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과꽃을 심으면서...
매년 이맘때였다. 화단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호미로 땅을 파 심었다. 그럴 때마다 머리를 두 갈래로 땋은 바람이 불어왔다.
이마에 송글송글 구슬땀이 맺히면 몇 개월 후 맞을 행복을 생각했다. 적당한 높이로 피어 있을 자태가 기다려졌다.
줄기는 곧추선다. 위쪽에서 가지가 조금씩 갈라진다. 높이는 30~100㎝다. 줄기 겉에 흰 털이 난다. 자줏빛도 돈다. 잎은 어긋난다. 가장자리에는 얇은 톱니가 있다. 과꽃의 애틋한 신상명세서다.
어렸을 적 기억이 맞다면 중부지방에 유난히 많았다. 산기슭이나 골짜기, 길가 등지에서 자라곤 했다. 한해살이 꽃이었다. 그래서 해마다 4월 초순이면 심었다.
잎자루는 위로 갈수록 짧다. 꽃은 7~9월 줄기와 가지 끝에서 머리 모양의 꽃이 1개씩 달린다. 머리 모양 꽃은 가장자리가 자주색이다. 가운데 있는 관 모양은 노란색이다. 혀 모양은 암술만 있는 암꽃이다. 모인 꽃 싸개는 반구형, 조각이 세 줄로 붙는다.
초여름에 꽃이 피면 흥얼거리던 동요가 있었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아이들은 명랑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박자는 기억보다 훨씬 빨랐다. 뭔가 슬픔이 녹여졌지만 음률은 늠름했다. 시집간 지 삼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는 누이에 대한 근심 따위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아이들의 노래가 쓸데없는 애조를 띨 일은 없었다. 노래는 그저 노래다. 그 회한의 세월을 되돌아보는 건 어른들의 몫일 뿐이다. 아이들의 청아한 목소리로 ‘과꽃’을 들으면서 그런 처연한 동요를 만들어야만 했던 시대를 소환해본다. 아직도 그 절제된 슬픔은 유효한가.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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