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선거제 개혁, 이제 국민이 나설 때다
내년 4월10일의 제22대 총선을 위한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이 지났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일 1년 전까지 국회의원 지역구를 확정할 의무를 국회에 부과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선거제가 민주공화 헌정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실질적으로 국가권력을 위임할 대표를 뽑는 핵심적 헌법제도라는 점에서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넘어 정치혐오가 팽배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됐다. 명백한 국회의 직무유기다. 이처럼 중요한 법정기한을 어긴 첫날에 공교롭게도 선거제 개혁을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의 첫 토론이 열리고 나흘간의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그나마 선거제 개혁을 위해 19년 만에 전원위가 소집된 것은 의미가 전혀 없지는 않다. 당론보다 개별 의원의 집단지성이 발휘될 여지가 많은 형식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선거제 개혁의 핵심 전제인 의원 정수 확대는커녕 축소론이나 비례대표제 폐지론이 집권여당 지도부에서 돌출되면서 미미하던 전원위의 동력마저 상실됐다. 야당 지도부의 개혁의지도 강해 보이지 않아 이런 추세가 극적인 반전을 보일 여지도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추세라면 끝 모를 대치가 이어지다가 선거 직전에서야 거대 양당과 현직 의원들의 기득권만 보장하는 선거제로 또다시 총선이 치러질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예상된다.
하지만 더 우려되는 것은 이제는 식상해진 국회의 직무유기를 넘어 국민들마저 선거제 개혁에 대한 열의가 시들해 보이는 것이다. 이래서는 국회 불신이 민주공화 헌정의 근간을 위협하는 반정치적 정치혐오로 이어지고, 결국은 정치과정에서 국민들은 구경꾼으로 전락하면서 국가권력이 소수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 독과점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뿐이다. 반정치 국민 정서는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고 비례제 폐지론에 동원돼 민주적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하여 대의민주제를 더욱 민주공화적으로 만들어야 할 헌법적 과제를 퇴행시키는 데 악용되는 역설이 굳어져 버릴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선거에서 너나없이 1표만 동등하게 행사하면 주권자의 몫을 다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사실 1표의 가치는 선거제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정당제 민주주의가 기본이 된 현대 민주공화제에서 선거는 후보자들에 대한 인물 투표보다 정당투표가 권력의 향배를 실질적으로 좌우한다. 의원 1명의 성향이 나름의 의미가 없지 않다고 하더라도 다수결이라는 정당정치의 틀을 뛰어넘을 수 없다. 따라서 지역 대표성에 인물 투표를 결합한 지역구 선거제는 정당제가 기반이 되는 정치체제의 실질을 평등하게 민주적 대표성이 보장되는 민주공화 헌법의 이상과 조화를 이루도록 만드는 데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정작 지역구 인물 투표마저도 사전선거운동 금지 등 자유선거를 사실상 거세하는 선거법에 따라 묻지마식 인기투표나 지역주의 투표로 진행되는 폐단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대의민주제의 정당성 자체가 의문시될 정도로 정치적 효능감이 심각하게 저하되고 있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다면 이제 선거제만은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챙기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법률이 정하는 선거구 획정을 위한 법정시한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자신들에게 적용될 선거제를 자의적으로 땜빵하는 관행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선거제 결정권을 국민이 회수해야 한다.
물론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선거제를 결정하도록 정한 의회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입법과제와는 달리 선거제의 경우 이해당사자에 의해 선거라는 게임의 규칙이 불합리하게 정해지는 셈이므로 이해충돌 방지라는 법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선거권을 통해 국가권력을 위임하는 지위를 가지는 국민의 통제가 불가피하다. 예컨대, 민주적 대표성과 비례성 등 선거제의 흠결을 개선할 수 있도록 통상의 입법절차가 아닌 특별절차에 의해 마련되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선거법에 독립 지위를 갖는 선거구획정위를 중앙선관위에 설치하도록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아예 선거제 또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미 캐나다나 아일랜드에서 시민의회라는 명칭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 숙의민주주의를 구현해 선거제 개혁이나 개헌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민주공화제의 근간인 선거제가 예견 가능성과 안정성을 가지면서 최소 선거 1년 전에 확정될 수 있도록 국회, 아니 사실상 기득권 정당에 맡겨진 선거제 확정권을 주권자가 회수할 필요가 있다.
김종철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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