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뒷모습에 관하여
앞만 보고 살아온 나에게 뒷모습이 있다는 걸 최근 확인했다. 그날은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심심한 오후였다. 빗소리인가. 인기척인 듯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뒤돌아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무슨 기척이 남은 듯하기에 천천히 돌아보는 척하다가 재빨리 사라지려는 이의 꼬리를 겨우 붙들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이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그래도 전혀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가까스로 붙잡고 보니 알 듯 모를 듯한 녀석. 아, 눈을 씻고 보니, 언젠가 헤어진 묵묵한 막냇동생 같은 익숙함도 배어나오는 모습. 어라, 내 뒷모습이 아닌가.
이렇게 가까이에 뒷모습을 항상 짊어지고 있었다니! 불룩한 배로 대표되는 내 부피를 생각하면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 희미하게 느낀 적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할 때마다 광고, 거울 등등이 집요하게 달려들어 얼른 그 자리를 채웠다. 늙고 닳은 승용차의 백미러에도 항상 앞모습만 담겼다. 그간 있는 줄도 몰랐던 고요한 정원, 희미하게 짐작이야 했지만 거의 방치했던 묵직한 공터. 이 텅 빈 공간을 무시하고 나는 그간 너무나 눈앞의 자극만 좇았다. 그러니 거리에서 더러 마주친다 해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책받침에도 뒤가 있는데 왜 그간 닳고 닳은 한쪽만 고집했을까. 너무도 가까이에 있었던 우묵한 우물의 발견. 이 단순한 사실이 기이하게 여겨진다. 사람의 일상이 하루하루의 진열이듯 일생은 저 보이지 않는 현상들의 집합이다. 이제껏 내가 얼굴을 들이밀며 오늘까지 그나마 지탱한 건, 말하자면 뒷모습 덕분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손톱이 있어 내부의 의지가 힘으로 맺어지듯 등에 딱딱하게 붙어 있는 뒷모습의 힘.
먼 훗날 만나기는 할 것이다. 아마 그날이 그날이겠지. 그림자가 몸에서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을 때가 그날일 공산이 크다. 반듯이 누워 먼 길 떠날 때 앞장서는 건 뒷모습일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도 뒤늦게 후회로 점철될 때를 피해 이렇게라도 미리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 사실을 알아차린 기념으로 이 글의 첫 대목을 여기에 다시 한번 그대로 적는다. 앞만 보고 살아온 나에게 뒷모습이 있다는 걸 최근 확인했다. 그날은 봄비가 추적추적…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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