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가 녹아 흘러내립니더” 통영서 한숨 터진 이유
“저기, 저거 좀 보이소. 녹아 흘러내리는 거 천집니더.”
지난 7일 오전 9시 30분쯤 경남 통영 산양읍 한 항구 마을. 봉줄(로프)에 붙어 뗏목 작업장으로 끌려 올라오는 멍게를 바라보며 가공업자들이 혀를 끌끌 찼다. 이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어김없이 바짝 쪼그라들거나 아예 형체를 알 수 없는 멍게가 있었다. 어민들이 상급으로 치는 크기(가로 5cm, 세로 10cm 안팎)에 미달하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 멍게 가공업체 사장 최호현씨는 “양식장에서 폐사하지 않고 산 채로 수확된 양만 보면 대풍(大豊)이지만, 올려 보면 쓸 만한 멍게가 보통 때보다도 적다”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라고 했다.
‘바다의 꽃’이라 불리는 멍게 제철이 찾아왔지만 산지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다. 울긋불긋한 색깔과 꽃봉오리를 닮은 외양 때문에 ‘꽃’이라 불리는 멍게는 횟감과 비빔밥 재료, 안주로 인기를 끌며 최근 몇 년간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이마트 자료에 따르면, 멍게 매출은 2020년부터 해마다 전년 대비 21%, 18%, 29.5% 증가해 지난해에는 매출 30억원을 돌파했다.
문제는 보통 이처럼 수요가 늘면 산지 가격도 올라야 하지만, 올해는 멍게 원물 가격이 전년 대비 34% 폭락했다고 한다. 평년과 비교해도 9% 싸졌다. 예년보다 수확량이 크게 늘어난 반면, 정작 비만도(통통한 정도) 좋은 고품질 멍게는 전보다 줄어든 탓이다.
◇이상기후에 따른 ‘풍년의 역설’ 통영 양식장 가보니
실제로 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가 지난 3월 통영 지역 멍게 양성 상태를 조사한 결과, 성장 정도·비만도·폐사율·병해 4가지 부문 모두 작년·평년보다 나빠졌다. 업계 관계자는 “양식장에서 멍게가 너무 많이 살아남으면서, 마치 ‘5명이 한 그릇을 나눠 먹는 식’으로 먹이인 플랑크톤을 나눠 먹고 자랐다”며 “이 때문에 영양 상태가 골고루 안 좋아졌다”고 했다.
멍게 업계는 이상기후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가을 남해안에 힌남노 등 태풍 3개가 2주 사이 연속으로 오면서, 멍게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수온이 적정 수준으로 장기간 유지됐다고 한다. 보통 멍게 1년산은 양식장 폐사율이 50~60%에 달하지만, 태풍으로 인한 수온 변화로 지난해 폐사율이 10~20%로 크게 줄어들면서 그대로 생존한 2년산 멍게가 올해 대량으로 수확된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2년간 최악의 흉작을 겪은 어민들이 평소보다 멍게 수확을 일찍 시작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3월 멍게 생산량은 7781t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6.2% 급증했고, 평년과 비교해도 64.4% 늘었다. 그 결과 산지 가격은 2377원으로 작년 대비 33.6% 폭락했고, 노량진수산시장 도매가는 작년 대비 9% 하락한 3447원이다.
◇기술로 상품성 끌어올리기 안간힘
멍게 업계는 원물 사정이 악화된 만큼 가공과 유통 과정에서 상품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호현 사장의 경우, 올해부터 사과 선별기를 개조한 멍게 선별기를 어장에 설치해 작업 효율을 끌어올렸다. 어르신 16명이 어장 뗏목에 줄줄이 앉아서 하던 멍게 선별 작업을 지금은 기계와 남성 6명이 진행한다. 최 사장은 “기존 대비 작업 시간을 최대 40% 정도 줄일 수 있어 신선도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멍게를 포장하는 경남 고성의 한 식품업체 가공 공장에선 자동 계량, 정제 해수 포장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1분에 1800봉지를 포장하도록 기계 가동 속도를 높였고, 포장 최대 용량도 500g(원물 기준)까지 다변화했다. 이마트 등에 당일 수확 상품을 직배송하는 이 업체는 올해 현재까지 유통량이 60t으로 벌써 지난해 전체 유통량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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