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 도서관엔 연체료가 없다
미국에 체류하면서 감탄하는 것 중 하나가 공공 도서관 시스템이다. 뉴욕공립도서관(NYPL)에선 시내 217곳의 도서관 어느 곳에서나 1인당 최대 50권의 책을 3주간 대출할 수 있는데, 대출 연장을 열 번까지 할 수 있다. 서울 도서관들 대출 권수가 5권 안팎으로 제한돼 있고 대출 기한도 2~3주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천국처럼 느껴졌다. 뉴욕에서 가족 명의까지 합쳐 두 장의 도서관 카드로 취재에 필요한 각종 자료와 아이 책까지 마음껏 빌리다 보니 대출 권수가 한때 78권에 달한 적도 있다.
엄청난 책 물량뿐만 아니라 또 독특한 점은 뉴욕도서관엔 연체료가 없다는 것이다. 대출 기한을 넘긴 자료에 매기는 뉴욕의 연체료 수입은 연 300만달러(약 39억원)를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연체료가 시민의 도서관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2021년 이를 폐지했다. 뉴욕도서관 측은 “설사 새 정책을 악용한 ‘책 도둑’이 나오더라도 시민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효용이 훨씬 크다고 본다”고 한다. LA와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댈러스 등 미 주요 도시 공공 도서관도 연체료를 폐지하는 추세다. 반면 서울에선 도서 연체료가 하루에 권당 100원씩 붙는 곳도 꽤 있는데, 한 곳에서 휴관일이라도 걸려 연체료를 못 내면 다른 도서관에서 대출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뉴요커들의 도서관 사랑은 유별나다. 뉴욕시가 세수 부족으로 도서관 관련 예산을 축소하는데도 유명 건축가들이 동원된 도서관 신축·개축이 이어진다. 도서관 리노베이션 계획이 나오면 민간에서 후원금이 수백만달러씩 쏟아지기 때문이다. 최근 브루클린 어린이 도서관에 후원금을 낸 한 60대 독지가는 “나는 홀어머니 밑에서 아주 가난하게 컸다. 그런데 도서관에만 가면 부자처럼 책을 쌓아놓고 읽으며 마음껏 상상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동경하는 세계 대도시들의 공통점은 아날로그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데 공공 자원이 아낌없이 투입된다는 데 있다. 수백년 된 건축물, 스토리가 가득한 골목과 박물관, 사람 모이는 극장과 식당을 경험하러 가지, 인터넷 잘 터지고 인공지능과 메타버스가 발달한 곳을 굳이 찾아가는 이는 적다. 특히 그곳에 사는 주민을 대상으로 높은 수준의 문화를 집대성하고 공유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바로 도서관이다.
미국에선 공공 도서관을 주로 계층 간 지적·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본다. 한국에선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 중 하나로 도서관을 주목했으면 한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의 현실적 고민 중 하나가 중국발 미세먼지를 피해, 아파트 층간소음 일으킬 걱정을 피해, 방과 후나 주말에 자녀를 마음 편히 데려갈 곳이 적다는 점이다. 그래서 쇼핑몰·백화점이나 학원을 하릴없이 떠돌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동네마다 도서관이 그런 마을이 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여러 방법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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