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대 채운 무대, 내일 위한 고민들

김진형 2023. 4. 14. 05: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춘천문화예술회관 30년 진단
30년간 4000여회 무대 올려
개관식 김영삼 전 대통령 방문
백건우·조성진·김덕수 등 무대
신작 등 지역예술 기여 상징공간
세월 지날수록 관객 매너도 올라
중규모 전문 공연장 필요성 제기
비좁은 예술단 연습실도 난제
▲ 지난 10일 춘천문화예술회관 광장에서 열린 개관 30주년 기념공연 ‘우리 여기에’ 모습. 전통, 발레, 클래식 등 다양한 무대와 함께 시민합창단 400여명이 출연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1993년 4월 10일 개관한 춘천문화예술회관은 춘천의 대표 문화예술 공간이다. 30년, 4000회에 가까운 공연이 펼쳐진 지역 예술계의 상징적 장소다. 프로시니엄 아치(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액자 모양의 구조) 형식으로 구성된 다목적홀에서는 지난 30년간 연극, 음악회, 발레, 오페라, 뮤지컬 등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져 시민과 예술인들이 감성을 나눴다. 지하 전시장도 강원도의 굵직한 전시들을 가졌다. 보통의 가족사가 그렇듯 예술인들이 이곳에 대해 마냥 행복한 감정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좁은 연습실과 전시장 한 켠에 물이 새는 경우도 있었고, 일부 객석에서는 울림에 대한 아쉬움이 매번 제기됐다.

지난해 문화예술회관의 대관일수는 225일, 공연일수는 146일로 집계됐고, 4만 3792명이 이곳 공연을 관람했다. 준비를 포함한 전시기간은 147일, 관람객은 9467명이었다. 1회당 가장 많은 관객이 모인 공연은 춘천시립예술단 송년음악회(930명)였다. 예술적 수준이 높아지고 공연 횟수가 증가하는 만큼 전문 콘서트홀에 대한 요구도 늘고 있다. 문화예술회관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젊은 날을 보냈던 이들에게 공간에 대한 소회와 함께 향후 과제를 물었다. 클래식 전문가들의 ‘좋은 좌석’ 고르기 팁도 전한다.

▲ 춘천 출신 성재창 트럼페터가 지난 11일 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

■30년을 채웠던 주요 공연들.

춘천문화예술회관은 1993년 4월 9일 춘천시립교향악단의 개관연주로 문을 열었다. 당초 이날이 개관일이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방문 예고로 개관식은 하루가 미뤄진 4월 10일 진행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개관식 현장에서 “이 문화의 전당이 정신적인 큰 양식을 담당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개관 첫 해부터, 김덕수 사물놀이패, 유니버설발레단, KBS교향악단, 첼리스트 나탈리아 샤홉스카야 등의 공연이 이어졌다. 1996년부터 98년까지는 춘천여름재즈축제를 통해 재즈 문화를 알리는데 기여했다. 또 거장 백건우를 비롯해 유키 구라모토, 한영애, 나윤선 콘서트 등의 공연이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다양한 지역 극단들이 신작 공연을 펼치는 무대가 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쇼팽콩쿠르 우승 전인 2011년 4월 춘천시향의 100회 공연 협연자로 참여했으며 2020년에는 같은 장소에서 리사이틀을 갖기도 했다. 공연 뿐만 아니라 전국관악경연대회와 전국합창경연대회 등 클래식 인재들을 위한 기회의 장으로도 활용됐다. 오는 15일 오후 5시 예정된 개관 30주년 연주회도 930석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춘천시립교향악단의 특별연주회로 진행되며 춘천시립합창단, 춘천청춘합창단, 강원대 음악학과 합창단의 협연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선보인다.

■예술가 애증 담긴 ‘집’

1985년 춘천시립교향악단 창단부터 2002년까지 초대 지휘자를 역임하며 강원 음악발전에 헌신한 이한돈 강원대 명예교수는 “부족한 것이야 많지만, 시립문화관 때부터 워낙 열악한 공간에서 작업을 이어오다 보니 춘천의 문화공간으로서는 만족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연습실이 지하에 있었는데, 자꾸 물이 새서 악기가 망가질 뻔한 적도 많았다”며 “다른 지역의 경우 돈이 없어도 문화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많이 발전했지만 더 과감한 투자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춘천시향 악장과 2대 지휘자를 역임한 김윤식 지휘자는 “문화예술회관이 처음 지어졌을 때는 너무 좋았다. 내 음악의 시작과 같은 공간이었다”며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공간이지만 아쉬움이라는 응어리도 많다”고 했다. 4대 춘천시향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이종진 지휘자는 충북도립교향악단에서 춘천시향으로 자리를 옮기며 비로소 문화예술회관이라는 ‘집’이 생겼다고 했다. 이 지휘자는 “춘천문예회관은 춘천 공연계의 산 증인과 같다. 지역 예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한 공연장”이라고 했다. 춘천시향의 가장 큰 장점으로 단원들이 큰 변동없이 자체적으로 발전한 점을 꼽으며 “김대진 선생님과의 협연 이후 춘천시향도 지속 발전해왔다”고 했다.

