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기후 생태위기, 뭉쳐야 찬다
각 부문별 국가대표 스포츠 스타들을 모아서 축구를 하는 예능이 유행했다. 몸을 쓰는 일에 둔한 내 기준에는 운동선수라면 모든 종목의 운동을 잘할 것 같지만, 농구 선수가 발을 쓰는 건 다른 일이구나 하고는 허를 찔린 듯했다. 사실은 깊숙이 들여다보면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다. 큰 틀에서는 모두 예술가이지만 음악에는 흥미가 없는 화가, 춤을 못 추는 가수가 있는 것처럼.
언뜻 보면 하나의 카테고리로 보이는 환경 이슈 역시 생태보전 부문과 에너지 전환 부문의 접근 방법이 매우 다르며, 심지어는 충돌하기도 한다. 에너지를 전환하기 위해선 재생에너지 시설을 많이 지어야 하는데, 이는 생태보전 측면에서는 여타의 개발사업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는 석탄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와 달리 탄소배출이 없고 안전하지만,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생물다양성 부문과 더 직접적인 충돌이 생긴다. 토지이용에서 경합이 일어날 때 지대 지불 능력은 낮고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는 생태계와 재생에너지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이라는 긴박한 상황을 맞닥뜨리자 이른바 ‘녹녹갈등’이 산지와 해상의 재생에너지 건설에서 폭발해버렸다. 섬세하게 접근해서 과학적인 해법을 찾아야 하는 예민한 이슈였지만, 실상은 엉뚱하게 정치세력 간 정쟁으로 얼룩지고 보수언론이 기름을 부으면서 토론과 해법은 증발했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전환이 매우 더딘 상황이라 여타 국가들이 겪고 있는 수준의 생물다양성 경합은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머리를 맞대고 지혜로운 해법을 만들어야 할 주체들이 본경기 전에 녹다운되었다.
녹녹갈등으로 인해 ‘재생에너지’ 이슈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우리는 더 큰 파도가 닥치기 전에 불편한 갈등을 마주봐야 한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산업단지나 베란다, 주차장 태양광 등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런 접근만으로는 건축이나 수송 부문의 탄소중립 목표조차 달성하기 버겁다는 현실을 힘들지만 인정해야만 한다.
재생에너지가 본격화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보급된 대규모 재생에너지 시설의 17.4%가 주요 보호구역 내에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유럽과 일본에서 보호지역(PA) 및 핵심생물다양성지역(KBA)과 더 많이 중복되며, 특히 독일 사례가 가장 많다. 이들 지역은 중국이나 북미의 드넓은 대륙과는 달리 밀도 높은 토지 이용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갈등을 잘 풀어내는 해법은 대단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전예방적 토지이용계획을 촘촘하게 만들어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장으로 인한 생물다양성 손실을 방지하는 것이다. 독일식으로 표현하면 ‘자연침해조정제도’다.
탄소중립은 발만 쓰는 축구 경기가 아니다. 지구 행성의 모든 종족을 절멸시키는 타노스 수준의 기후변화와 맞서는 치열한 전쟁이다. IPCC 6차 종합보고서는 2030년까지 순배출 저감에 기여가 높은 옵션으로 태양광, 자연보전, 풍력을 차례로 제시하고 있다. 생물다양성 손실과 기후변화 완화를 동시에 만족스럽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축구, 농구, 태권도 선수가 모두 힘을 모으고, 화가와 가수가 함께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려야만 한다는 뜻이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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