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ODA와 부산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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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포화가 멈춘 1953년 부산항에는 유엔(UN) 회원국의 원조 물자를 실은 선박들이 속속 들어왔다.
원조 물자를 받던 부산항은 어느새 ODA 물자를 실어보내는 수송기지로 바뀌었다.
그러니 부산은 ODA와 불가분의 관계이고, 'ODA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그동안 국제신문이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중 단연 핵심인 부산항 북항 1부두에 원조역사관(ODA 기념관) 조성을 주장해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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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포화가 멈춘 1953년 부산항에는 유엔(UN) 회원국의 원조 물자를 실은 선박들이 속속 들어왔다. 그 물량이 많다 보니, 제때 옮겨지지 못해 부두에 체화 현상까지 자주 일어났다. 이듬해 8월엔 ‘한미재단’이 미국 전역서 모은 구호 물자가 ‘코리아호’를 통해 부산항 1부두에 처음 도착했다. 이후로도 외국 원조선들의 뱃길이 부산항으로 이어졌다. 이들 물자는 전국에 나눠져 한국 경제 재건과 부흥의 젖줄이 되었다.
이 같은 공적개발원조(ODA)의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전쟁의 참상을 딛고 다시 일어선 우리나라는 1987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창설,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설립을 계기로 해외 개발도상국과 빈국 지원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30여 년 만에 원조의 위치가 전환된 셈이다. 특히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그룹에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함으로써 공식 원조공여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 원조 역사의 출발점이자 중심지가 바로 부산이다. 원조 물자를 받던 부산항은 어느새 ODA 물자를 실어보내는 수송기지로 바뀌었다. 부산에도 그 시절 원조 덕분에 건립된 시설이 적지 않다. 부산대학교 장전캠퍼스와 메리놀병원, 부산역전 대화재 이재민 3만여 명 이주단지 등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부산은 2011년 아시아권 최초로 ‘세계개발원조총회’를 개최한 곳이다. 당시 총회는 역대 최대 규모인 데다, ODA의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에 합의한 ‘부산선언’이 채택됐다. 이로써 부산은 개발원조의 상징적인 도시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니 부산은 ODA와 불가분의 관계이고, ‘ODA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얼마전 우리 정부가 ODA 예산을 대폭 확대해 나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올해 ODA는 전년 대비 21.3% 증액된 4조7771억 원인데, 그 규모를 연차적으로 늘려 세계 10위권 ODA 국가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여기에는 부산의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뒷받침하려는 뜻도 담겼다. 엑스포 유치전은 국제박람회기구(BIE) 171개 회원국 중 3분의 2인 개도국의 표심과 그것을 사로잡기 위한 ODA 사업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국제신문이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중 단연 핵심인 부산항 북항 1부두에 원조역사관(ODA 기념관) 조성을 주장해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 엑스포 유치뿐만 아니라 부산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잘 가꾸기 위해서도 원조역사관이 북항에 꼭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구시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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