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 이젠 영화·드라마에도 ‘목숨’건다
지난 5일 개봉한 한국 영화 ‘리바운드’(감독 장항준)의 시작 화면에는 투자사나 배급사 이름 대신 게임사 넥슨의 로고가 등장한다. 장 감독은 “투자를 못 받아서 물거품이 될 뻔했다가 넥슨을 만나서 극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했을 정도로 넥슨의 투자 비중이 큰 영화다. 리바운드는 넥슨이 투자한 첫 영화다. 넥슨 측은 “앞으로 게임사가 생존하려면 필수적으로 스토리텔링 IP(지식재산권)를 확보해야 한다”며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게임과 웹툰, 소설, 영화, 드라마를 만들며 진화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게임 IP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다른 장르로도 IP를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게임사들이 콘텐츠 영역에 활발하게 진출하며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빅블러’(업종 간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 하이브 같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게임에 진출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게임 회사들도 영화나 드라마, 웹툰 투자와 제작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게임과 영화·드라마 공생 시대
넥슨의 드라마·영화 IP 확장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초 마블 영화를 제작한 영화감독 루소 형제의 엔터테인먼트 제작사 AGBO에 5억달러를 투자했고 올 초 영화 ‘기생충’ 제작사인 바른손이앤에이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지난 1월에는 자사 모바일 게임 ‘블루 아카이브’를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다고 밝혔다. 이 게임의 팬들을 애니메이션 시청자로 확보할 수 있고, 반대로 애니메이션을 통해 게임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 업계에선 “확률형 아이템 같은 수익 요소가 외면받는 상황에서 이용자가 게임을 떠나지 않게 하려면 IP를 이용해 콘텐츠를 계속 생산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농구 만화 ‘슬램덩크’가 대표적인 예다. 슬램덩크 모바일 게임은 원작 만화와 TV애니메이션의 인기 덕분에 이용자들을 쉽게 끌어들여 흥행에 성공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TV애니메이션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을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만들었고, 이 부분을 다시 활용해 새로운 슬램덩크 게임이 나올 수 있게 됐다.
이미 국내 게임사들은 본업인 게임만큼이나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제작에 적극적이다. 스마일게이트는 대표작 ‘크로스파이어’를 바탕으로 중국에서 드라마를 제작해 방영했다. 크래프톤도 ‘배틀그라운드’를 바탕으로 한 단편영화 ‘그라운드 제로’를 제작한 데 이어 지난해 할리우드 출신 제작자를 배틀그라운드 기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총괄 PD로 영입했다.
◇콘텐츠 IP 사수에 열올리는 게임사
과거에도 ‘워크래프트’ ‘철권’ ‘어쌔신크리드’와 같이 인기 게임이 영화로 만들어진 사례가 있었다. 게임사가 영화사에 라이선스만 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IP 관리에 나선 게임사들이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면서 영화 완성도와 흥행 확률도 높아졌다. 13일 현재 미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영화는 닌텐도의 장수 인기 게임 ‘수퍼 마리오’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30년 전 닌텐도가 영화사에 라이선스만 내줘서 만든 수퍼마리오 실사 영화가 혹평을 받고 흥행에 참패한 것과 달리 이번 애니메이션은 최초 기획 단계부터 닌텐도가 제작에 참여했다.
게임사 컴투스도 콘텐츠 제작사 위지윅스튜디오를 인수한 뒤 지난해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제작해 흥행에 성공했다. 단순히 드라마를 제작해 방송사에 납품한 것이 아니라 컴투스가 투자와 IP 소유까지 진행했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은 “IP의 중요성을 잘 아는 게임사이기 때문에 기존 드라마 제작사와 달리 재벌집 막내아들의 IP를 사수하는 데 열을 올렸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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