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장기하처럼
봄이 오면 괜히 집을 뒤엎고 싶어진다. 작게는 책 꽂는 방식부터 크게는 전체 가구를 모두 옮기는 본격 노동까지 마음만 먹는다면 한계가 없다. 겨우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을 체크해 뒀다가 따뜻한 날씨에 맞춰 새로운 마음으로 기꺼이 나만의 공사를 시작한다. 다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기온은 온화해도 분주한 삶은 차가운 탓이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들기던 나는 갑자기 홀린 듯 공구를 가져와 옷장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침대 방향을 돌리고 옷장으로 가벽을 세웠다. 멀쩡한 책상을 뜯어 내놓은 다음 더 넓은 상판을 인터넷에서 주문했다. 매캐한 먼지를 쓸고 오래된 얼룩을 닦아내며 동묘시장처럼 바닥에 산더미같이 옷을 깔아 놓고 분류를 시작했다. 가구 이동부터 분류, 청소까지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지금 나는 책장과 옷장으로 분리한 침실 맞은편, 벽으로 둘러싸인 작업 공간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등 뒤에 식탁과 부엌이 있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타공판에 걸린 전자기기들과 화이트보드 판이 보인다. 마감, 강의, 기획, 인터뷰. 이번 주 내내 할 일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제 일하다 힘들어서 잠깐 누워 쉬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그를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다음 행동하는 편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만 나 자신에게는 별로 좋은 태도가 아니다. 초등학생 때도 지키지 않았던 생활계획표를 만들어 살고 있는 요즘은 더 심하다. 당장 내가 불편하고 아쉬워도 일단 참고 보는 ‘정신 승리’만 늘었다. 집 치우는 데 두 시간 정도밖에 안 걸렸지만 고민은 200일 이상 했다. 금방 해치울 수 있는 일인데도 불편함을 감수하며 꾸역꾸역 참고 버텼던 거다.
가수 장기하가 신곡을 발표했다. 제목은 ‘해’와 ‘할건지말건지’다. 본인의 말로는 지난해 발표했던 ‘가만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를 듣다가 뭔가 해버리고 싶어서, 그러다가 할 건지 말 건지 알 수 없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무엇이든 일단 하고 싶어 하는 이 남자의 강한 의지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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