춘천시향 창립 단원이자 현재 춘천고음악제 이사장인 김길진 바이올리니스트의 경우 이곳에 갖는 감정이 조금 더 특별하다. 1997년 작고한 조각가 박희선이 그의 남편이다. 박희선 조각가는 문예회관 전시장 조성 당시 전시장을 지상에 세워줄 것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펼쳤었다. 김길진 바이올리니스트는 “춘천문예회관은 많은 예술인들이 잠재력을 키웠던 공간”이라면서도 “모든 장르의 예술을 조합하기에는 열악한 부분이 많았다. 장마철이면 전시장 한 켠에 습기가 찼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생계를 이어나갔다”고 회고했다.

■더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한 자리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울림이 좋은 최적의 장소는 어디일까. 전문가들 사이 의견이 조금씩 달랐지만 앞쪽이나 R석 자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저렴한 가격에 티켓을 구할 수 있는 자리들을 추천했다. 예리한 귀로 춘천시향의 연주력을 점검해 온 이영진 음악평론가는 가운데 좌석인 C열의 맨 뒷자리를 선호한다. 양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고루 듣기 위한 방편이다. 하지만 객석 위 냉난방기 소리 때문에 감상이 어려울 때가 많다고 한다. 이 평론가는 “다목적홀의 경우 울림을 전체적으로 고려하지 않아 한계가 있지만, 공연장 음향에도 ‘새집증후군’이 있듯 전체적인 소리는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했다.

이종진 지휘자는 “공연장 소리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양 사이드 쪽이나 뒤쪽 울림은 좋은 공연장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은 편이다. 2층도 괜찮다. 오히려 앞쪽이나 VIP 좌석이 보는 즐거움이 있지만 소리가 안 좋다”고 했다. 김윤식 지휘자 또한 “1층 보다는 오히려 2층에서 더 자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무대 뒤의 사람들

춘천문화예술회관의 공연은 연주자 뒤에 있는 다양한 무대 스태프들의 노고로 이뤄진다. 2003년부터 20년간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근무한 황운학 무대운영팀장은 전반적인 무대 운영과 조명, 전기시설 등을 담당하고 있다. 황 팀장은 “20대에 들어와 청춘을 다 바친 공간이다. 무대 뒤 숨은 조연이지만 무대전문 자격증을 가진 인력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자부심과 성취감도 높다”고 했다.

향후 과제로는 하부 시설 보수를 꼽았다. 30년간 무대 바닥이 교체되지 않아 틈이 벌어지는 등 안전사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황 팀장은 “전반적인 리모델링은 두 번 있었는데 무대 상부 시설을 디지털로 바꾸고 음향 반사판을 설치하는 등의 개선이 있었다. 메인 스피커와 객석 자막기도 교체할 예정”이라고 했다. 황 팀장은 “공연에 대한 감독 역량을 높이 키우는 것도 과제”라고 했다.

2013년부터 10년째 이곳 하우스 매니저로 일하는 이영채 씨는 관객 안전을 책임진다. 공연장 좌석 안내를 담당하는 그에게 가장 좋은 날은 ‘아무 일 없이 끝나는 날’이다. 이 매니저는 “고객을 응대하면서 삶의 새로운 활력이 됐고 직장에 대한 만족감과 성취감도 생겼다. 가장 난감할 때는 늦게온 관객이 바로 들여보내 달라고 항의하는 경우인데 요즘은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했다.

이 매니저는 과거에 비해 객석 매너가 훨씬 좋아졌다고 판단한다. 악장 간 박수도 줄어들었고, 지연 관객들도 기다림을 즐길 줄 안다. 아직도 가장 어려운 것은 공연 도중의 사진 촬영을 자제시키는 일이다. 이 매니저는 “공연장에서 오래 일하다보니 귀가 트인 것 같고 다른 지역의 공연도 찾아가 보곤 한다”며 “더 양질의 공연을 체험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새로운 연습공간, 콘서트홀 조성 목소리

춘천문화예술회관의 공연횟수가 늘어가는 만큼 대관일정도 몰리면서 지역에서는 전문 공연장 신축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특히 도립예술단의 경우 전용 공연장이 없고, 인지도가 낮은 연주자들도 이곳 독주회를 부담스러워 하는 편이다. 춘천시향 연습실도 비좁고 반향이 너무 커서 연습에 무리를 겪고 있다. 춘천시향은 2021년 교향악 축제에 참가에 앞서 축제극장 몸짓을 일주일간 빌려 연습하기도 했다. 지역 공연시설과 성당까지 고루 알아봤지만 마땅한 연습장소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500석 규모의 전문 콘서트홀이 필요한 이유다. 강릉아트센터의 경우 대공연장인 사임당홀이 972석의 객석을 보유한 동시에 385석의 소공연장도 갖추고 있어 연주회, 연극 등 다양한 예술활동을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

김윤식 지휘자는 “시향에 있는 동안 연습실이 너무 비좁았고,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연습했던 날들이 많았다”며 “공연장 시설이 오케스트라의 울림을 만드는데 부족한 부분이 많다. 관객에게 만족감을 주려면 그에 맞는 전문 콘서트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진 지휘자는 “시대에 맞게끔 공연장 시설이 보강돼야 문화예술회관의 기능을 더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길진 바이올리니스트는 “시향 연습실이 원래 발레 연습실이었다보니 소리가 너무 반사돼 전체 연주를 듣기 어려웠고 청력이 망가지는 단원도 있었다. 후배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아프다. 100년 이상을 함께할 수 있는 500석 규모의 전문공연장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영진 음악평론가는 “춘천시향이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하면 소리의 격이 달라진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전문 콘서트 홀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역 예술인들의 목소리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