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마추어식 불안, 미숙한 외교 안보 근본 원인 찾아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11일 최근 SNS를 통해 공개된 미 정보기관의 기밀 문서가 2월 28일, 3월 1일 작성된 자료라며 “이번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기밀 문서엔 한국 등 우방국에 대한 감청 내용도 들어 있다. 오스틴 장관은 이번 사태에 대해 지난 6일 첫 보고를 받았다며 기밀 문서 유출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감청도 사실이란 것으로 여러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빌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같은 날 이를 인정했다.
이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밝힌 것과는 상반된다. 김 차장은 “오늘 아침에 양국 국방장관이 통화를 했고 공개된 정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데 대해 양국 견해가 일치한다”고 했다. 양국 국방 장관이 이 문제로 통화도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 대통령실을 감청한 것에 대해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미국 정보기관의 전 세계 감청은 공공연한 비밀로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미국만이 아니라 능력을 가진 각국의 정보기관이 다 하고 있다. 한국도 한다. 이런 문제는 냉정하게 대처하면서 내부적으로 우리 감청, 방청 능력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 미국 감청 대상에 포함된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등 어디에서도 이 문제가 큰 정쟁이나 논란 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만 예외다. 모든 일을 정쟁화하는 민주당이 문제다. 지금 민주당은 한미 정상회담도 하지 말라는 식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이런 태도는 하루 이틀이 아니고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부 외교안보팀은 이런 국내 정치 사정까지 고려해 치밀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목전의 한미 정상회담과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에 흠이 될까 봐 마치 미국의 감청이 사실이 아닌 것처럼 강변하다가 망신을 당했다.
정부는 지난 한 달간 징용 문제를 해결하며 한일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과정에서도 미숙한 점을 노출했다. 정상회담에서 일본 측이 독도 문제를 언급한 것처럼 일본에서 보도됐는데 외교부 장관은 “정상회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마치 무언가 있었던 것처럼 말해 논란을 키웠다. 위안부 합의, 멍게를 비롯한 후쿠시마 수산물 문제가 일본 측에서 나왔을 때도 이런 식으로 대응해 사태를 키웠다. 이는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는 외교·안보 문제에서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일 정상회담은 남은 것이 무언지 희미해진 상황이고, 한미 정상회담은 걸 그룹 공연 문제로 국가안보실장이 경질되는 사태까지 낳았다. 국가 사이의 관계는 국내 문제처럼 되지 않는다. 의욕만 갖고 앞서가서는 안 된다. 정부의 외교 목표는 제대로 세웠지만 그 고지까지 갈 치밀한 전략도 이를 실행할 전문 인력도 잘 보이지 않는다. 상대국의 선의(善意)만 믿고 아마추어 외교를 하다가 여론 악화에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러려면 이 난맥의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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