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아내의 죽음 따라, 일본 철도 바꾸다

정지용 2023. 4. 1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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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논픽션 '궤도 이탈'
2005년 4월 25일 당시 일본 후쿠치야마선 열차사고 현장 사진. 코너를 돌다 탈선한 열차가 아파트에 부딪혀 나뒹굴고 있다. 아사노씨의 가족은 사고 당시 둘째 칸에 타 있었다. 글항아리 제공

아사노 야사카즈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그는 2005년 4월 25일 ‘서일본여객철도(JR)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로 아내와 여동생을 잃었다. 딸은 중상을 당했다. 모두 107명이 숨지고 562명이 다친 일본 최악의 열차사고다. 아사노는 시신들이 즐비했던 지역 체육관을 헤맨 경험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저 아내를 빨리 빼내주고 싶었다. 여동생의 사망을 확인한 순간 1%의 희망도 남지 않았다. ‘지금 어디 있어’. 기도하는 심정으로 마음속에 물을 뿐이었다.”

‘궤도 이탈’은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의 전말을 파헤친 논픽션이다. 아내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긴 사부곡(思婦曲)이며 평범한 시민이 투사로 거듭난 일대기다. 사고 첫날부터 취재에 나선 고베신문 기자 출신 작가가 4ㆍ25 유가족 연대를 이끈 아사노를 중심에 놓고 사건을 재구성했다. 일본 저널리즘에 한 획을 그은 책으로 평가되며, 2019년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모든 일은 장례식장에서 시작됐다. 사고 사흘 후 장례식을 앞두고 난야 쇼지로 JR 회장이 아사노를 찾아온다. “이번 일은 죄송합니다”. 형식적 사과 후 본심을 꺼낸다. “앞으로 또 보상 문제도 있으니까요.” 허망해하던 아사노가 폭발한다. “지금 뭐라 했습니까. 다시 말해 보십시오.” 사고의 부조리를 직시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몰상식한 인간을 회장으로 둔 조직이 아내를 죽였나 싶어서 너무 부조리했다. 그때부터 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게 됐다.”

회사의 치졸함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JR은 입에 발린 말로 ‘성의 있는 사과’, ‘전적인 회사 책임’을 말했다. 실제로는 진실 규명 요구를 외면하고 피해 가족 지원도 소홀히 했다.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쓴 고위직은 몰래 자회사 사장으로 복귀했다. 피해 가족들은 4ㆍ25 유가족 연대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JR, 경찰, 정부를 향해 끈질기게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2009년 유가족, JR, 중립적 연구자로 이뤄진 ‘공동검증위원회’가 설치된다. 사고 4년 만이었다.

사고는 왜 일어났을까. 당시 열차는 제한속도인 시속 70㎞를 훌쩍 넘은 116㎞로 커브를 돌다 탈선했다. 회사는 ‘부주의한 운전사’를 탓했다. 공동검증위원회의 조사는 달랐다. JR은 열차 시간이 1분만 늦어도 운전사를 ‘열외’시키고 징벌적 재교육(일근 근무)을 벌일 정도로 속도와 효율에 집착했다. 도착 시간을 맞추지 못한 운전자는 일근을 두려워해 과속을 했다. 자동열차정지장치를 설치하지 않고 운행시간을 무리하게 설정하는 등의 문제도 드러났다.

마쓰모토 하지무 지음ㆍ김현욱 옮김ㆍ글항아리 발행ㆍ424쪽ㆍ2만1,000원

JR은 일본 철도 민영화의 모범이다. 퇴임하고도 왕처럼 군림했던 이데 마사타카 JR 전 회장은 속도 향상, 적자노선 폐지, 과감한 인원 감축 등으로 갈채를 받았다. 이면에는 이데 회장의 독재, 돈벌이만 중시한 경영, 비인간적 조직 문화가 있었다. 책의 특장점은 여기에 있다. 비난의 화살을 이데 전 회장 개인이나 JR에만 돌리지 않고 구조적 문제를 추적했다. “민영화를 지지한 여론, 효율성과 속도를 요구한 승객들, 사고는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들이 지지만을 받은 것은 아니다. ‘보상금을 받아내려는 것 아니냐’ ‘심보를 그렇게 쓰니 자식이 죽었다’ 등의 비방과 혐오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버텼다. 유가족과 JR은 안전 문제를 함께 진단해 나가며 잘못을 고쳐 나갔다. 운전자가 실수를 은폐하지 않도록 고의가 아니라면 징계하지 않게 했다. 안전 투자 예산은 2004년 467억 엔, 2016년에는 1,050억 엔으로 늘렸다. 이들의 활동은 사고 9년 만인 2014년 종료된다.

건축사인 아사노는 도시 재생 분야에서 일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황폐화된 고베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10년간 진행했다. 정부, 기업, 일반 시민과 협상하는 일을 꾸준히 해 왔지만 특별한 권력, 인맥은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왜 아내와 여동생은, 딸은 사고를 당해야 했나’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싸웠다. “사고를 교훈 삼아 JR은 사고를 반성하고 원인을 검증해야 한다. 그것을 요구하는 게 우리 유가족의 사명, 사회적 책임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책임을 다하려 할 때, 우리는 어떻게 공명해야 할 지 돌아보게 한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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