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미래] 원치 않는 연장근로, ‘근로자대표’로 막아야
근로자 선택권 제대로 작동해야
사용자 강요 의한 오·남용 방지
대표 선출 법 마련… 자율결정해야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소위 ‘69시간’이 논의의 블랙홀이다. 법정근로시간도 아니고 근로계약에도 포함되지 않는 연장근로시간을 임의로 계산해 근로시간 한도 논란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예외적이다.
그런데 근로자의 합의권 제약으로 인한 장시간 근로의 우려라면 현재의 유연근로제(선택적근로제, 탄력적근로제)도 ‘똑같이’ 문제가 된다. 현행 선택근로제의 경우 1개월을 단위(편의상 4주 가정)로 하면 근로시간 선택에 제약이 없다. 만일 사용자가 근로자 의지에 반해 선택근로제를 강요하고, 노동을 강제하는 경우 ‘이론적으로’ 특정주 6일 기준 129시간까지 가능하며, 나머지 3주는 약 26.3시간씩(79/3) 나눠서 일하게 된다. 물론 남아 있는 79시간도 3주 중 특정주에 몰아서 쓸 수 있다. 연구개발직에 허용되는 3개월짜리 선택적근로제는 근로일간 11시간 연속휴식이 의무화해 있으니 이번 근로시간 개편안과 같이 특정주 69시간 근로가 가능하다. 요컨대, 근로시간 개편안을 ‘69시간제’라 한다면 동일한 논리로 현행 선택적근로시간제는 ‘129시간제’인 셈이다. 탄력적근로제 또한 2주 60시간, 2주를 넘는 단위기간(6개월까지) 설정 시 주 64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유연근로시간 제도는 소정근로시간(일 8시간, 주 40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일 또는 특정주의 근로시간 연장에도 불구하고 연장근로 수당 지급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 구간이 생길 수 있어 임금 손실의 우려도 있다.
결국 근로시간 개편안과 유연근로제 모두 ‘근로자의 선택권’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어야 사용자의 강요에 의한 오·남용이 발생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그 점에서 양 제도의 문제는 같다. 게다가 근로시간 개편안은 ‘근로자대표 서면합의’와 ‘개별근로자 동의’가 부가되어 있으니 ‘근로자대표 서면합의’만을 요건으로 하는 유연근로제보다 사용자의 강요가 더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면 문제의 해법은 ‘근로자대표’ 제도를 근로기준법에 설정하고, 근로자대표의 민주적 선출 절차를 마련함으로써 근로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이는 ‘근로시간 개편안’뿐 아니라 유연근로제의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양날의 해법인 셈이다. 이를 위해 연구회 권고문과 정부 입법예고안에 근로시간 개편과 근로자대표의 제도화를 함께 담았다. 그래야 노조가 없거나, (조합원이 근로자 과반에 못 미치는) 소수 노조 사업장 근로자의 근로 조건 선택권이 보호받을 수 있을 테니까.
결론적으로 이번 혼란은 제도 개선의 문제를 ‘준법 이슈’와 혼용해 생긴 왜곡된 논란인 셈이다. 이로 인해 정작 필요한 ‘근로자대표’ 제도 논의가 제대로 진전되지 못하고 근로자의 근로 조건 선택과 관련된 방안 모색이 활성화하지 않았다. 아쉬운 부분이나 이 또한 제도 진보를 위한 과정일 테다. 이번 일로 확인된 또 하나의 과제는 노사 모두 이해하기 쉽도록 근로시간 제도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근로 조건의 핵심인 근로시간 제도가 이리 어려워서야 당사자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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