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JYP·SM 온 뒤 매출 껑충”… 기획사 상권 뜬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강동구 성내동 한 양고기집. 식당에 들어서니 손님 10여 명이 고기를 굽고 있었다. 벽에는 손님들이 쓴 쪽지가 빽빽하게 붙어 있다. 쪽지엔 ‘황현진(아이돌 그룹 ‘스트레이키즈’의 멤버) 사랑해’ ‘데이식스(아이돌 그룹)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 같은 글귀가 빼곡했다. 2018년 문을 연 이 가게는 근처에 연예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가 생기면서 손님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2019년 JYP 소속 아이돌 그룹이 여기서 인터넷 방송을 찍은 뒤부터는 팬들 사이에서 ‘성지(聖地)’가 됐다. 인천에서 온 고모(27)씨는 “데이식스 멤버 영케이가 영상에서 여기 양고기를 잘 먹길래 얼마나 맛있는지 먹어보려고 왔다”고 했다.
식당 사장 김모(55)씨는 “2018년엔 하루 매출이 20만~30만원 정도였는데 요즘은 3배쯤 된다”며 “아이돌 그룹이 공연하는 날에는 공연 두세 달 전부터 예약이 꽉 차 하루에 500만원을 번 적도 있다”고 했다. 2021년 근처에 2호점도 냈다. 2호점에는 아이돌 그룹 이름을 딴 ‘스트레이키즈룸’도 꾸몄다. 일본인 마코(51)씨는 “여행 가이드북에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실려 있다”며 “6월에 또 성내동에 올 것”이라고 했다.
유명 연예 기획사들이 서울의 상업 지도를 바꾸고 있다. 사옥이 움직일 때마다 주변 상권과 유동 인구 등 동네 분위기가 확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K팝의 위력이다.
강남에 몰려 있던 기획사들은 2018년 JYP를 시작으로 줄줄이 강남구를 떠났다. SM엔터테인먼트와 하이브는 2021년 각각 성동구 성수동과 용산구 한강로로 사옥을 옮겼다. 이들을 따라 순식간에 인파가 움직였다. 하이브 부근 ‘한강대교북단·LG유플러스’ 버스정류장 하차 승객 수를 보면, 2021년 1월 7만5000명에서 올 1월 10만1000명으로 2년 사이 2만6000명(35%) 늘었다. SM과 가까운 지하철 수인분당선 서울숲역에서 내린 승객 수는 2019년 321만6100명에서 지난해 399만5500명으로 78만명(24%)이 증가했다.
13일 현대카드가 이 세 기획사 주변 식당과 카페의 매출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전(移轉) 직후 6개월보다 최근 6개월의 월평균 매출이 56~105%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8년 JYP가 옮겨온 성내동 둔촌동역 상권의 점포당 월평균 매출은 2020년 1분기 938만원에서 지난해 4분기 1578만원으로 68% 증가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코로나와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등 악재(惡材)에도 둔촌동역 상권은 JYP 영향으로 되살아난 것 같다”고 했다. 2015년부터 용산 하이브 사옥 부근에서 카페를 하고 있는 티파니(50)씨는 “2021년 초 하이브가 오고 나서 30만~40만원 정도이던 하루 매출이 5~6배 올랐다”고 했다.
지난달 용산구 하이브 사옥 근처 한 카페 입구에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 4주년 카페 이벤트’란 대형 플래카드가 걸렸다. 문을 열자 아이돌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노래가 흘러나왔다. 카페 안에는 그룹 멤버들의 사진만 140여 장이 붙어 있었다. 이 그룹이 데뷔한 날을 기념해 팬이 준비한 행사였다. 배모(15·경기 고양)양은 “사람이 많을까봐 문 열기 1시간 30분 전부터 와서 기다렸다”고 했다. 카페 직원 채모(21)씨는 “올 1월부터는 팬들이 거의 매주 이벤트를 열고 있다”며 “3월 4일은 그룹 데뷔일, 13일은 그룹 멤버 범규의 생일이 있어 3월 한 달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팬들로 내내 북적였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겐 필수 코스가 됐다. 서강대에서 유학 중인 중국인 첸(24)씨는 “K팝을 좋아해 한국에 오자마자 성수동 SM 사옥만 일주일에 세 번을 갔다”며 “자연스럽게 근처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신다”고 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나일라(28)씨는 “연예 기획사 자체가 관광 코스여서 연예인은 못 보더라도 건물 인증 샷을 찍기 위해 가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K팝 팬들은 뜨거운 ‘팬심’만큼 씀씀이도 크다. 좋아하는 연예인 생일이면 기획사 근처 카페를 통째로 빌려 파티를 연다. 인기 아이돌 그룹들은 멤버가 보통 5~7명 정도라서 기획사 주변에선 이벤트가 끊이질 않는다. 기획사 인근 편의점 주인 김모(21)씨는 “매주 가게 전면 유리에 아이돌 그룹의 대형 사진을 입히는 ‘래핑 광고’를 한다”며 “광고를 보려는 사람이 하루 100명씩 몰려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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