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프리즘] 우리 집은 TV 없어요

조성훈 정보미디어과학부장 2023. 4. 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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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의 KBS시청료 분리징수 국민제안 페이지/사진=대통령실

# 어렸을 적 KBS 시청료(현 수신료) 징수원들은 불청객이었다. 징수원이 나타나면 온동네가 일순간 정적에 빠졌다. "우리집은 TV 없다", "안보는데 왜 내느냐"며 징수원과 실갱이하는 집들도 더러 있었다. 한 동네 아주머니는 집에 TV가 없다고 우기다 귀밝은 징수원에 꼬리가 밟혔다. 국가대표 축구경기 시청중 가족들의 환호성이 집 밖으로 흘러 나가서다. 집요한 징수원들은 동네 아이들에게 사탕까지 쥐어주고 이 집 저 집 TV 있느냐고 캐묻고 다녔다. 그래서 징수원 떳다하면 으레 TV를 끄고 조용히 식사하거나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팍팍한 살림에 매월 2500원은 부담스러웠다. TV만 켜면 나오는 '땡전뉴스'도 시민들의 거부감을 키웠다. 1994년 전기요금 고지서에 시청료가 통합징수되면서 징수원들은 사라졌다. 수신료 납부회피가 많았고 인건비 대비 징수효율이 높지않다는 이유인데 사실상 강제 징수이자 준조세화한 것이다. 아파트관리비 등에 감춰져 여태껏 모르고 내온 사람도 많다. 한전에 접수된 KBS 수신료 민원은 2021년 5만건에 달한다.

# 수신료 관련 마찰은 우리만이 아니다. 일본은 공영방송 NHK 수신료를 여전히 징수원이 걷어간다. 요금도 비싸다. 지상파 방송만 수신시 1260엔(1만2500원), 위성방송의 경우 2230엔(2만2000원)으로 우리의 5~10배다. TV뿐 아니라 휴대폰, 모니터, 내비게이션 등을 가지면 의무적으로 내야한다. 일본인들의 수신료 불만이 팽배한 이유다. 오죽하면 '타도NHK, NHK 수신료를 내지않게 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내세운 정치인이 당선될까. 그래서 일본 주재원들에게는 NHK 징수원에 대처하는 법이 필수로 소개된다. 공개된 팁들을 보면, 일단 징수원과 계약하지 말고, 본인 집이 아닌 친구 집 인 척하고 돌려보낸다. 그래도 재방문하면 NHK와 직접 계약하겠다거나 TV 등 NHK를 수신할 장비 자체가 없다고 우겨야한다는 식이다. 수신료를 운영하는 대부분 나라에서는 반발여론이 거세다. 그 결과 공영방송의 원조인 영국 BBC는 지난해 연간 159파운드였던 수신료를 2024년까지 동결하고 2027년 시청료 폐지절차에 나선다. NHK 역시 오는 10월부터 지상파와 위성방송 수신료를 10%씩 인하한다. 두 회사 모두 고소득 무보직 직원이 많고 과도한 제작비 등 방만 경영이 수신료 폐지 내지 감축의 빌미가 됐다.

# 국내에서도 KBS 수신료 분리징수 논의가 본격화됐다. 지난달 9일부터 한 달간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 토론에 부쳤던 KBS 수신료 분리징수 안건이 96.5%의 찬성으로 마감됐다. 대통령실이 이를 방통위와 산업부 등 관계부처에 전달키로한 만큼 수신료 분리징수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분리징수를 하면 전체 재원의 절반 가량을 수신료에 의존하는 KBS는 존립에 심각한 위협을 받게된다. 연간 6800억원 정도인 수신료 수익이 2000억원대로 곤두박질한다는 예측도 있다. 3800원으로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던 KBS로서는 날벼락이다. 언론노조와 야권은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온라인 조사결과로 수신료 분리징수를 꾀하는 것은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라며 반발한다.
그러나 수신료 분리징수는 진보와 보수진영 모두 제기해온 해묵은 이슈다. 무엇보다 미디어 환경이 바뀌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OTT 확산으로 동영상 콘텐츠가 다양해진 반면 KBS에선 딱히 볼거리가 없다는 지적이다. 자동으로 수신료를 받다보니 콘텐츠나 경영 면에서 안일했다는 비판이다. 물론 수신료 분리징수가 현실화되려면 다양한 논의를 거쳐야한다. 보도의 공정성이나 방만경영 지적에도 불구, 공영방송의 기능과 역할을 넓게 보고 신중히 접근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이에대한 입증과 설득은 온전히 KBS의 몫이다. 30년 전 사라진 징수원들을 다시 불러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진=조성훈 정보미디어과학부장


조성훈 정보미디어과학부장 searc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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