 만난 친구 ‘공’을 또 만나러 광화문으로 간다. 돈을 받지 않는 버스 안에는 예수 믿으라고 외치는 어르신이 있다. 라디오에서는 마지막 생방송이라며 노래를 신청해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한참 만에 나타난 공은 차가 막혀 차를 버리고 왔단다. 이런저런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장 억울한 사람은 현재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아니라 기다릴 미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막상 지구 종말이 온다 해도 우리는 별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여러 영화가 종말의 순간을 조명했지만 딱히 기발한 아이디어는 없다. 숱하게 지구 멸망을 가정해도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방심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이 지구 종말을 막기 위해서 할 일은 없다. 하지만 기후응급으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해 할 일은 있다. 플라스틱병에 담긴 생수가 두 모금 마시고 버려진다면 우리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버리는 셈이다. 당장 우리가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을 소비하지 않는 지혜야말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대비책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지 결국은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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