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의 리더십 책 읽고 최후의 승자 됐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마음도 다스릴 겸해서 (천하를 평정한) 유방의 리더십을 다룬 책 ‘최후의 승자가 되라’를 열심히 읽었어요.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은 ‘준비하고 기다려라’라는 부분이었죠. 근데 정말 최후의 승자가 됐네요.”
지난 6일 여자 배구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는 작은 기적을 썼다. 한 시즌 최강자를 가리는 챔피언결정전(5전 3선승제)에서 정규 리그 1위 흥국생명에 1·2차전을 내주고 3·4·5차전을 모두 역전승으로 장식하며 이른바 ‘역스윕(reverse sweep)’ 우승을 달성한 V리그 최초 팀이 된 것이다. 마지막 5차전은 시청률 3.4%를 기록해 역대 V리그 경기 최고 시청률을 찍기도 했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조차에도 우승을 믿지 않았다”는 김종민(49) 도공 감독을 12일 경기 성남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 시즌 내내 입었던 양복을 벗고 부담감을 내려놓은 채 자유롭게 입담을 과시했다.
◇”똘똘 뭉치는 조직력 믿었다”
이번 2022~2023시즌 시작할 때만 해도 도공은 우승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지난 시즌 코로나로 조기 종료된 리그에서 2위를 했지만, 주전 6명 중 5명이 30대로 ‘노쇠화’됐다는 게 약점으로 꼽혔다. “올해는 처음부터 저희한테 아무 관심이 없었죠. 그래서 오히려 더 편하게 준비했습니다. 똘똘 뭉치고 버티면 잃을 게 없다는 마음이었어요. ‘봄 배구’에 못 갈 것이라 했는데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2016년 3월부터 8년째 도공을 이끄는 김 감독이 믿은 구석은 바로 ‘조직력’이었다. 그가 지휘봉을 잡은 순간부터 도공 주전 멤버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남자 배구에서 선수·코치·감독으로 있다가 도공 감독으로 여자 배구계에 첫발을 디딘 그와 선수들은 함께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앉아 있는 자세만 봐도 서로 기분을 알 정도다.
이런 조직력은 2017~2018시즌 창단 후 첫 통합 우승으로 귀결됐지만 2019~2020시즌엔 6위로 처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익숙함은 때론 나태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도 김 감독은 8년이란 세월에 쌓인 신뢰와 시스템이 올해 발휘된 것으로 돌아봤다.
“조직력이 있는 팀은 어떤 팀과 대결해도 이기고, 조직력이 없는 팀은 아무 팀하고 붙어도 집니다. 조직력은 ‘조화’입니다. 그 조화를 이루기 위해선 믿음이 필요하고, 믿음을 쌓으려면 서로에게 먼저 다가가는 자세가 필수죠. 조직력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겁니다.”
◇”감독 이전에 인생 선배 되고파”
이를 위해 김 감독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한다. 선수들과 먼저 밥 약속도 잡는다. 키 190cm의 거구이지만, 아기자기한 맛집에서 파스타도 음미할 줄 안다. 비시즌엔 연고지인 김천 근처의 포항 등으로 캠핑을 함께 가기도 했다.
“감독 이전에 언제든 편안하게 다가와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인생 선배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뭔가 질문해보고 싶은 그런 옆집 아저씨. 아, 아저씨는 오히려 좀 불편할까요?(웃음)”
때론 오기를 자극한다. “경기 중 ‘너희 어차피 쟤네한테 안 되니까 열심히만 해’라는 말하기도 해요. 맨날 ‘잘하고 있어’ ‘괜찮다’라는 칭찬 외에 이런 말들도 필요하더라고요. 이번에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깝지도 않냐’라는 얘기를 했어요. 물론 선수들과 친해서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 확신이 있었죠.”
선수들을 믿기에 경기 전날 미팅은 본인은 물론 코치진도 빼고 선수들끼리 진행할 때도 많다. 선수들끼리 난상토론을 벌이며 스스로 해결책에 다가간다. “감독과 코치진은 팀에 색깔을 입혀줍니다. 코트 위에서 그 색깔을 구현하는 건 결국 선수들 몫이죠. 자기들끼리 소통하며 찾은 해법을 믿어줍니다.”
책 제목처럼 최초의 역사를 쓰며 최후의 승자가 된 김 감독과 도공. 그는 “팀 우승에 대한 감독의 지분은 0%일 수도 있고 100%일 수도 있습니다. 챔프전 때 제 역할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고 봐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 덕분이죠. 저는 아직 ‘명장’은 아닙니다. 그냥 주어진 여건에서 최고 성적을 낼 수 있게 선수들을 도와줄 뿐입니다. 후회 없이 준비하고 기다리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봐요. 제 배구 철학이기도 해요.” 배구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성남=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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