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 중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2023. 4.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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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2021년 3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되는 일은 내 임기 중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내 임기 중에는 없을 것”이라는 말은 조만간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추격이 그만큼 맹렬한 것이다. 중국의 대국굴기를 뒷받침하는 것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다. 자동차가 석유로 굴러간다면 인공지능을 빨리, 그리고 똑똑하게 만드는 것은 빅데이터다.

중국은 자국 내에 6억 대의 CCTV를 설치해 사람들의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사생활 보호 요구가 약한 중국은 개인의 빅데이터 수집과 활용이 미국보다 훨씬 용이하다. 미국이 10대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틱톡’을 압박하는 것도 미국 이용자의 데이터가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를 통해 중국으로 유출될 가능성 때문이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사례에서 보듯 빅데이터는 이미 경제적 자원이다.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장치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반도체다.

반도체산업은 1957년 지금의 실리콘밸리인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에는 기술력을 앞세운 일본이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NEC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기업은 1990년에는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 가운데 6곳, 시장점유율이 80%를 넘었다. 반도체산업이 경제뿐만이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미국은 일본을 거세게 압박했다.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를 30% 이상 절상시켜 일본 상품들의 가파른 가격 인상과 수출 감소를 유도했다. 일본 반도체회사들을 덤핑 혐의로 기소하고 1986년에는 일본 시장에 미국 반도체 수입을 강요하는 반도체 협정을 밀어붙였다. 미국의 일본 때리기 속에 삼성전자 등 한국 업체들은 대규모 투자에 따른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세계 시장에 진출해 지금에 이른다.

2021년 2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공급망 재편 전략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영국의 옛 자장가를 인용한다. “못 하나가 없어서 말 편자를 잃었네. 말 편자가 없어서 말을 잃었네. 말이 없어서 기사를 보낼 수 없었네. 기사를 못 보내 전투에 패했네. 전투에 패해서 나라를 잃었네. 못 하나가 없어서 전부를 잃었네.”

반도체가 21세기의 말 편자로, 4차 산업혁명의 성패와 기술 패권과 국가 경제안보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2019년 7월 일본이 한국의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 소재 3종류를 꼭 집어서 수출규제를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가처분소득은 2020년부터 일본을 앞질렀다. 일본 입장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처음으로 국력 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일본은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는 강제 징용 피해자 판결을 둘러싼 ‘과거’가 빌미가 된 ‘현재’의 갈등이지만 실제는 ‘미래’를 선점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출규제는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의 지적처럼 ‘어리석음의 극치’였고 한국에 실질적인 피해를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소재부품의 국산화와 일본 공장의 한국 이전 등으로 더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일본은 지난 3월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규제 해제라는 ‘속 빈 강정’을 내밀고 징용 배상 문제와 군사정보 협정 양보를 받아 갔다. 여기에 더해 일본 관방장관은 “정상회담에서 독도 문제가 포함됐고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착실한 이행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한국 측은 회담 의제에 없었고 일본 총리가 실제 이 발언을 했는지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꼬리를 흐린다.

반도체는 단일 품목으로 한국 수출의 20% 정도이고 반도체의 40%는 중국으로 수출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반도체 수출이 반토막 나면서 2023년 한국경제는 최악의 경우 770억 달러의 무역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는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였던 지난해 대비, 60%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반도체 시장은 비메모리 시장 비중이 70%다.

한국 기업들이 우위를 보이는 메모리 시장이 ‘기성복 시장’이었다면 이제는 기업별 ‘맞춤복 시장’으로 가고 있다. 애플이나 구글, 테슬라 등 많은 기업은 자신들의 제품 특성에 맞는 반도체를 직접 설계해 주문 생산한다. 3월 중순 기준 최고의 고성능 반도체 설계기업인 엔비디아의 주식 시가총액은 832조 원으로 세계 7위, 위탁 전문 생산기업인 타이완 TSMC는 587조 원으로 10위, 삼성전자는 366조 원으로 25위 수준이다.


수도권 대학에 반도체 학과를 신설하고 대규모 투자를 한다지만 실제 필요한 것은 ‘인력’‘자본’이 아니라 창의적 생각이 가능한 융합형 ‘인재’다. 하지만 한국은 초등학생조차 의대를 목표로 하고 언론의 관심은 압수수색과 소환조사, 영장청구 에 쏠려 있다. 이 와중에 미국은 노골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다. 전기자동차 경우처럼 제품을 팔고 싶으면 미국 내에 반도체공장을 지으라고 압박한다. 보조금을 주겠다고는 하지만 초과 이익을 내놓아야 하고 앞으로 10년간 중국 투자는 제한된다. 미국이 요구하면 핵심 제조 공정도 공개해야 한다. 기업 문제라며 뒷짐을 지던 한국 정부가 나섰지만 대답은 고작 “미국 기업과 차별하지 않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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