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린의 로컬리즘] 지방 도시에서도 홍대 같은 문화 거리를 보고 싶다

모종린 연세대 교수·‘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저자 2023. 4. 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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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문화 발전 위한 ‘문화 지구’ 지정 제도 활용 미미
현재 공식 문화 지구는 서울에 3곳, 지방에 3곳뿐
국가산업단지 15곳 새로 지정, 문화산업단지는 없어
문화 콘텐츠 산업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효과적
‘지방의 홍대’ 만들려면 국가산단 수준 투자해야

정부가 지난 3월 제조업 중심의 국가산업단지 15개를 새롭게 지정했다. 아쉽게도 기술과 더불어 미래 성장 동력의 한 축으로 부상한 콘텐츠 산업을 위한 ‘문화산업단지’를 지정한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한국 경제가 기술과 콘텐츠 양 축으로 성장하려면, 콘텐츠 분야의 산업단지에 해당하는 문화지구에도 국가산업단지 수준의 투자를 해야 한다.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문화진흥법은 이미 각 지자체가 지역별로 특색 있는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문화지구를 지정,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문제는 운영 상황이다. 문화지구 제도의 활용도나 인지도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먼저 문화지구로 지정된 지역의 수다. 한국의 문화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서울의 문화지구는 3곳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2001년 인사동, 2004년 대학로를 지정한 후 오랫동안 문화지구 제도를 활용하지 않았다. 지방의 문화지구도 빈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지방에서 공식 문화지구로 지정된 곳은 파주 헤이리, 인천 개항장, 제주 저지예술인마을 등 3곳뿐이다.

지정된 문화지구의 존재감도 미약하다. 문화지구 인지도 수준은 가장 최근에 지정된 서울 서초음악문화지구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서울시가 2018년 서초동 예술의 전당 주변을 서초음악문화지구로 지정했지만, 아직 이를 아는 시민을 만나보지 못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아직 지정되지 않은 문화지구의 상황은 다를까. 자유로운 영혼의 문화예술인과 창작자는 정부 지정과 관련 없이 다양한 장소에 모인다. 실제로 서울에는 홍대·서촌·북촌·삼청동·부암동·평창동·청담동·한남동·성수동·문래동 등 예술인의 자발적 참여로 문화지구가 형성된 지역이 많다. 그러나 홍대, 한남동 등 한두 곳을 빼면 한국, 특히 지방에서 한국의 국가 위상이나 대중문화 인기에 상응하는 문화지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지역 소멸 대응이 시대적 사명으로 부각된 현시점에서 지역 차별성으로 성장하는 지역 문화 산업만큼 지역 활성화에 효과적인 분야는 드물다. 문화지구 활성화 방향은 크게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가 제도 정비다. 현재 정부는 문화도시와 문화지구 제도로 지역의 문화적 재생을 지원할 수 있는데, 두 제도 간의 차별화가 시급하다. 문화도시는 현재와 같이 지역 주민의 문화 향유를 지원하는 생활문화 사업으로 유지하고, 문화지구는 문화 인재와 시설의 집적을 통해 지역특화 문화산업을 양성하는 산업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은 어떨까. 문화지구를 문화도시와 분리해 일종의 로컬 콘텐츠 타운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둘째, 범정부적 추진 체계다. 문화산업은 현재 다양한 산업과 융복합되고 있다. 매력적인 도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리테일 산업, 배후 인구와 문화 인력을 위한 주거 시설을 공급하는 부동산 개발 산업,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문화지구에 필요한 산업이다. 정부가 문화산업 융복합에 대응해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등 각 부처에 분산된 문화지구 관련 정부 사업을 통합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셋째, 생활권 기반 문화지구다. 한국에서는 문화지구를 센터나 단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재 지방 도시에 필요한 문화산업은 전시, 공연, 관광, 공간 등 특정 장소에서 소비하는 서비스형 문화산업이다. 문화 콘텐츠를 도시의 거리 문화로 구현할 수 있는 거리 중심의 생활권이 서비스형 문화산업 육성에 적합한 장소다. 서울의 문화지구도 홍대, 성수동, 한남동 등 행정동 단위로 형성돼 있다.

넷째, 건축환경을 고려한 문화지구의 지정이다. 생활권 안에서도 공간 구조가 중요하다. 분절된 공간 구조로 문화지구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서초동 예술의 전당이다. 서울대 서현 교수가 ‘빨간 도시’에서 지적한 대로 문화시설과 배후 지역, 즉 유동인구와 동선을 단절한 남부순환로가 가장 큰 장애물이다.

다섯째, 홍대 모델의 확산이다. 외국인과 청년세대가 한목소리로 서울의 대표 문화지구로 지목하는 곳은 홍대다. 홍대가 세계적인 문화지구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랜드마크급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이 더 필요하지만 현재 한국 상황에서 홍대만큼 좋은 문화지구 모델을 제시하기 어렵다.

홍익대 장웅조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홍대 지역의 중심지인 서교동에 집적된 공연장, 전시장, 작업실 등 순수 문화예술 시설의 수는 170개에 이른다고 한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문화도시인 몬트리올의 가장 큰 문화지구에 모여 있는 문화시설 수는 40개 수준이다.

문화지구 사업을 재가동하기 위해서는 간결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홍대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지구라면, 정부도 서울과 지방에 더 많은 홍대와 같은 문화지구가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홍대 모델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홍대 문화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다른 지역과 달리 홍대를 표현하는 단어는 명확하다. 인디, 소셜, 디자인이다. 홍대가 서울을 대표하는 독립기업, 소셜벤처, 디자인산업 생태계인 것이다.

홍대 문화의 중요성은 문화지구로 그치지 않는다. 홍대는 고유의 문화를 기반으로 디자인, 패션, 화장품, 대중음악, 라이프스타일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창조산업 단지로 성장했다. 홍대의 비밀은 이미 다 공개돼 있다. 홍대는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문화를 창조하는 예술인, 소상공인, 스타트업이 모여 직간접적으로 협업하는 지역이다. 다른 도시도 이 세 그룹을 모아 새로운 도시 문화를 창출하는 것을 문화지구 사업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문화지구 조성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식은 중요하다. 모든 지방 도시는 한번 질문해야 한다. 우리 도시에는 왜 홍대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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