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대한민국 정통 세력의 한국사 교과서는 왜 아직 없나
현실이 이런데도
한국 교과서는 반대로 기술
“북 경제 성장, 민생은 개선…”
우파가 더 좋은 교과서 써서
사상의 시장에서 압도해야
지난 3월 21일 이코노미스트지는 북한이 다시 굶주림의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유엔은 2019~2021년 당시 41%의 북한 주민이 영양실조 상태임을 확인했다. 최근 통일부가 발표한 북한 인권보고서는 참담한 북한의 실상을 보여준다.
현실이 그러함에도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진은 대체 무슨 근거로 김정은 정권에서 북한 경제가 성장세를 보이고 민생이 개선됐다고 기술했는가? 왜 그들의 눈에만 북한의 참혹한 현실이 보이지 않는가?
역사학자들이 역사학의 기본 윤리를 저버린 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역사의 현실을 구성하는 까닭이다. 판사가 정치에 휘둘리면 증거를 무시하고 법리를 배반한다. 역사가가 정치 편향에 빠지면 사실을 외면하고 진실을 거부한다. 역사가의 역사 왜곡은 지극히 교묘하여 쉽게 들춰낼 수도 없다. 그런 역사가가 어디 있나 묻겠지만, 이미 사가(史家)의 상사(常事)일 수도 있다.
일례로 2008년 2월 21일 뉴욕타임스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전남 영암군 구림에서 좌·우익 교차 학살로 3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 사건에 관해 보도하면서 그 마을 최초의 학살을 이렇게 묘사했다.
“1950년 10월 7일 미국이 이끄는 유엔군이 북진할 때, 공산 게릴라와 좌익 촌민들은 구림에서 경찰과 친하다고 여겨진 기독교인 6명을 포함한 28명을 여관에 가두고 불 질러 죽였다.”
이듬해 <<한국전쟁>>(2009년)이란 책에서 미국의 한 저명한 역사가는 바로 그 대목을 “몇 명의 마을 사람들이 경찰과 우익분자들 몇 명을 죽였다(Some villagers killed some policemen and right-wingers)”고 축약했다. 역사가가 “경찰과 친하다고 여겨진 기독교인 6명을 포함한 28명”을 “경찰과 우익분자들 몇 명”으로 뒤바꾸고, “공산 게릴라와 좌파 촌민들(Communist guerrillas and leftist villagers)”을 “몇 명의 마을 사람들”로 고쳐 썼다면, 원문을 악의적으로 곡해했단 혐의를 벗을 수 없다. 현장 답사도, 문서 검증도 없이 달랑 신문 기사 하나를 옮겨 쓰면서 이처럼 황당한 오독과 왜곡을 범한 이 역사가는 누구인가?
바로 1980년대 한국전쟁에 관한 수정주의 이론을 제창해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시카고 대학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교수다. 1980년대 한국의 지식계에서 그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우상처럼 군림했다. “반미·구국 투쟁”을 외치던 운동권은 전쟁의 책임을 온전히 미국과 이승만 정권에 전가한 그를 존경하고 추종했다. 덕분에 1990년대 구소련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수정주의가 무너진 후에도 그는 2007년 제1회 김대중 학술상을 받는 영예를 누릴 수 있었다.
한국 좌파의 우상 커밍스는 미국의 한 역사가가 혹평했듯 고작 “미국의 결점에 관한 설교를 원하는 독자들만의 필독서”를 썼을 뿐이다. 그는 유엔 16국이 참전한 한국전쟁이 아무것도 해결 못한 무의미한 전쟁이었다고 선언한다. 미국의 군사 개입 덕택에 공산화를 피한 대한민국이 최첨단의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음을 그는 절대로 인정할 수가 없다.
바로 그 점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을 옹호해온 한국의 좌파 세력은 커밍스의 충실한 제자들이다.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진도 그 부류에 속하나? 그렇지 않고선 남북관계 등 최근의 민감한 이슈에 관해 특정 정파에 치우친 일방적인 서술을 할 수는 없다. 하물며 북한의 참혹한 현실엔 눈을 감고서 김정은 정권의 성과만을 미화했음에랴.
문제는 교육부가 개입해서 논란되는 구절을 삭제해도 미봉책이라는 점이다. 집필진의 정치 편향은 이미 한 문장, 한 문장에 배어 있다. 편향된 한국사 교과서는 한국 역사학계의 편향성을 반영할 뿐이다. 그 숱한 논란에도 교과서가 개선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세계적인 성공의 사례지만,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는 그 역사를 폄훼하고 부정하고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 현대사엔 분명 역사의 신이 살아 숨 쉬지만, 교과서에서 그 신은 이미 매장당했다. 그 신을 과연 누가 죽였는가? 좌파를 탓하기 전에 우파 세력의 지적 태만을 비판해야 한다. 해결 방법은 단 하나, 대한민국 정통 세력이 더 좋은 교과서를 써서 사상의 시장에서 당당히 승리하는 길밖에 없다. 그 길만이 자유민주주의의 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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